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아젠다

[사이언스] 여성 과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암흑물질 연구에 기여한 천문학자 베라 루빈의 명복을 빌며

2017.01.01(Sun) 16:20:22

지난 25일 미국의 ‘여성’ 천문학자 베라 쿠퍼 루빈(Vera Cooper Rubin, 1928~2016)이 노환으로 사망했다.

 

베라 쿠퍼 루빈. 사진=바서대학 홈페이지

루빈은 암흑물질 연구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은하의 회전운동을 관측하고 이론으로 계산한 값들과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 천체의 운동은 중력의 영향을 받게 되므로 질량과 거리를 알면 뉴턴 법칙으로부터 회전속도를 계산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들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느리게 돈다. 태양뿐만 아니라 주위의 다른 천체들로부터도 중력을 받게 되므로 그에 따른 영향도 또한 받게 된다. 천왕성 궤도를 관측한 값으로부터 주위에 다른 행성이 있어야 함을 예측해서 해왕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 하나의 예다.

 

이런 내용을 은하에도 적용한다면 은하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일수록 회전속도가 느려져야 한다. 그런데 루빈이 안드로메다은하를 관측한 결과는 계산에 따른 예상보다 훨씬 그 회전속도가 빨랐다. 관측 결과가 맞다면 이론으로 예상한 것보다 더 큰 중력이 작용한다는 것이고 우리가 관측하지 못한 어떤 물질들이 그만큼 더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 부른다. 색깔이 검은 물질이 아니라 어둠 속에 숨은 것처럼 우리에게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였기에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도 처음엔 이 결과를 믿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루빈이 추가로 다른 은하들을 관측하여 같은 결과를 얻었고 다른 천문학자들도 같은 내용을 측정하게 되어 1980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이 암흑물질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중력 법칙이 틀리다는 말이 되는데 그러기엔 뉴턴의 중력 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높은 정확도로 확인되고 증명되어 이용되어 왔기에 확률이 극히 낮은 얘기이다. 현재 과학자들은 우주의 물질 중에서 암흑물질이 차지하는 비율이 85% 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루빈은 미국에서 국보급 과학자로 불리는 사람이고 많은 상을 받았고 노벨상 수상도 유력했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늘 ‘유력한’ 수상 후보였을 뿐이고 끝내 노벨상 수상을 하지 못한 채로 사망했다. 충분한 업적과 자격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떤 이는 노벨상 위원회에게 루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아마도 여성이기 때문에) 비판을 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의 베라 루빈. 사진= 바서대학 라이브러리

 

프린스턴 대학원으로부터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입학이 거절되기도 했던(카탈로그도 받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루빈이 여성에게 한없이 불공정한 시절을 그저 이겨내온 것만은 아니었다.  어린 아기가 있으니 학회에는 참석하지 말고 루빈의 연구결과는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겠다는 수석교수의 말에 루빈은 생후 1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학회에 참석했다. 여성 화장실이 아예 없는 곳에서는 여성 화장실이라고 종이에 직접 써서 붙이기도 하고, 여성 발표자가 더 많아야 한다고 학회에 요구하기도 하는 등 당차게 싸우고 요구하며 살았다.

 

그런 그도 말년의 인터뷰에서는 어지간히 변하지 않는 세상에 지쳤다는 내용의 말을 했다. 자신의 능력을 오롯이 해당 분야에 쏟기도 바쁜 사람들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싸우듯이 살아야만 살아남게 하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합리하다.

 

2009년 여성 천문학자 모임에 참석한 베라 루빈(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NASA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4년도 기준으로 과학기술연구개발인력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18.7%이다(정규직 중에서는 13.9%가, 비정규직에서는 32.8%가 여성이다). 관리자나 연구과제책임자로 범위를 좁혀 보면 8%를 넘지 못한다. 지난 10년간 전문학사에서부터 박사과정까지의 자연‧공학계열의 여학생 비율이 30%가 조금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충분하지 못한 비율이다.

 

남자와 여자는 화장실이나 목욕탕을 들어갈 때나 ‘구별’하는 것이지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여성’ 과학자라는 말도 구별이 꼭 필요할 때나 사용되는 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인철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


[핫클릭]

· [사이언스] 알파고에서 해커까지 ‘올해의 과학자들’
· [사이언스] 과학을 즐겨라,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SNL)
· [사이언스] 다시 살아난 촛불의 과학
· [사이언스] 태반주사, 마늘주사가 독감 예방접종용이라고?
· [사이언스] 말 달리자!
· [사이언스] 우리가 별자리를 배우는 이유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