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비즈한국

현장
‘가챠 성지’로 부활한 국제전자센터, 오른 임대료에 상인들 ‘한숨’

공실률 30%대서 0%대로…방문객 늘었지만 전자제품 매출 효과는 제한적

[비즈한국] 한때 공실률이 30%대까지 치솟았던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가 피규어·가챠(캡슐 장난감 뽑기) 매장 확산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공실은 빠르게 줄었지만, 기존 전자제품 매장들은 늘어난 방문객보다 오른 임대료 부담을 더 크게 체감하고 있다.

6일 오후 2시께 국제전자센터 3층에 피규어를 들고 가거나 매장 앞에 멈춰선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정원혁 기자

6일 국제전자센터는 비가 오는 평일임에도 피규어·가챠 매장을 찾은 방문객으로 붐볐다. 방문객들은 가챠 기계 앞에서 뽑을 상품을 고르거나 진열된 피규어를 살펴봤다. 5층 피규어 매장 앞에서 만난 20대 A 씨는 “국제전자센터는 피규어와 가챠 성지로 알려진 곳”이라며 “친구들과 시간이 날 때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국제전자센터를 둘러본 결과, 피규어·가챠 매장은 2층부터 9층까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인근 등 각 층의 주요 자리에도 관련 매장이 들어서 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피규어·가챠 매장을 찾는 발길은 오후에도 이어졌다. 반면 컴퓨터나 휴대전화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기존 전자제품 매장으로 향하는 방문객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한 전자제품 매장 상인은 근처 가챠 기계를 바라보며 “바로 옆 매장은 사람이 많은데 우리 쪽으로는 오지 않는다”며 “시끄러울 때도 있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1997년 문을 연 국제전자센터는 용산전자상가, 세운상가와 함께 서울의 대표 전자상가로 꼽혀왔다. 그러나 개장 시기가 외환위기와 겹치면서 초기 분양과 영업에 타격을 받았다. 이후 온라인 쇼핑 확산과 전자제품 유통 구조 변화가 맞물리며 방문객이 줄었고, 코로나19 시기에는 공실률이 30%대에 이를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국제전자센터는 코로나19 이후 공실을 줄이기 위해 9층에 몰렸던 피규어·가챠 매장 입점 수요를 7·8층으로 유도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는 관련 업주들이 들어오는 배경이 됐다. 국제전자센터 관계자는 “당시 9층에 집중됐던 피규어·가챠 매장 입점 수요를 7층과 8층으로 분산해 공실을 메우려 했다”며 “그 전략이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국제전자센터 층별 안내판. 코로나19 이후 피규어·가챠 매장 입점 수요를 유도한 7층과 8층에는 ‘피규어’가 표시돼 있다. 다른 층 안내에는 ‘피규어’나 ‘가챠’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정원혁 기자

최근 1~2년 사이 국제전자센터가 서브컬처 소비층 사이에서 ‘오타쿠 성지’로 알려지면서 관련 매장 수요는 다른 층으로도 확산됐다. 국제전자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한때 30%대까지 올랐던 공실률은 현재 0%대까지 낮아졌다.

최근에는 공실이 생겼다 하면 그 자리에 곧바로 피규어나 가챠 매장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4층에서 카메라 매장을 운영하는 B 씨는 가게 건너편 공실을 가리키며 “빈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가챠 매장과 계약이 체결된 곳”이라며 “최근에는 공실이 나기만 하면 어김없이 가챠나 피규어 매장 등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국제전자상가 4층에 위치한 공실. 주변 상인에 따르면 이곳에도 곧 가챠 매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사진=정원혁 기자

공실은 줄고 방문객도 늘었지만 기존 전자제품 매장이 체감하는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7층에서 컴퓨터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평일이든 주말이든 사람이 많아진 건 맞다”면서도 “우리 매장을 찾는 수요와는 다르다. 솔직히 매출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18년 동안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한 한 상인도 “유동인구가 늘어난 것은 체감하지만 영향은 미미하다”며 “케이스를 찾는 손님이 조금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국제전자상가 8층 외곽. 왼쪽 문 닫은 기존 상가 매장과 대조적으로 오른쪽 가챠 기계들은 불이 환하게 켜진 채 운영되고 있다. 사진=정원혁기자

기존 전자제품 상인들은 오히려 임대료 부담이 커졌다고 호소한다. 공실률이 높았던 때에는 임대인들이 낮은 임대료로라도 매장을 채우는 쪽을 택했다. 층 안쪽이나 유동인구가 적은 자리에는 임대료 없이 관리비만 받고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피규어·가챠 매장 입점 수요가 늘고 이들이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기 시작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좋은 자리를 확보하려는 피규어·가챠 매장 업주들이 기존 상인이 영업 중인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자리 소유주에게 기존보다 높은 월세를 제시한 사례도 확인됐다.

5층에서 전자제품 매장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이곳이 피규어와 가챠 등으로 유명해지면서 관련 업체들이 많이 입주하기 시작했다”며 “기존보다 세 배를 더 주고 들어오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임대료를 안 올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기존에는 매장 한 칸당 임대료가 10만 원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보통 30만~60만 원까지 올랐다”며 “좋은 자리에는 기존보다 높은 임대료를 내겠다는 수요도 있다”고 말했다.

한 칸당 월 30만~60만 원은 서초구 주요 상권과 비교하면 높은 금액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기존 전자제품 매장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방문객이 늘어도 매출 증가는 제한적인데, 낮은 임대료를 전제로 영업해온 상인들에게 임대료 상승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늘어난 방문객을 기존 매장 매출로 연결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국제전자센터 상권이 기존 전자제품 중심에서 피규어·가챠 매장 중심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라고 봤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국제전자센터는 원래 공실이 많았던 곳이다. 피규어·가챠 매장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상권 유지 자체가 위태로웠을 수 있다”며 “이 수요가 임대료 상승을 일부 견인한 것은 맞지만, 상권이 침체됐을 때 낮아졌던 임대료가 일정 부분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선 대표는 기존 전자제품 매장이 늘어난 방문객을 매출로 연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봤다. 그는 “피규어·가챠 매장을 찾는 소비층이 다른 소비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서브컬처에 익숙한 소비자를 전자제품 매장과 연결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나 동선 설계, 복합 마케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원혁 기자
garden7074@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형광펜 추가
✕ 형광펜 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