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서체, 로고타입 통해 단순한 정보전달 아닌 정치적 상징성과 정체성 집약
[비즈한국] 5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제6공화국 체제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이 직무 수행상 하자로 인해 두 번 연속으로 탄핵되어 중도 하차하면서 21대 대통령선거도 예정보다 빨리 치러지게 되었다. 출마한 주요 인물은 이재명(더불어민주당)·김문수(국민의힘)·이준석(개혁신당)·권영국(민주노동당) 후보 등이다.
당명, 로고타입은 해당 정당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는 열쇠다. 이들이 어떤 형태를 지니고 얼마나 존속하는가에서 당직자나 일반 시민이 정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2015년 출범한 더불어민주당은 당명과 함께 초창기 도입한 고딕형 로고타입을 유지하다가 2024년 ‘더불어민주당‘에서 ‘더불어’를 축소하고 ‘민주당’을 강조함으로써 변화를 주었다.
기존 로고타입은 6글자가 같은 크기로 배열된 형태였는데 새 로고타입에서는 두꺼운 고딕 ‘민주당’위에 얇은 필기체로 된 ‘더불어’를 작게 얹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봐야 할까. 기사에 의하면 ‘민주당’을 강조하면 좋겠다는 오더를 전한 것은 당시 대표직을 맡았던 이재명 후보다. 아이덴티티 리뉴얼 타이밍을 맞아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면서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더불어’란 단어는 보통 ‘약자와 더불어’ 하는 식의 포용적 의미로 쓰인다. 이를 축소한 것은 더 이상 진보 진영에만 머물지 않고 보수 진영도 아우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국민의힘은 2020년 도입한 고딕 로고타입 그대로다. 직전까지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을 거치며 불안정했던 아이덴티티가 5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그 원동력은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의 승리다. 그러나 승리의 주역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조기 실각하면서 아이덴티티 역시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의힘 당명과 로고타입의 운명은 집권 여부, 득표율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민주노동당 로고타입은 모두 한글 외곽을 둘러싼 가상의 네모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두꺼운 고딕형 디자인이다. 유일한 예외는 개혁신당이다. ‘개혁’과 ‘신당’에 단차를 두어 차별화하고 받침을 아래로 뺀 탈 네모틀 디자인을 택했다. 탈 네모틀 글자는 네모틀보다 캐주얼하고 큰 조형적 고민이 필요 없어 제작이 쉽다. 시스템을 중시하고 공정 경쟁을 내세우는 후보의 당 로고타입이 가장 자유분방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동안 정치권을 흽쓴 산돌(Sandoll) 격동체 신드롬은 이번 선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G마켓 산스, Sandoll 그레타산스 같은 타 서체의 유입도 눈에 띈다. 직선 일변도의 강렬한 획을 지닌 격동체는 공보물에서 강력해 보이는 장점이 있다. 반면 G마켓 산스는 자음 ㅅ, ㅈ, ㅊ를 비롯하여 자소 곳곳에 들어간 곡선으로 격동체보다 유연하게 보이며 그레타산스는 곡선 비중이 더 높고 글자틀 안에 빈 공간을 많이 포함시켜 가장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준석 후보는 후보명·슬로건에 격동체 류의 고딕을, 김문수 후보는 후보명에 격동체를 쓰고 주요 슬로건에 G마켓 산스를 혼용했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후보명을 비롯한 공보물 전체를 G마켓 산스 중심으로 디자인했고 권영국 후보는 슬로건에 그레타산스를 많이 썼다. 보수에서 진보 진영 후보로 갈수록 서체가 부드러워지는 셈이다. 이외에도 이재명 후보가 부분적으로 쓴 나눔명조는 명조 중에서도 진보적·현대적 색채가 있고 김문수 후보가 쓴 신문명조는 네모틀에 꽉 찬 단단한 모습으로 보수적 인상이 짙은 편이다. 한데 모아보면 각 당의 지향점이 드러나는 점이 재미있다.
이재명 후보 공보물 오른쪽 하단 모서리에는 빨간 삼각형 포인트가 있다. 이 포인트는 현수막부터 선거운동 점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들어가 있다. 빨간색은 상대인 김문수 후보의 당 색이다. 그런데도 이를 곳곳에 넣은 이유는 진보와 보수의 상징색을 동시에 사용해 전 지지층을 아우르겠다는 메시지 전달이라고 한다. 보통 지지율 선두는 통합을, 뒤쫓는 입장은 결집을 추구한다. 상대방의 색상까지 차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빨간색 포인트 위치나 면적이 소극적이라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구석으로 밀겠다는 의도로 읽혀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통합 메시지가 목적이라면 중심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더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이재명, 이준석 후보는 뒷부분에 편지 형식을 빌려 유권자에 보내는 메시지를 실었다. 이재명 후보는 나눔명조를 썼다. 비록 기성 폰트지만 공보물 전체를 통틀어(정보공개 부분 제외) 유일하게 들어간 명조 계열 서체라 효과는 있다. 반면 이준석 후보는 후보 손글씨를 기반으로 개발한 폰트를 썼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중간에 ‘제 손글씨체로 인사를 드린다’는 서술이 모호하다. 디지털 폰트에 대한 이해가 약한 유권자는 컴퓨터로 타이핑한 것이 아니라 자필로 작성한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보기에 따라 진정성을 과대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개발된 폰트가 실제 자필의 단점을 많이 보완한 것으로 보여서 더욱 그렇다. 손글씨체라는 단어에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오해를 피하려면 폰트임을 명확히 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신동혁도 이 부분을 지적한 바 있다.
누군가는 중요하게 보고, 또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선거 공보물이나 이렇듯 자세히 보면 맥락을 살필 수 있다. 후보 개인도 중요하지만 정당의 지향점이나 정책에 따라 투표하는 문화가 좀더 정착되고 그 과정에서 당 별 공보물 구성과 디자인 특색도 커지기를 기대한다. 21대 대통령 선출을 통해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그 영향으로 다음 선거에 어떤 로고타입이나 서체가 등장할 지 예측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