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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노동자들⑤ 건설노동자] 중대재해처벌법 1년, 사고는 줄지 않았다

사망 2% 감소했지만 사고 2% 늘어, 노사 양쪽 모두 실효성에 '불만'…보호조치 등 현장 개선 필요

2023.06.02(Fri) 09:39:49

[비즈한국] 2023년 5월 10일은 윤석열 정부 취임 1주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기도 하다. 비즈한국은 지난 1년간 한국 노동 현장에 일어난 변화를 추적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라진 노동자들’이다. ‘노동’이 사라진 건 아니다. ‘노동자’가 사라졌다. 정규직에서 기간제로, 지상에서 지하로, 직관적인 이름에서 세련되고 모호한 명칭으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빠르게 감춰지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사라지게 만들까. 일그러진 노동 현실을 짚어본다.

 

#5월 31일 경기도 수원의 한 공사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사망했다. 주차장 천정에 마감재를 뿌리다가 머리를 부딪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27일에는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공사 현장에서 화물 차량에 적재된 건설 자재가 떨어지면서 근처에서 작업 중이던 40대 노동자가 사망했다. 전날인 4월 26일 경상남도 창원의 한 공사 현장에서는 50대 근로자가 추락사했다. 콘크리트 견출 작업 중 미끄러져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9월 강원도 원주시 한 공사장 3층 높이에서 추락한 건설노동자 A 씨. 당시 현장엔 제대로 된 발판과 안전장치가 없었다. 경추가 골절된 A 씨는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동료들은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고 말한다.

 

건설 현장에선 매일 산업재해가 일어난다. 2022년 산업재해로 인정된 건설업 사망자는 539명. 하루에 1.5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셈이다. 건설업 산재사망자는 전체 업종 중 1위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사망 사고는 여전하다. 건설 노동자들은 지금도 현장의 안전설비가 부재하다고 말한다. 

 

A 씨가 떨어진 강원도 원주시 건설현장 모습. 안전 난간이 설치되지 않았다. 사진=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제공

 

#불법하도급,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고용 만연

 

“떨어져 죽는 동료들이 가장 많죠.” 건설노동자 B 씨는 현장에서 추락해 숨지는 동료가 가장 많았다고 말한다. 건설기계에 깔리거나 부딪히는 사고도 잦다. B 씨는 “건설 기술로만 보면 한국이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지만, 산재사망 비율로도 1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건설노동자들은 여전히 현장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거나, 불법하도급을 하거나,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자 C 씨는 최근 불법하도급으로 일을 받았다. 원래 받던 일급보다 3만 원가량 적었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 C 씨는 “최근 정부에서 노조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서 건설사에서도 노조 소속은 아예 안 받겠다고 한다. 부족한 인력은 불법하도급,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진다. 어느 현장을 가 봐도 이런 일이 흔하지만, 관리 감독하는 일은 없다. 가장 중요한 현장 안전도 등한시된다”고 말했다. 

 

경상북도 안동시 한 건설현장 모습. 난간 안전용으로 줄 하나가 묶여 있을 뿐이다. 사진=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제공

 

불법하도급은 건설 현장에서 흔하다. 원칙대로라면 도급 받은 공사를 다른 사업자에게 하도급 할 수 없지만, 건설 업계에선 암암리에 하도급을 준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4~5년 전에는 노동 시간도, 임금도, 환경도 모두 법과 동떨어져 있었다. 대부분 건설 건수마다 임시로 노동자가 채용되는 형태였다. 이러다 보니 건설사에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걸 단체교섭을 통해 개선했다. 단체별로 적용해 한 해에 8개월 정도 협상을 진행했다. 그런데 최근 정부에서 노조 활동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하니, 건설사에서도 노조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 노조는 아예 배제하고 부족한 인력은 불법하도급으로 채우는 것이다. 편법도 흔하다. 원래대로라면 400만 원을 주는 직종을 200만 원으로 모집하고, 모집이 안 됐다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는 식이다”고 설명했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는 불법도 흔하다. 건설사는 이들에게 국내 노동자보다 더 싸게,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여긴다. 실제 건설 현장 인력의 70%가 외국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이는 통계로도 엿볼 수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추정한 2022년 국내 필요 건설인력은 175만 명이고, 충원 가능한 내국인 인력은 154만 명이다. ​충원 가능한 내국인 인력이 전부 고용됐다고 해도 20만 명가량이 빈다. ​그런데 실제 고용된 것으로 추정하는 외국인 인력은 32만 명이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건설 업종 인력으로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외국인은 2023년 기준 3000명 수준이니, 그 차이를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웠다고 볼 수 있다.

 

건설노동자 D 씨는 “불법하도급으로 고용되는 인원이나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통계로도 잡히지 않는다. 정확한 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체감하는 거다. 실제 현장을 가보면 원청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전부 외국인 노동자들만 있는 곳도 많다”고 토로했다.

 

 

건설 현장에 ‘위험’이 수반되는 건 불가피하다지만, 국내 건설업 사망·사고 비율은 ​외국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OECD 회원국 중 GDP 상위 10개국 중 건설업 사고사망십만인율(근로자 10만 명당 사고사망자률)은 한국이 20.0으로 1위다. 이는 10개국 평균 7.9의 약 12.5배 수준이다. 2위 캐나다(12.4), 3위 미국(10.2)과도 격차가 크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관계자는 “건설 현장이 기본적으로 위험 요소가 많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사망·​사고율이 현저히 높은 것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거다. 이걸 해결하고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건데, 실제 일어난 사고에 비해 처벌 받는 사례가 너무 적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실효성이 있으려면 사업주에 대한 조사가 빠르게 이뤄져야 하는데 이 기간이 너무 길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6개월간 개선 있었나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건설 현장의 잦은 사망 사고 때문에 제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제정 논의 때부터 건설사들이 크게 반발했다. 사업주를 과도하게 처벌할 거란 우려도 나왔다. 비즈한국은 지난 1년간 일어난 건설업 산업재해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현황을 분석했다. 

 

 

2022년 건설업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된 노동자는 총 3만 1245명이다. 전년 대비 4.3% 늘었다. 사망자 수는 539명으로 2.2% 감소했지만, 전체 업종에서 재해사망자 1위를 차지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에도 건설 사망자가 크게 줄지 않은 것이다. 사고재해자는 전년보다 오히려 2% 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제대로 작동했을까. 4월 6일 선고된 중대재해처벌법 1호 판결은 건설업이었다. 증축공사 중 하청 노동자가 사망하자 원청과 하청 대표 모두 징역형, 집행유예 등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것뿐이었다. 지난 1년 6개월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인정된 건설업 관련 판결은 1호 판결 단 1건이었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재해조사 대상 사망자는 2022년 341명, 2023년 1분기 65명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기소 건수는 2022년 7건, 올해 5월 31일까지는 2건에 불과하다. 2022년 평균 수사 기간도 231일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검찰이 입법권을 무력화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현재 검찰에 처벌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사건에 비해 기소 건수가 현저히 작다. 의지가 없는 거다. 검찰이 법을 무력화하고 있다. 집행기관이 법을 제대로 집행해야 하는데, 입법부와 법원의 권한을 검찰이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재판까지 가는 기간이 길다는 것도 문제다.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적용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노조도 경영자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불만…근본 해결책은?

 

정부는 올해 2월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불법·부당행위 점검 단속 강화 △불법·부당행위 차단 방지 △건설근로자 보호조치를 내세웠다. 불법하도급 관리를 강화하고 임금체불 방지를 위해 공사대금을 직접 지급하는 사업자 확대, 편의시설 확충 등의 ‘노동환경 개선’이 포함됐지만, 주 내용은 노조의 불법행위 단속이었다. 논란이 일었던 타워크레인 월례비나 노조의 채용 강요 등을 즉시 제재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기존 산업안전규정 역시 준법투쟁의 빌미가 된다며 개정 의지를 밝혔다.

 

사고 예방보다 노조 불법행위에 초점이 쏠리자 노동자들에게서 거센 반발이 나왔다. 앞서의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건설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없이 노조 공격에만 치중하고 있다. 현재 일어나는 불법하도급 등 건설사 불법 행위에는 손대지 않으면서 건설기계 조종사들이 법대로 노동시간을 지키겠다고 하면, 조종사 면허를 정지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사실상 안전규정을 지키지 말고 일하라는 것이다”고 비난했다.

 

건설사는 건설사대로 불만이 있다. 5월 3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해달라는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법령이 불명확하고 과도한 처벌 규정으로 기업 경영 부담이 크다는 거다. 현행 법으로는 중대산업재해 사망자가 1명만 발생해도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데, 이를 동시에 2명 사망 또는 최근 1년간 2명 이상 사망 등으로 개정해 부담을 완화해달라는 취지다. 경총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사고·​사망자 감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으로 건설 현장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사 측에서 말하는 노조의 불법행위와 노조 측에서 말하는 현장의 열악함 모두 맞는 이야기다. 어느 쪽이 100% 맞다 틀리다고 전제하거나 매도하면 안 된다. 양측이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라며 “​정책적으로 건설 현장을 개선해야 하는데, 올해 초 정부에서 발표한 ‘범정부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 가운데 건설근로자 보호조치와 산업안정규정 조정 등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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