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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휴직④ 정신질환으로 인한 업무상 질병휴직 가능할까

정신 질병 인한 산재승인 30% 증가…인정받기까지 관련성 입증 '험난'

2024.02.08(Thu) 10:35:29

[비즈한국] 지난 주 입사 3년 차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L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입사 초기 인사팀에서 2년간 같이 근무하기도 했고 능력은 물론 인성도 훌륭해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직원이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이미 6개월 전에 민원 등 과도한 감정노동으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여 인사팀에서 타 부서로 전보를 진행한 바 있었기에 다른 애로사항은 없는지 추가 면담을 진행했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병가나 휴직 신청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여전히 이를 보는 직장 내 인식은 부정적이다. 사진=생성형 AI

 

L이 처음 자신의 질환상태(불안장애와 우울증)와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는 혹시 그간 나도 모르게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거나 마이크로매니징을 하며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나를 포함한 주변의 동료들로부터 부적절한 일을 겪은 것은 아닌지 걱정과 당혹감에 휩싸였었다. 혹여라도 그런 사실이 있다면 솔직히 얘기해 달라고 나의 무신경함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L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화가 나도 혼자 속으로 삭이는 자신의 내향적 성격과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완벽주의 성격 탓이라며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았다. 너도 나도 남의 탓을 하며 억울함을 주장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그의 대답만으로도 예민한 감성과 타고난 성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다른 부서로 이동한 이후에도 여전히 마음의 병이 지속되어 당분간 일을 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전해왔다. 병가나 질병휴직을 제안해 봤지만 쉼 이후에도 이 곳이나, 혹은 이와 같은 경쟁과 성과의 압박에 시달리는 구조 속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답했다.

 

이전에도 (관련기사 아프면 쉬어야지 라는 말은 왜 공허하게 들릴까)를 통해 언급했듯이, 자신의 병을 털어놓고 잠깐 ‘멈춤’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버틸만하니까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지만, 생계 부양이나 경제적 사정 때문에 그리고 대부분은 그런 제도가 아예 뒷받침되지 않아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고작 기분의 문제, 혹은 의지 부족이라 여겨질 수도 있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회사를 그만두거나 병가나 휴직을 신청하고, 더 적극적으로는 업무상 질병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이들을 보면서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고, 그 중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34%이다. 한창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회.‘신경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정말로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요즘 젊은 세대는 조금만 힘들어도 쉽게 포기해 버린다고, 작은 일에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일하면서 그 정도 스트레스 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겨우 그것도 못 버티냐고 혀를 차며 얘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아우성을 보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터와 사회의 구조적이고 뿌리 깊은 문제들 - 여전히 차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성과와 능력중심의 과잉 경쟁 문화 -에 대해 의문을 갖고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까.

 

L과 같은 사직사례 뿐 아니라, 정신질환과 관련한 병가와 휴직 문의는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판정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정신질병의 산재승인 근로자 수는 515명으로 1년 사이 30%가 증가했으며, 신청자 수 또한 계속 증가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정신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 되기까지의 길은 매우 험난하다. 해당 질환의 발병과 업무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폭언 등으로 발생한 질환이라면 회사나 고용노동부 조사 등의 절차를 통해 ‘괴롭힘 인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진단서 또한 로컬(의원급)이 아닌 종합병원 급 이상이거나 대학병원, 혹은 근로복지공단 산재판정병원의 진단서를 필요로 한다.

 

잠시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본연의 업무로 돌아올 수 있겠다고 생각되면 회사에 자체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병가나 질병휴직(보통은 무급이며, 취업규칙 등에 따라 일정 기간 유급으로 지원되는 경우도 있다)을 알아보는 것을 우선 추천한다. 꼭 취업규칙이나 내규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근로자 본인과 사업주 사이의 계약 관계에서 상호 간의 이해가 된다면 약정한 특정기간 동안의의 짧게라도 휴식 기간을 가질 수도 있다.

 

L과 같이 일을 그만두었다가 회복 후에 구직활동을 할 계획이라면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수급을 신청해 볼 수도 있다. 자발적 사직이라 하더라도 질병으로 인해 업무수행이 곤란하고 업무전환이나 휴직이 허용되지 않아 이직한 것이 확인되면 실업급여 수급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재직하는 동안 질병이 발생한 사실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진단서와 의사의 소견서, 그리고 사업주가 작성 해주는 질병퇴사 확인서가 필요하다.

 

간혹 사업주(혹은 인사담당자)가 이 확인서 작성을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실업급여 대상여부는 전적으로 고용지원센터에서 판단한다. 근로자가 실업급여를 지급받게 되더라도 사업장에는 아무런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니 있는 사실 그대로만 작성해 주면 된다고 말하면 된다. 만일 그마저도 작성해 주지 않는다고 버틴다면, 그런 회사는 그만두는 것이 맞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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