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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투자보다 자생…​에어비앤비도 '부트스트랩'이었다

경제 불안할수록 생존에 방점…1500개 SaaS 기업 조사해보니 부트스트랩이 성장률도 높아

2023.05.12(Fri) 11:00:22

[비즈한국] 지난 5월 4일 캐나다 출신 다국적 이커머스 기업 쇼피파이(shopify)가 직원 20%를 해고하고, 쇼피파이 로지스틱스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테크업계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쇼피파이의 독일법인은 직원 90%가 해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법인은 최근 노조 결성을 시작했는데, 직원들은 독일법인의 대량 해고 사태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즈니스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링크드인도 중국 현지 구직 앱 인캐리어(InCareer)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매출 성장 둔화로 716명의 직원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기술 분야의 일자리 손실을 추적하는 온라인 추적 서비스 Layoffs.fyi의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660개의 기술 기업이 약 19만 1538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작년 같은 기간 16만 4591명에 비해 많이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 쇼피파이가 직원 20%를 해고했다. 사진=shofify.com


개인에게도 그렇겠지만 스타트업과 같은 작은 기업에도 이 불안한 경제 상황은 상당한 스트레스가 된다. 투자 유치가 안 되거나, 이미 투자 유치를 했더라도 런웨이(현재 가진 자금으로 자생할 수 있는 기간)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후속 투자 유치를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생존하기 위해 인력 감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가치가 없는 것일까, 우리의 비즈니스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근본적인 고민이 들기도 한다. 투자가 스타트업 생태계의 꽃이기는 하지만 스타트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가 투자뿐만은 아니다. ‘스타트업’을 빠르게 확장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술이나 서비스를 지닌 작은 기업이라고 정의한다면, ‘빠른’이라는 단어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창업’이라는 넓은 의미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것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신발 끈을 동여매자, 부트스트랩(Bootstrap)

 

요즘처럼 쉽지 않은 시기에 투자만이 능사는 아니다. 자생할 수 있는 매출을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잘 설명하는 단어가 부트스트랩이다. 부트스트랩은 VC 투자 없이 매출을 만들어 스타트업이 자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츠(Boots)와 스트랩(Strap)의 합성어로, 긴 부츠에 달린 끈과 고리를 잡아당겨 혼자 힘으로 신발을 신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어비앤비도 초기 몇 년은 부트스트랩 회사였다.

 

2009년 와이콤비네이터에서 피칭 데이를 준비하던 에어비앤비 창업자들. 사진=에어비앤비

 

지금 에어비앤비는 시가총액 683억 달러(97조 원)에 분기 매출 21억 달러(3조 원), 순이익 3억 7000만 달러(5천억 원)를 올리는 글로벌 기업이다. 이런 에어비앤비도 2008년 월 매출 4000달러를 목표로 사업을 했다. 사무실 임대료가 3500달러였고, 나머지는 500달러를 창업자들의 식비였다. 이렇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버텨냈다. 일단 생존할 만큼만 벌면서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피봇(방향 전환)을 진행했다. 

 

이들의 생존 능력에 감흥을 받은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가 에어비앤비에 투자한 사례는 유명하다. 에어비앤비처럼 최종적으로는 투자를 받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곳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계속 투자보다 부트스트래핑으로 스스로 생존전략을 마련하는 곳도 많다.  

 

#직원은 5명, 고객사는 롤스로이스·다임러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캐보릿(Cavorit)은 직원 5명을 둔 작은 데이터 회사다. 창업자 해럴드 피들러(Harald Fiedler)에게 캐보릿이 스타트업인지를 묻자 “우리는 부트스트랩 회사”라고 대답했다. 

 

2013년에 창업한 개보릿은 스마트 데이터 관리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시다. 정교하게 스마트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시각화해 보여주는 툴을 만드는 것이 주요 비즈니스다. 기업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및 디지털 컨설팅을 제공하는 B2B 비즈니스를 한다. 캐보릿에서는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다양한 툴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연구 개발도 진행한다. 작은 회사이지만 고객사의 면면을 보면 내공이 만만치 않다. 

 

스스로를 부트스트랩 기업이라 칭하는 캐보릿의 창업자 해럴드 피들러. 사진=cavorit.de


항공기 엔진 기업 롤스로이스(Rolls-Royce)가 그들의 가장 큰 고객사다. 캐보릿은 롤스로이스와 함께 항공기 엔진에 사용되는 600개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가상 제트 엔진(Virtual Jet Engine)을 개발했다. 일종의 디지털 트윈 기법으로 실제 시뮬레이션으로 소모되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캐보릿은 롤스로이스의 여러 부서와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했고, 8개월의 데이터 분석 프로세스를 거쳐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테스트를 완료했다. 이 데이터 관리 솔루션은 기존에는 며칠에 걸쳐 하던 작업을 몇 초로 단축하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롤스로이스와의 협력은 독일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사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작은 회사를 믿고 이러한 프로젝트를 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공동 연구개발 계획서를 작성하고, 다양한 검증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롤스로이스와 협력할 수 있었다. 

 

기업이 정부 지원사업만을 재원으로 삼으면 자칫 자생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지만, 캐보릿의 경우는 달랐다. 창업자 피들러는 “정부 지원사업을 신청하는 데에 들어가는 공도 만만치 않기에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자칫 우리의 독립성을 해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롤스로이스와의 성공적인 협력은 이후 다른 프로젝트로 지속적인 기회를 열어주었다”고 말한다.

 

캐보릿이 롤스로이스와 함께 개발한 디지털 트윈을 위한 데이터 매니지먼트 시스템. 사진=cavorit.de

 

캐보릿은 이후 독일 축구 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 선수들이 사용하는 자동 공 발사 훈련 기계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이 기계는 또 다른 독일 기업 CGoal에서 개발한 것이다. 캐보릿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 SAP Sportslab의 일원이 되어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되었다. 스포츠 과학, 심리학, 통계학을 다양하게 활용한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AI 기반으로 구동되는 훈련 기계를 미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공의 각도, 속도, 효과, 목표 등을 조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선수들의 데이터를 시각화해 선수와 트레이너에게 피드백을 전달한다.

 

이후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회사인 다임러(Daimler), 독일 최대 통신사인 도이체텔레콤(Deutsche Telekom) 등에서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당분간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부트스트랩 모드를 유지하려고 한다. 캐보릿의 솔루션은 계속 진화 중이다. 창업의 관점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부트스트랩이지만, 스타트업의 관점에서는 지속적으로 기술 개발해 성장하는 기업인 셈이다. 

 

#부트스트랩과 투자 사이

 

2022년 9월 SaaS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미국의 SaaS캐피털(SaaS Capital)이 부트스트랩과 관련해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간했다. VC 자금은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보인다. 그러나 부트스트랩 기업은 성장률은 낮지만, 지출이 적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다. 특히 SaaS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성장하기 위해 VC 자금을 유치해야 할지, 아니면 수익에 집중하는 부트스트랩 방식을 택해야 할지 늘 고민이다.

 

SaaS 캐피털은 1500개 이상의 SaaS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연간 실행률에 대한 수익(ARR, Annualized Run Rate Revenue)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ARR이 300만~2000만 달러인 부트스트랩 SaaS 회사의 평균 성장률은 27%이고, 상위 10% 안의 회사는 60%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는 부트스트랩 회사가 일반적으로 성장률이 낮다는 편견과 반대되는 결과다. 

 

2022 부트스트랩 SaaS 회사의 수익 성장률. 사진=SaaS Capital

 

순수익 유지율(NRR, Net Revenue Retention)의 경우도 흥미롭다. ARR이 300만~2000만 달러인 부트스트랩 회사들은 평균적으로 순수익 유지율이 101%이고, 상위 10%의 회사는 115%의 수익률을 내고 있다. 

 

사람의 삶, 하는 일, 성장하는 방식이 다양한 것처럼 회사도 마찬가지다. 투자자에게는 가닿지 못했지만(혹은 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 검증되어 자기 생존이 가능한 회사에게는 성장과 수익이 동시에 따를 수 있다. 스타트업에 투자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스타트업과 창업이 누군가에게는 먹고사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다양한 생존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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