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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규모 대마 신약, 한국은 규제 장벽에 복제약도 ‘언감생심’

특허 만료로 차세대 칸나비노이드 선점 속도전…우리나라는 규제 묶여 R&D ‘가시밭길’

[비즈한국] ‘그림의 떡’. 지난해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연 매출 10억 달러 이상)으로 도약한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의 특허 만료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제약바이오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의료용 대마 성분 칸나비디올(CBD)을 함유하고 있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로 인한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나아가 글로벌 빅파마들은 차세대 대마 유래 화합물(칸나비노이드) 선점 경쟁에 뛰어들고 있지만 한국은 낡은 규제로 인해 제네릭(복제약)조차 쉽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마 성분 의약품 도입 방안’ 정책 토론회에서는 수입에 의존하는 대마 의약품 국산화와 이를 가로막는 규제의 혁신 방안을 두고 심도 있게 논의했다.

연 매출 11조 원 수준의 대마 성분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 특허 만료가 다가오고 있지만 국내 기업은 마약류관리법에 막혀 제네릭 개발조차 시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진=에피디올렉스 홈페이지

“참기름에 녹이면 끝나는데”…법에 묶여 시작도 못 해

에피디올렉스는 영국 GW 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해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대마 유래 성분 최초로 허가를 받은 희귀 의약품이다. 이후 2021년 재즈 파마슈티컬스가 GW 파마슈티컬스를 약 72억 달러(10조 8691억 원)에 인수해 에피디올렉스의 글로벌 독점 판권과 특허를 확보했다.

기존 약물로는 조절되지 않는 레녹스-가스토 증후군(LGS)이나 드라베 증후군(DS) 등 중증·난치성 소아 뇌전증 환자의 경련 발작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에피디올렉스 매출은 10억 5920만 달러(1조 6008억 원)다.

재즈 파마슈티컬스는 에피디올렉스 특허 보호 기간을 2035년까지로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특허 소송 합의 등을 통해 이르면 2030년부터 에피디올렉스 제네릭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CBD 오일 제형의 의약품인 에피디올렉스의 기술적 개발 난이도가 높지 않은 만큼 규제 빗장만 풀린다면 국내 기업들도 충분히 제네릭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함정엽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10g의 CBD를 참기름에 녹이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기술이 아닌 규제 장벽에 막혀 대마 성분 의약품의 개발과 상업화가 만만치 않다. CBD를 원료의약품으로 등록하고 GMP(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설비를 거쳐야 하는데 현행법상 대마가 마약류로 분류되기 때문에 연구 목적의 허가조차 매번 관계 부처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용어 설명
THC(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
대마의 주요 환각 성분.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향정신성 효과와 환각을 유발하며 중독 위험성이 있어 전 세계적으로 엄격히 규제되는 마약성 물질
CBD(칸나비디올)
대마에 함유된 비환각성 화합물(칸나비노이드)의 일종. 의존성이나 향정신성 효과(환각)가 전혀 없고 항경련·항염증·신경보호 효과가 뛰어나 의약품 핵심 원료로 사용됨
헴프(Hemp)
건조 중량 기준 환각 성분인 THC 함량이 0.3% 이하인 대마 식물. 환각 작용을 거의 일으키지 않으며 치료 효능이 있는 CBD 함량이 THC보다 월등히 높아 주로 의료용 신약 원료나 산업용(섬유, 화장품 등)으로 널리 활용
마리화나(Marijuana)
건조 중량 기준 THC 함량이 0.3%를 초과하는 대마 식물. CBD보다 환각 성분인 THC 함량이 더 높아 강한 향정신성(환각) 효과를 유발하며, 오남용 위험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엄격한 마약류로 분류 및 통제되고 있음

차세대 물질로 직행하는 글로벌…한국은 제자리걸음

주요 선진국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FDA 승인을 받은 대마 기반 의약품과 주정부 의료용 대마 라이선스 규제를 받는 제품을 통제물질법(CSA) 상 1급에서 3급으로 하향 조정하는 최종 명령을 내리며 의료용 대마 규제 빗장을 대폭 풀었다. 이번 조치로 의료용 대마 기업은 일반 기업 수준의 세율을 적용받아 업계 전체적으로 연간 23억 달러(3조 원) 이상의 세금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사모펀드, 은행 등 금융권의 대규모 자본 유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으로도 이어진다.

규제에 보수적이던 일본도 올 들어 관련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일반 제품에 들어가는 환각 물질인 THC(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의 잔류 한도를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수준인 0.001% 이하로 묶어 오남용을 철저히 차단하는 대신 임상시험과 승인을 거친 대마 유래 의약품은 합법적으로 처방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초기 수준의 CBD 합법화 논의에서 맴돌고 있다. 현재 경북 안동 일대를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해 제한적인 실증 사업을 진행해 의료용 대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고 있는 단계에 불과하다.

그사이 글로벌 업계는 대마 연구의 초점을 CBD를 넘어 CBG(칸나비게롤), CBC(칸나비크로멘), CBN(칸나비놀) 등 차세대 칸나비노이드 물질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함 연구원은 “CBD의 전구체인 CBG가 다양한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는 등 글로벌 시장은 CBD 이후의 물질들로 신약 개발에 나서는 시점이 도래했는데 한국은 이를 원료로 만져보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마 성분 의약품 도입 방안 정책 토론회 시작에 앞서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 참석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스마트팜서 딸기만 키우지 말고…” 고부가가치 원료 국산화 시급

전문가들은 K-바이오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원료의약품 국산화와 선제적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의약품 원료로 쓰일 대마는 일반 노지가 아닌 온도, 습도, 보안이 완벽히 제어되는 실내의 스마트팜 및 GMP 설비에서 재배돼야 한다.

하지만 고도화된 농업 인프라를 갖추고도 정작 엄격한 통제 탓에 이를 고부가가치 제약 산업에 활용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함 연구원은 “한국은 10여 년 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팜 기술을 구축해 놓고도 현재 그곳에서 파프리카나 딸기만 키우는 실정”이라며 고부가가치 의약품 원료 생산 시설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다만 긍정적인 변화도 감지된다. 그동안 오남용 우려를 앞세워 대마에 철저한 규제 일변도 정책을 고수해온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기류가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식약처는 난치성 질환 환자들의 치료권 보장을 위한 의료용 대마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수준을 넘어 이를 본격적인 제약·바이오 산업으로 확대 및 육성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채규한 식약처 마약안전기획관도 “대마 성분이 규제 물질에서 의약품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면 제네릭 등이 한층 쉽게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신물질 개발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향후 의학적·산업적 개발 가능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기회를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열쇠는 국회와 정부의 실천 의지에 달렸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제도 개선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경북 안동시예천군)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의료용 대마의 국내 재배 및 의약품 제조·수출입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여야 의원 모두 의료용 대마를 옭아맨 낡은 규제 해소에 공감대를 보이는 만큼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진다. 서미화 의원과 함께 이날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김형동 의원은 “대마가 가진 위험성을 철저히 관리하되, 관련 기업들의 연구 결과물이 사장되지 않고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입법 활동에 발맞춰 적극적인 제도적 뒷받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찬 기자

제약바이오 분야 출입하고 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해 정확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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