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7일 서울역 앞 버스환승센터. 택시 승하차 구역 한쪽에 캐리어 세 개가 덩그러니 놓였다. 하나는 입구가 반쯤 벌어졌고 나머지 두 개도 나란히 세워진 상태였다.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놓여 있던 캐리어는 4시간이 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여행객이 잠시 두고 간 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버려진 것이다.
서울역 9-1번 출입구 앞에도 버려진 캐리어 다섯 개가 쌓여 있었다. 겉면에는 노상적치물 강제정비 예고 통지서가 붙었다. 캐리어 주변으론 포장재와 생활 쓰레기가 가득했다.

서울 주요 관광지와 공항에 버려지는 캐리어가 늘고 있다. 바퀴 등 일부가 파손되거나 여행 과정에서 짐이 늘자 새 캐리어를 구입한 뒤 기존 가방은 버려두고 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방치된 캐리어를 단순 폐기물로 곧바로 처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분실물인지 고의로 버린 물건인지 확인해야 하는 데다, 공항에서는 보안상 위험까지 살펴야 해 인력과 시간이 낭비된다.
전날 오후 4시쯤 찾은 인천국제공항에서도 수하물 카트 위와 대합실 한쪽에 주인 없는 캐리어들이 놓여 있었다. 이 캐리어들은 기자가 공항에 머문 약 3시간 동안 그대로 방치됐다. 일부는 바퀴가 파손된 상태였고, 일부는 중국동방항공을 타고 인천으로 입국한 수하물 표식도 남아 있었다.
각 항공사는 무료 위탁수하물 허용 개수와 무게를 정해두고 기준을 넘으면 추가 요금을 부과한다. 이에 외국인들은 출국 전 여러 가방에 나눠 담은 짐을 하나로 합치거나 물건만 별도 가방에 옮긴 뒤 빈 가방을 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 이날도 한 승객이 캐리어 속 물건을 모두 꺼내 별도 가방에 담고는 빈 가방을 놔둔 채 자리를 옮겼다. 기자가 “버리고 가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승객은 답을 피했다.
대형 포대 여러 개에 짐을 옮겨 담은 뒤 캐리어를 버리고 가는 외국인도 있었다. 수하물 정리 공간에서는 일행으로 보이는 두 명이 캐리어와 포대를 펼쳐놓고 물건을 여러 차례 옮긴 뒤 빈 캐리어만 남겨둔 채 떠났다. 이른바 ‘따이공’으로 불리는 중국 보따리상들이 물품 운반 과정에서 캐리어를 두고 간 것이다.

공항 보안요원은 “이용객이 많은 시간대에는 버려진 캐리어인지, 잠시 자리를 비운 승객의 짐인지 바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사람들이 주변에 없을 때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캐리어만 남아 있으면 수거해 분실물 처리 절차를 밟는다”고 말했다. 이어 “매일 몇 건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런 사례가 상당히 자주 발생한다”며 “분실물로 넘겨진 캐리어를 확인했을 때 내부에 쓰레기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공항직원 역시 “승객이 캐리어를 폐기하려는 경우, 별도의 대형폐기물 처리 절차가 필요하다. 내용물이 보이도록 열어둔 상태로 정해진 장소에 두라고 안내하는데, 실제로는 닫은 채 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버린 짐인지 잠시 놓아둔 짐인지 알 수 없어 즉시 치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정 시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분실물 또는 보안 절차에 따라 확인한 뒤 수거한다”고 설명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주인 없는 수하물을 일반 쓰레기처럼 곧바로 치우기 어렵다. 보안시설이기 때문에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가방이 장시간 방치됐을 경우 소유자를 확인하고 위험 물품인지를 살펴야 한다. 결국 버리고 간 빈 캐리어라도 위험 물품과 구분하는 절차부터 거쳐야 한다.
제주국제공항에서도 일부 관광객이 면세품 포장재와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쓰레기를 대합실에 버리고 가 무단투기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일본 역시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함께 공항·호텔·관광지 주변에 버려지는 캐리어가 늘면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서울역 주변에 버려진 캐리어의 최종 처리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통행을 방해하는 물건에는 우선 자진 정비를 요구하는 예고장을 붙이고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관련 부서에서 수거한다. 명백히 쓰레기로 판단되는 물건은 폐기물로 처리한다.
서울 중구청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무단투기인 만큼 CCTV 등을 통해 버린 사람을 특정할 수 있으면 확인 절차를 거친다”며 “캐리어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개당 3000원 안팎의 대형폐기물 처리 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용을 내지 않고 길에 그대로 버리는 사례가 많은 것이 현실”이라며 “외국인 관광객이 숙박업소에 캐리어를 두고 떠나면 호텔 측에서 여러 개를 모아 대형폐기물로 신고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