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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성인을 위한 잔혹동화 '인랑'과 '무사 쥬베이'

실사판 원작 '인랑', 일본문화 개방 첫 타자 '쥬베이', 일본 애니메이션붐 선도

2018.07.06(Fri) 14:46:22

[비즈한국] “우리는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늑대다.”(‘인랑’​ 중)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작 ‘인랑’(1999)를 실사로 만든 영화 ‘인랑’이 ​이달 ​개봉한다.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등 톱스타들의 출연과 함께 한국 영화 미장센의 대가인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올 여름 휴가철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인랑’(왼쪽)과 한국 실사 영화 ‘인랑’.


‘인랑’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바람을 타고 극장용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2000년 9월 정식 수입돼 개봉된 ‘무사 쥬베이’(1993)에 이어 같은 해 12월 개봉됐다. 

 

‘무사 쥬베이’와 ‘인랑’은 개봉 당시 한국 관객들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두 작품은 애니메이션을 아동이나 청소년 전유물로 생각하던 기성세대에게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얼마든지 세대를 초월해 통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두 작품은 성인을 위한 잔혹동화다. ‘무사 쥬베이’는 유혈 낭자한 폭력 미학의 한 획을 그었고 ‘인랑’은 조직 간의 암투와 비극적인 두 남녀의 사랑을 가슴 아프게 형상화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전까지 일본 대중문화는 국내에서 음성적으로만 유통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더 이상의 문화 쇄국정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단계적인 개방에 나서 터부시됐던 일본 대중문화를 양지로 이끌어냈다. 

 

일본 대중문화에 빗장을 걸던 시절에도 유독 TV 용 일본 애니메이션은 당당히 공중파 방송을 탔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극장 개봉은 여전히 터부시됐다. ‘인랑’ 과 ‘무사 쥬베이’는 이러한 금기를 깨고 국내 극장에서 개봉해 극장용 일본 애니메이션 붐의 선도 역할을 한 작품들이다. 

 

 

 

‘인랑’은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대표작으로 ‘공각기동대’(1995)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썼다. 작품 내내 암울한 분위기로 일관하며 보고 난 후에도 관객들을 한동안 가슴 먹먹한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할 만큼 강렬한 뒷맛을 남기는 걸작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은 점령군의 통치를 벗어나 ​십여 년 동안 ​고도성장을 위한 고밀도 경제 정책을 시도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실업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국민 중 일부는 무장을 통해 흉악범죄와 반정부 투쟁에 나서면서 국가적인 혼란은 더욱 악화된다. 대표적인 반정부투쟁 조직인 ‘섹트’는 기존 경찰조직인 자치경찰을 유린할 만큼 막강한 화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일본 정부는 사회적 혼돈을 수습하기 위해 별도로 강력한 군사력과 독자적 작전권을 가진 경찰조직인 수도경을 창설한다.

 

수도경은 첩보와 수사를 담당하는 공안부와, 중화기와 특수 방호복을 입고 ‘섹트’를 강경 진압하는 ‘특수무장기동경비대(특기대)​’로 구성돼 있다. 한동안 수도경의 활약으로 존재 이유마저 퇴색해버린 자치경은 흑색 여론 공작을 통해 수도경을 해체시켜 흡수 합병하고자 한다.  수도경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안부와 특기대가 대립하면서 공안부는 특기대를 희생물로 살아남을 계획을 세운다. 특기대는 공안부의 음모에 대응하기 위해 소수 정예의 비밀 조직을 창설하는데 이 조직이 바로 ‘인랑’이다.

 

‘인랑’의 주인공 후세 카즈키는 특기대 소속이자 ‘인랑’의 대원이다. 어느 날 카즈키는 섹트의 하부 조직 중 하나인 ‘빨간 두건단’에 속한 소녀가 폭탄을 운반하는 것을 발견해 사살을 망설이는 순간 놀란 소녀가 자폭하면서 동료 특기대원들까지 잃고 만다. 카즈키는 이 사건으로  근신과 재교육을 받게 되고 자신을 자폭으로 죽은 소녀의 언니라 소개하는 아마미야 케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인랑’의 두 주인공 후세 카즈키(왼쪽)와 아마미야 케이.


그러나 케이는 죽은 소녀의 언니가 아니었고 ‘빨간 두건단’ 조직원 출신으로 수도경 공안부에 체포돼 특기대 해체 작전에 투입된 여자였다. 공안부는 케이가 카즈키에게 폭탄을 전달하게 하는 상황을 연출해 이 장면을 촬영 후 자치경에게 넘겨 특기대 해체의 명분으로 삼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인랑’은 이를 모를리 없었다. 공안부의 마수에서 벗어난 카즈키는 케이를 데리고 하수도로 내려가 ‘​인랑’​ 조직원들과 조우한다. 카즈키는 특기대 복장을 차려 입고 그와 케이를 쫓아온 공안부 요원들에게 MG42 기관총을 난사해 전원 사살한다.

 

이후 인랑의 리더인 토오베는 카즈키에게 케이를 사살할 것을 명령한다. 케이가 살아 있으면 공안부에게 빼앗겨 특기대 해체 음모에 투입될 수 있지만, 그녀를 사살한 후 생사 여부를 숨기면 공안부는 케이와 관련한 어떠한 공작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즈키와 케이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카즈키는 한동안 토베에의 명령을 거부하려 하지만 케이는 죽음을 각오하고 카즈키의 품에 안겨 울면서 동화 ‘빨간 두건’ 마지막 부분을 소리친다. 카즈키는 극심한 심적 고뇌 속에 품에 안긴 케이를 향해 결국 권총 방아쇠를 당긴다.

 

토오베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늑대는 빨간 두건을 잡아먹었다.” 자폭하려는 소녀를 사살하지 못해 소녀와 동료들까지 목숨을 잃게 한 후세 카즈키지만 결국 조직을 위해 사랑하는 케이를 사살함으로써 참혹한 비극을 완성해낸다. 조직 ‘인랑’은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늑대’​라는 뜻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짐승에 지나지 않는 조직원들의 서글픈 운명을 상징하는 말이다.

 

작품 ‘인랑’은 밀리터리 덕후(밀덕)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많다. 특기대가 쓰는 철모는 독일군 철모 형태와 유사하며 마지막 총격전에 쓰이는 육중한 MG42 기관총, 소총과 권총 등 총기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쓰던 총기를 모델로 했다. 작화 면에서 총기의 디테일, 화력, 탄피 배출과 재장전에 이르기까지 묘사가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은 ‘인랑’ 콘티를 홀로 3년에 걸쳐 그렸을 만큼 작품에 지성을 쏟아부었다.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일본 애니메이션도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로 전환했지만 ‘인랑’은 제작에 참여한 인력들이 수작업을 통해 완성해냈고 배경, 디테일한 표현 , 인물 표정 등이 마치 실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작화가 탁월하다. 

 

방랑하는 닌자를 다룬 ‘무사 쥬베이’.


‘무사 쥬베이’는 일본 사무라이물과 닌자물을 일컫는 ‘찬바라’ 장르의 애니메이션이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실사 영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과장되면서도 멋진 액션신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사 쥬베이’는 잔인한 폭력미학을 뜻하는 하드고어 애니메이션 장르에서 정상급 위치에 오른 가와지리 요시아키의 대표작이다. 92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쥬베이는 저마다의 개성과 필살기를 가진 강적들과 논스톱 대결을 펼친다. 눈 돌릴 틈 없는 장면들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작품은 막을 내린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오사카를 근거지로 한 토요토미 막부가 붕괴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현 도쿄) 막부를 창시한 지 얼마의 세월이 흐른 시점이다. 주인공 키바가미 쥬베이는 지방 군소번에 있는 닌자 조직에 한때 몸을 담았지만 닌자 조직의 두령이던 히무로 겐마의 획책에 휘말린 뒤 동료들과 겐마를 처단하고 방랑하는 닌자로 생활한다. 

 

쥬베이는 검을 초고속으로 칼집에서 뽑아내는 발도술과 함께 검을 휘둘러 발생한 검풍으로 원거리의 적을 섬멸하는 ‘카마이타치’ 기술의 절대 고수다. 자신이 죽인 줄 알았던 히무로 겐마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쥬베이는 경악한다. 쥬베이는 미모의 여자 자객 카게로와 도쿠가와 막부의 첩자인 다쿠앙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히무로 겐마를 포함한 귀문 8인조를 모두 처단한다.

 

작품에서 다쿠앙은 토요토미 막부의 재기를 노리는 세력을 정탐하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쥬베이를 중독시킨다. 다쿠앙은 전국(센코쿠) 시대부터 에도 막부 초기까지 실존했던 인물 다쿠앙 소호가 모델이다. 다쿠앙 소호는 한일 양국의 식생활 문화에 변혁을 일으킨 단무지를 개발한 인물이다. ‘무사 쥬베이’에선 삿갓을 쓴 키 작고 간교한 노인으로 나오지만, 일본의 검신 미야모토 무사시를 다룬 창작물에서 그의 정신적 스승으로 자주 등장한다. 

 

  

 

‘무사 쥬베이’에는 쥬베이와 카게로의 러브 라인이 등장해 자칫 액션 일변도로만 치우칠 수 있는 작품의 균형을 잡아준다. 카게로는 온몸에서 독을 발산하는 저주받은 능력을 갖추고 있어 그녀를 품은 남자를 황천길로 보내버리는 숙명의 여자다. 하지만 다쿠앙에 의해 중독된 쥬베이에게 그녀의 독은 오히려 해독시키는 독성이다. 영화 종반부 카게로는 겐마로부터 일격을 당해 죽어가면서 쥬베이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그녀는 “당신한테 빠지게 될까 봐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라며 쥬베이를 해독시키기 위해 키스를 하고 숨을 거둔다.

 

히무로 겐마는 막대한 황금을 가로채 최강의 닌자 군단을 만들어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쥬베이의 무공과 다쿠앙의 지략으로 겐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최후를 맞는다. 

 

‘무사 쥬베이’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극장 개봉 훨씬 전의 일이다. 1990년대 후반 제목을 한자 그대로 읽은 ‘수병위인풍첩’이란 이름으로 불법 복제 비디오 테이프나 PC통신을 통해 암암리에 유통돼 극장 개봉 전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수병위’란 한자를 일본식으로 읽으면 주인공의 이름인 ‘쥬베이’가 된다. 

 

쥬베이(왼쪽)와 카게로.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2003년 13편의 ‘수병위인풍첩 용보옥편’이라는 TV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방영됐지만 원작 파괴라는 혹평 속에 종영한 흑역사가 있다. ‘용보옥편’은 일단 TV용으로 어린이 시청자들까지 타깃을 확대하다 보니 원작 특유의 잔혹하고 암울한 톤의 연출을 할 수 없는 한계가 분명했다. 용보옥편은 밝은 톤으로 색채를 가다듬고 잔인한 장면을 최소화했지만 그 이질감으로 인해 ​원작에 열광하던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을 당했다. 

 

‘무사 쥬베이’는 국내 극장 개봉 당시 너무 늦은 개봉과 마니아성이 강한 특성으로 인해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성인 취향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특히 서구에서 ‘무사 쥬베이’는 일본 애니메이션 걸작인 ‘아키라’(1988)와 ‘공각기동대’와 같은 반열에 올라 있다. ​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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