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삼성전자는 지난 1년간 줄곧 빨간불이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낸 회사답지 않았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8월 열린 1심 재판서 5년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누가 이기건 대법원까지 갈 수밖에 없는 재판. 이제는 조직의 안정화를 위해서 조금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거의 2년 만에 역대급 정기 인사 및 조직개편이 단행됐다.

올해 삼성전자 정기 인사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안정’이다. 와병과 구속으로 인한 오너 일가의 부재, 그리고 지금까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그룹 미래전략실 해체로 인한 공백을 안정적으로 메워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다. 이 부회장 구속 상황에서의 그룹 지배력 유지 및 출소 이후 경영권 승계에 대한 기반도 다져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 이재용 부회장 승진과 동시에 사업 부문을 DS(디바이스 솔루션), CE(가전), IM(IT모바일) 3개 부문으로 나누어 3각 CEO 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5년 만인 올해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S 부회장과 윤부근 CE 사장, 신종균 IM 사장이 한꺼번에 경영 2선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각 부문의 2인자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김기남, 김현석, 고동진 사장이 각 부문을 책임지게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세대교체’라고 표현한다. 정확히는 ‘이재용 세대로의 교체’다. 그렇다고 물러난 CEO들이 완벽히 업무에서 손을 떼는 것도 아니다. 단순 예우차원에서 고문 자리가 아닌 나름대로의 역할이 주어졌다. 권오현 부회장은 회장으로,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은 부회장으로 각각 승진 발령되면서 각각 종합기술원장, CR담당, 인재개발 담당의 임무를 받았다. 용퇴를 예우로 받은 모양새를 통해 보다 안정적인 세대교체를 도모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 이사회 중심 의사결정으로 오너 공백 대처

지금까지 오너 중심의 경영체제 비판에 대한 삼성전자의 주된 방어 논리는 ‘인수합병과 같은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대규모 투자 결정의 용이성’이다.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단도 재판에서 비슷한 논지를 폈다. 하지만 1심 패소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복귀는 한동안 요원한 상황.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건강이 경영에 나설 만큼 회복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이번 삼성전자 인사에서 엿보인 경영공백의 대안은 이사회다.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평가받는 이상훈 경영지원실장(CFO)이 이사회 의장으로 내정됐다. 항소심을 진행 중인 이 부회장이 옥중에서 구체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만큼, 최측근을 이사회 의장에 둠으로써 간접적인 경영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이사회 중심의 경영 체제는 이 부회장의 오랜 경영 구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피아트크라이슬러(FCA) 지주회사인 사외이사를 다년간 맡으며 이사회 중심의 서구식 경영체제를 경험하기도 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린 것도 같은 포석이다. 직접 회장을 맡아 회사를 진두지휘했던 부친과는 확실히 다른 스타일의 접근이다. 물론 승계 작업이 마무리 된 이후 전문경영인에게 실무를 맡기고 본인은 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지만, 지금 같은 오너 일가의 부재 상황에서 좀 더 도입을 앞당긴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 지나치게 겸손한 그 이름 ‘사업지원TF’의 역할은?

삼성전자 이사회가 해체한 그룹 미래전략실의 대규모 투자 결정 임무를 맡는다면, ‘사업지원TF’는 전자 계열사 간의 업무 조율 및 인사 관리를 맡게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부서 이름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업지원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지금까지 삼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조직의 명칭은 늘 변했다. 비서실을 시작으로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과 같은 다소 거창한 명칭이 붙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업지원이라는 다소 몸을 낮춘 느낌에 일시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태스크포스(TF)라는 꼬리표도 달렸다.

삼성전자 내부에 이를 그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벌써 ‘작은 미전실’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미래전략실 해체로 떠난 6명의 사장 중 유일하게 정현호 사장이 책임자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정 사장 역시 이상훈 사장과 마찬가지로 재무 라인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미전실 경영지원팀장, 인사지원팀장을 거치며 그룹 내 인사를 최근까지도 챙겼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올해 인사 역시 정 사장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는 이유다. 위기 상황에서 재무라인을 핵심에 배치해온 삼성의 관행을 볼 때 설득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과거 미전실 기능 중 일부인 계열사 간 업무 조율 역할을 가져온 것으로 보면 된다”며 “작은 미전실 같은 시각은 억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2년 만의 임원 인사에 기대감 증폭 “위기는 좋다”​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 인사는 일종의 파도다. 사장단 인사가 마무리 된 가운데 금주 내로 임원 인사가 단행될 예정이다. 임원 인사 규모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100명 이상의 임원 승진자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의 인사 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용어가 ‘신상필벌’이다.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말도 즐겨 써왔다. 삼성전자가 올해 역대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는 점과, 불법승계 수사 여파로 지난 2년간 불필요한 임원 인사를 자제해왔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다.

특히 DS, CE, IM 각 부문장의 나이가 50대로 크게 내렸다는 점에서, 두 단계 이상 승진 발탁 인사도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대교체 기조 속에 조직 자체가 젊어지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는 논리. 다만 같은 이유로 60대 임원들의 퇴진도 함께 점쳐진다.

삼성전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2년 만에 실시되는 정기 인사인 만큼 내부 분위기는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편”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 실적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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