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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0개월째 대금 미지급…K2 전차 국산화 실패 '줄도산' 현실화

1조 원대 방위사업 무산의 그늘…정부-원청업체 "지금으로선 답 없다" 곤혹

2018.10.25(Thu) 15:00:40

[비즈한국] 우리나라 ‘방위산업 메카’로 꼽히는 경남 창원의 가을은 유독 쌀쌀하다. 수년째 방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국산 전차 ‘K2흑표’ 국산화 사업이 결국 무산된 여파다. 1조 원에 달하는 비용이 투입돼 적지 않은 수의 창원 지역 방산업체, 협력업체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사업 무산에 따른 후속 조치를 위해 직접 계약한 대형 방산업체와 협의를 최근까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사업 규모가 워낙 큰 데다, 풀어야 할 실타래도 꼬일 대로 꼬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문제는 협의가 지연되면서 사업에 참여한 대형 방산업체들은 물론, 협력업체들까지 비용을 온전히 받지 못해 최근 경영난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공장 가동률은 반 토막이 나고 적자를 보는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줄도산의 공포’가 창원을 덮치고 있다.

 

남한강 도하 훈련을 하는 K2흑표 전차. 양산 사업이 완료되면 우리나라 군의 주력 전차가 된다. 사진=연합뉴스

 

# “K2흑표 국산화 핵심 업체 계약 위반했다

 

K2흑표 사업은 1995년 ‘우리 손으로 만든 새 전차’를 목표로 시작됐다. 2010년 K2흑표 324대 도입이 결정됐다. 군이 청사진을 그린 지 15년 만이다. 사업이 완료되면 우리나라 군의 주력 전차가 된다. 2015년 1차 양산분 100대가 실전 배치됐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은 K2흑표 2차 양산(106대)이다. 1차, 2차 양산에만 2조 1500억 원이 투입됐다. 2022년 이후 진행될 3차 양산까지 더하면 총 사업비는 약 3조 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K2흑표 2차 양산을 위한 계약 관계는 크게 방위사업청(정부), 현대로템,​ S&T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협력업체 순이다. 최종 완성품을 만드는 체계 종합 업체 현대로템을 중심으로, 가지처럼 협력업체들이 뻗어 있다. 이 가운데 S&T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는 K2흑표 국산화 사업의 핵심 업체다. ‘심장’인 ‘파워팩(엔진+변속기)’을 개발했다. 1차 양산분에는 독일제 엔진과 변속기를 탑재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엔진을, S&T중공업이 변속기를 개발했다. 

 

그런데 지난 5월 8일, K2흑표 국산화 사업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온 한 협력업체가 “원청업체 S&T중공업이 계약을 어기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업이 시작된 이후 협력업체가 어떤 형태로든 원청업체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협력업체가 공정위에 제출한 ‘불공정하도급거래 신고서’를 보면, 해당 업체는 2015년 8월 S&T중공업과 K2흑표 전차 2차 양산을 위해 2017년 10월까지 총 72종의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이에 따라 해당 업체는 약속한 물량의 90%까지 생산을 마쳤지만, S&T중공업은 2017년 2월 이후부터 ​납품을 받지 않고 ​대금 또한 현재까지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고사 위기 놓인 K2흑표 사업 참여 업체들

 

협력업체가 받아야 할 돈은 약 4억 원. K2흑표 전차 사업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지만 이 업체에겐 ‘전부’다. 이 업체 대표는 “운영 자금이 마른 지 오래”라며 “K2흑표 전차 사업 참여 당시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중소기업정책자금)을 올해부터 돌려줘야 한다. 상환연기도 되지 않아 총 12명이었던 직원을 4명으로 감축했다. 일단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사채도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K2흑표 사업에 참여한 방산업체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무겁게 바라본다. 남의 일로 생각하기엔 처한 현실이 너무 닮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협력업체 대표는 “방위사업 특성상 생산해둔 부품은 다른 곳에 쓰지 못한다. 납품하지 못하면 전부 고철로 폐기해야 한다”며 “대금을 받지 못하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뿐, K2흑표 전차 사업에 참여한 업체들 사정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관측도 나온다. 창원에서 만난 한 중소 방산업체 관계자는 “올 것이 왔다는 게 업계 분위기”라며 “버틸 여력이 없는 영세 사업장이 가장 먼저 쓰러졌다.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부터는 그나마 버티던 중소기업들도 비슷한 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즈한국’은 지난 9월부터 K2흑표 전차 사업과 관련, S&T중공업과 계약한 협력업체 30곳의 대표 및 관계자들을 만났다. 현재까지 대금을 제때 받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S&T중공업 측은 정확한 협력업체 숫자를 밝히진 않았으나 “2017년 2월까지 발주 분에 대해서는 대금을 지급하고, 이후 남은 계약 기간 발주는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범위를 사업 전체로 넓히면 비슷한 사정을 겪는 업체의 규모와 수는 더 늘어난다. 방위사업청(방사청)과 방산업계 등에 따르면, K2흑표 전차 2차 양산 사업에 참여한 업체는 총 4585곳. 100인 이하 기업이 약 65%다. 고용인원은 11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업체 역시 제때 비용을 받지 못했거나 일부만 받은 상황이다. 

 

# 국산화 사업 실패 두고 정부-업체 책임 공방

 

K2흑표 사업에 참여한 업체들의 ‘줄도산’ 우려가 번지고 있지만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단순 국산화 사업 실패에 따른 결과로만 보기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방사청은 2016년 12월부터 순차적으로 K2흑표 완성품 107대를 현대로템으로부터 납품받기로 계약했지만, 현재까지 2년가량 지연되고 있다. 생산지연은 앞서의 S&T중공업이 개발한 변속기 결함으로 발생했다. 2016년 2월부터 1년 동안 총 6차례 내구도 시험에서 결함이 발생했다. 오일 순환펌프가 파손돼 기름이 새거나, 변속장치가 닳고 주요 부품에 금이 가는 현상이었다. 

 

변속기 성능평가 중인 K2흑표 전차. 사진=연합뉴스

 

번번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S&T중공업의 변속기는 결국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중단된 사업을 더 미룰 수 없었던 방사청은 지난 2월 국내산 엔진과 독일산 변속기로 구성된 ‘하이브리드 파워팩’을 탑재하기로 결정했고, 수입 주문도 끝냈다. 2019년 말부터 독일산 변속기가 들어온다. 

 

문제는 2년간 생산이 지연된 데 대한 책임 소재다. 규정대로라면 1조 원에 육박하게 될 ‘지체상금’이 걸려서다. 지체상금은 쉽게 말해 ‘벌금’이다. 채무자가 계약기간 내에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채권자에게 지불하는 금액을 말한다(관련기사 [김대영의 밀덕] 국내업체 역차별, '지체상금'을 지체없이 고발한다). 

 

K2흑표 사업에선 방사청과 직접 공급계약을 맺은 현대로템이 지체상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지체된 ‘과정’을 보면 현대로템으로선 억울할 수밖에 없다. 생산을 책임지고 완성품을 만드는 체계종합 업체지만, 변속기 개발사가 6번이나 내구도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지연된 만큼 모든 책임을 지는 건 가혹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현대로템 측은 현재 “S&T중공업을 선정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2014년 11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가 K2 전차에 S&T 중공업의 변속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방추위는 방위사업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다. 국방부 장관이 위원장, 방사청장이 부위원장이다. 현대로템은 변속기 개발 업체 선정과 관련한 결정권이 없었다. 

 

국산화 사업이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변속기를 수입하기로 결정된 이후에도 책임 소재 공방이 이어지자, 방사청이 대안을 내놨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납품이 지연될 1530일 가운데 885일은 현대로템의 책임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나머지 645일도 현대로템이 지체상금 면제원 등을 요청할 경우 추가 검토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 현대로템이 부담해야 할 지체상금은 1500억여 원으로 추산된다. 

 

방산업계는 방사청이 면제원을 받으면 나머지 645일에 대해서도 현대로템에 책임을 묻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협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방사청 대안을 따르더라도 현대로템이 일단 실패 책임을 지는 형태인 데다, 면제원 제출 시기도 2차 양산 종료 이후(2020년)다. 최근 현대로템은 이 방침이 중간에 변경되지 않도록 방사청에 앞서의 대안과 면제원 접수 등을 계약서상에 명확히 명시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의견을 조율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K2흑표 국산화 사업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S&T중공업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S&T중공업 측은 “새 개발 제품인 만큼 성능 향상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평가 기준이 너무 가혹했다”고 주장한다. 방사청이 외국산 변속기는 320시간(9600km)을 주행하는 시험 과정에서 초기 단계 정비를 허용했지만, 국내 변속기는 정비를 일절 허용하지 않았고 변속기 작동 횟수도 외국산은 1만 회인 데 비해 국산은 5만 7280회를 요구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방사청과 현대로템이 원만히 해결을 하더라도 경우의 수는 더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대로템과 S&T중공업이 책임 소재를 두고 공방을 벌일 수 있고 S&T중공업이 방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은 소송전이 벌어질 경우 마무리되는 데까지 5~7년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9월 12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방위산업전에서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K2흑표 전차 파워팩을 살펴보며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교통정리 끝나야 해결책 나올 것

 

지금으로선 협력업체들의 ‘줄도산 공포’에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정부-현대로템-S&T중공업 간의 ‘교통정리’가 끝나야 협력업체에 대한 논의를 시작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방사청과 각 업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미 도산하는 업체가 등장하기 시작한 만큼 ‘교통정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협력업체들이 사업 실패 이후 짊어진 빚과 이자는 매일 불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S&T중공업의 한 임원은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일단 방사청과 현대로템 협의가 마무리돼야 한다. 어떤 결과든 결정이 내려져야 협력업체들에게도 대금 지급 등과 관련해 ‘약속’을 해줄 수 있다”며 “사업 중단 여파로 납품도 받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협력업체들과 계약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7년 2월까지 발주한 변속기 42대분까지는 확실히 보장할 방침이다. 특히 일부 업체들이 겪는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업체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해서 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S&T중공업도 사업이 중단된 이후 직원 150여 명을 휴직으로 전환했다. 내년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협력업체들에게 내부 사정을 설명하면서 꾸준히 대화를 나눌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당장은 뚜렷한 해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일단 현대로템에 귀책사유가 크게 없다는 건 인지하고, 협의를 긍정적으로 진행 중”이라며 “현재까지 K2흑표 사업 관련 협력업체 사정에 대해 논의는 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계약관계상 방사청과 직접 계약을 맺은 업체들이 아닌 만큼, 방사청이든 정부든 예산을 들여서 보전을 해주는 등의 조치를 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각 사업, 개별 업체마다 정부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게 쉽지 않아 새 규정을 도입하는 등 정책적으로 접근할 방침”이라며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연구 개발에 실패할 경우 지체상금을 완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성실수행인정 제도를 기획재정부와 추진 중이다. 제도 도입으로 원청업체 부담이 줄면 자연스레 협력업체들에게 넘겨지는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선 K2흑표 사업을 민감한 주제로 보고 있다. 이번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책임 소재를 두고 소속 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여기에 최근 KAI(한국항공우주산업)의 미국 고등훈련기 사업 수주 실패까지 겹친 만큼 ‘줄도산 공포’가 더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항공산업체들은 경남 창원, 사천 등에 모여 있다. 

 

국회 국방위는 26일 창원을 방문해 현대로템 경남 창원공장과 S&T중공업과 사천의 KAI를 시찰한다. 국회 국방위 소속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25일 ‘비즈한국’에 “협력업체 입장에서 약속된 대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건 그 규모를 떠나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다”며 “그동안 우려되던 줄도산이 현실화되고 있다. K2흑표 사업 책임 공방이 벌어지면서 그 피해를 협력업체들이 고스란히 지고 있는 것이다. 무기체계 사업을 총괄하는 방사청이 계약관계상 조치가 어렵다며 나 몰라라 하는 건 상황을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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