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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인생독서] 책벌레의 천국으로 가는 길

만화든 인문고전이든 다양한 책 읽으며 나만의 답 찾는 게 중요해

2017.08.29(Tue) 10:00:00

[비즈한국] 책보다 스마트폰을 더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을 보고 어른들이 그러지요. “아빠는 너만 할 때 책만 읽었단다.” 

 

순 거짓말이에요. 그 시절엔 스마트폰이 없었거든요. 저의 어린 시절 가장 큰 낙은 동네 만화방에 가는 것이었어요. 만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책 읽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어려서는 꿈이 많았어요. 만화방 주인이며, 오락실 주인, 비디오방 주인 등등. 그런데 이제는 굳이 만화방을 차릴 필요가 없어요. 손바닥 안 휴대폰 속에 만화랑 게임, 영화가 다 들어왔거든요.

 

책벌레의 천국으로 가는 길은 무수히 많은 책으로 깔려 있다. 만화든 판타지든 다양한 책을 읽으며 나만의 답을 찾아내는 것, 그게 행복 아닐까?


어려서 만화방에 자주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어요. 우연히 도서관에도 만화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정기간행물실에 있는 어린이 만화 잡지랑 종합자료실에 있는 교양 만화 등등. 도서관에서 만화를 찾아 읽는 게 어린 시절의 달콤한 추억입니다. 요즘도 도서관에서 재미난 만화책을 찾아 읽는데요. 그러다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만나게 되었어요.

 

미혼의 직장여성인 주인공은 생리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야근을 합니다. ‘땀은 물론이고 피를 흘리면서 여자는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는 독백이 마음을 울렸어요. 딸을 가진 아빠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남자가 모르는, 여자로 사는 고통을 더 알아야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주인공은 바쁘게 사느라 삶의 낙이 없어요. 결혼한 친구들은 육아에 살림에 하나둘씩 멀어져가고요. 혼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퇴근 후 동네 요가 학원을 찾는데, 강습비가 한 달에 1만 엔(10만 원)이라는 말에 주저하게 됩니다. 한 달에 1만 엔, 그 돈으로 노후적금을 드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민을 하는데요. 그때 주인공에게 떠오른 생각. ‘멀리 있는 미래가, 현재, 여기 있는 나를 구차하게 만들고 있다.’

 

요가 학원을 등록하고,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습니다. 물론 고민은 남지요. 이렇게 결혼하지 않고 아이 없이 혼자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나이 들어 혼자 살다 병이나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최고!!”라며 벌떡 일어나는 주인공. 갑자기 만화 컷 하나에 멍한 얼굴 표정이 가득합니다. 

 

누가 / 원해서 / 치매에 걸리겠어? / 원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최고’라니. / 혹시 / 누군가에게 / “상처를 주는 말일지도.”

 

글로 이어져 술술 읽는 에세이와 달리, 한 칸 한 칸 나뉘는 만화는, 한 줄 한 줄 따로 끊어 읽기에 때로 시처럼 읽힙니다. 무심결에 후배들에게 했던 말을 돌아봅니다. “젊어서는 연애를 해야지.” “결혼만큼 남는 장사가 없더라?” “아이가 둘은 되어야지.” 당연한 듯 내뱉은 말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만화를 보고 깨달았어요.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책을 소개한 하지현 선생님 덕분입니다. 

 

“일정 나이가 되면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를 낳고 사는 것이 ‘정답’이고 나머지는 ‘오답’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됐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답이 있으며 그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각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현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인생을 사는 다양한 방법이 제각기 존중받아 마땅한 것처럼, 독서에도 다양한 길이 있어요. 도서관 저자 강연에 가면, 아이가 만화책만 읽는다고 걱정하는 어머니들이 있는데요. ‘좋은 책만 읽어야 해.’ ‘인문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해.’라고 하면, 자칫 아이에게 ‘책읽기란 결국 재미없는 공부로군.’ 하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어요. 제게 좋은 책은 재미있는 책입니다. 만화책을 읽으며 독서하는 습관을 키웠어요. 어려서 책과 친해진 덕분에 독서가 평생 가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책벌레의 천국으로 가는 길은 무수히 많은 책으로 깔려 있습니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나만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인생을 사는 나만의 답을 찾아내는 것, 그게 인생 행복 아닐까요?​ 

김민식 MBC 피디​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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