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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는 지금①] "구조조정 왜 없겠나" 대우조선의 도시, 주민들의 한숨

조선소 앞 명절 연휴 반기는 플래카드 하나 없어…"지금도 장사 안 되는데 더 걱정"

2019.02.04(Mon) 14:31:50

[비즈한국] “가만 두겠어요? 허허. 현대에서 점령군이 내려오면 일단 윗대가리부터 쳐내고 점점 시작하겠지.” 설 명절을 하루 앞둔 4일, 발길이 끊긴 휴대전화 직판 매장을 홀로 지키고 있던 김 아무개 씨는 한숨을 뱉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남문 앞 거제시 아주동엔 명절 연휴를 반기는 플래카드 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남문 앞엔 명절 연휴를 반기는 플래카드 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깜짝 인수·합병 소식의 충격은 가셨지만 구조조정 불안감은 팽배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지난 1월 30일, KDB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인구 25만 명, 그 중 조선업 종사자는 9만 2000명(2015년 기준)에 달했던 거제시에 이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옥포조선소가 동종 업계에 팔리면, 추가 구조조정은 불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LNG운반선을 비롯한 상선 부문과 해양플랜트 부문에 이어 특수선까지 업무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중복되는 부문을 합치고 빼다보면 잉여 인력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미 지난 3년간 대우조선의 직영 노동자만 3000명이 일을 그만둔 상황. 인수 발표 엿새가 지난 시점에서 충격은 사그라들었지만, 조선소에서 사람이 더 잘려나갈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지난 1월 31일 이동걸 산은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의 구조조정은 없다’고 못 박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의 구조조정은 없다고 밝혔지만, 이 말을 믿는 거제 시민은 없었다. 사진=이종현 기자

 

텅 빈 국밥집에서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있던 김 아무개 씨는 “구조조정이 왜 없겠나. (구조조정 없다는)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 그건 여기 있는 나도 안다. 지금도 장사가 안 되는데 더 걱정”이라고 전했다.

 

34년째 대우조선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박 아무개 씨는 “한 1~2년 정도는 안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노조도 있고 지역 경제도 눈치도 봐야할 거다. 근데 누가 믿겠나. RH중공업(현 현대삼호중공업) 때도 그랬다”고 덧붙였다.

 

사실 인수·합병은 예견된 일이었다. 대우조선은 20년 동안 주인 없는 회사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1999년부터 산업은행이 관리해왔다. 그동안 방만 경영과 각종 비리가 터지며 민간 주인 찾기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2008년 한화그룹이 매각을 추진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무산됐다. 

 

이어 조선 경기가 하강 곡선을 그리면서 ‘빅3’(현대중공업·대우조선·​삼성중공업) 체제를 ‘빅2’ 재편하자는 목소리가 줄곧 제기돼 왔다. 한정된 일감을 따내기 위한 과당경쟁이 심화됐기 때문. 특히 2017년 상반기 2차 지원안을 확정한 뒤, 정부는 2018년엔 대우조선의 민간 주인을 찾겠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3월 퇴근 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남문을 나서고 있는 모습. 지난 3년간 대우조선 정규직만 3000명이 정리해고 됐다. 인수·합병 소식은 추가 구조조정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인수·합병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은 분분했다. 인수·합병이 무산됐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로 인수·합병 자체는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협력업체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직원 김 아무개 씨는 “주인을 찾긴 찾아야할 거다. 근데 현대중공업에 가는 것보단 동종 업계가 아닌 좀 탄탄한 회사에 넘겨주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구조조정도 없고 이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답했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인수·합병 소식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1월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동종사(조선업) 매각 반대 △당사자(노동조합) 참여 보장 △분리 매각 반대 △해외 매각 반대 △일괄 매각 반대 △투기자본 참여 반대 등을 제시했다. 

 

하태준 대우조선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노동자를 배제하고 이뤄진 이번 밀실 합의에 의한 매각은 즉각 멈춰야 한다”며 “동종 업계에 넘어가게 되면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이제까지 회사가 어려워 뼈를 깎는 인력 감축, 임금 삭감을 견뎌왔는데 이런 식의 통보에 감정이 많이 상한 상태”라고 전했다. 하 실장은 설 연휴가 끝나는 7일부터 쟁의발생 결의 찬반 투표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피인수자’ 입장에서 현재는 드릴 말씀이 없다. 일단 지켜보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거제=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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