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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글로벌 마케팅] '하우스 오브 카드'와 '사인펠드'의 성공 뒤엔…

파일럿 만든 뒤 철저하게 데이터 점검…그러나 데이터보다 중요한 건 사람의 '감'

2019.06.19(Wed) 09:28:04

[비즈한국] 할리우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이 어마어마한 제작비용을 쏟아부은 블록버스터와 다양한 소재의 미드, 화려한 조명과 스타들, 현란한 파티 등을 떠올릴 것이다. 2008년 폭스(FOX)사 텔레비전 부서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 욕망의 상징, 할리우드! 그러나 막상 리서치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런 환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화려한 무대 뒤의 각종 장치였다. 바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온 텔레비전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전략이 그것이다. 

화려한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 뒤에는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냉정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 TV쇼의 목적은 ‘광고’

오늘날 TV쇼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각종 엔터테인먼트와 예술적인 표현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독립적인 상품이다. 그러나 TV 산업의 태생은 TV쇼 자체가 아니라 인기 있는 쇼로 시청자를 확보해 비누 광고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현재 콘텐츠 시장은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넷플릭스(Netflix)와 같은 유료 구독(Subscription) 방식이나, 한 편씩 사서 보는 방식 등 여러 비즈니스 모델이 어우러져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크리스 앤더슨의 롱테일 이론이 설명하듯, 이제는 소수의 취향에 맞춘 쇼도 시청자를 만날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비지니스 모델이나 TV쇼를 만드는 시스템 또한 변화를 거듭한다. 

흥미로운 것은 아무리 시스템이 변해도 광고주 입장에서 미국 전역의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나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으로는 여전히 TV 광고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TV쇼 비즈니스에서 방송국과 광고주가 협상을 할 때 쇼의 가치를 반영하는 지표는 시청률이다. 따라서 방송사에서 새롭게 프로그램을 편성할 때 무게를 두는 점은 이 쇼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 매년 여름, 미국 방송계에서 벌어지는 일

매년 여름은 새로운 쇼의 파일럿(pilot, 시험 방송)이 만들어지고 평가를 받는 시기다. 2019년 미국의 FOX, CBS, NBC, ABC, CW 등 5대 방송사가 주문한 파일럿은 총 64개라고 한다. 이 중 몇몇을 골라 가을 시즌에 내보낼 새로운 TV 시리즈로 결정하는 것은 방송국으로서는 엄청난 돈이 걸린 도박이다. 

미국의 5대 방송 네트워크. 매년 여름이면 가을 시즌을 겨냥한 파일럿 프로그램 수십 개가 만들어지고 테스트된다.


제작사 역시 살 떨리긴 마찬가지다. 파일럿이 시리즈로 발전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 채 프로그램 제안 자료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친다. 캐스팅, 촬영, 편집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만든 열 개의 프로덕션 중 하나가 결국 방송사에 선택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랜 기간 피 땀 눈물로 만든 파일럿 에피소드들은 의례적으로 파일럿 테스팅(Pilot Testing)을 통해 평가를 받는다. 내가 워너브러더스에서 일할 때는 여름 내내 거의 매일 파일럿 테스팅이 진행되었다. 파일럿 테스팅은 보통 세트 단위로 나뉜다. 

일단 20~30명의 일반 시청자를 모아 파일럿 에피소드를 상영한다. 객석에는 긍정/부정의 두 다이얼이 있다. 관람하는 동안 시청자는 이 다이얼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상영 중인 영상을 평가한다. 제작사와 방송사 관계자들은 거울로 된 벽 너머에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핀다. 실시간으로 그려지는 다이얼 그래프를 보며 에피소드의 어느 부분에서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거나 관심을 잃는지, 혹은 반응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관찰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같은 시청자를 상대로 방송사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해 정량 데이터를 수집한다. 마지막 단계는 몇몇 시청자를 모아 포커스 그룹(Focus Group) 면담을 진행한다. 포커스 그룹에서는 파일럿에 대한 기본적인 인상에서 시작하여 캐릭터, 배우 연기, 스토리라인 등 모든 디테일에 대한 반응을 심층 분석한다. 

이러한 테스팅 데이터와 방송사 관계자들의 의견에 따라서 어떤 파일럿 에피소드는 재촬영에 들어가기도 하고, 곧바로 탈락되기도 한다. 운이 좋은 경우는 이른바 ‘그린라이트(Green light)’를 받아 다가오는 가을에 전파를 타게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케빈 스페이시, 정치 스릴러, 데이빗 핀처를 좋아하는 유저의 교집합 크기로 성공 가능성을 판단해 제작을 진행했다.


데이터에 근거한 사업 전략은 비단 전통적인 TV 산업뿐만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에 앞서 케빈 스페이시, 정치 스릴러, 데이빗 핀처를 좋아하는 유저의 교집합 크기로 쇼 성공 가능성을 판단해 제작을 진행했다는 유명한 일화처럼,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의 선두주자인 넷플릭스도 자사가 보유한 사용자 데이터를 적극 활용한다.

# 데이터 70%, 감 30%, 그러나…​

오로지 감으로만 경영 전략을 세우는 것도 무모하지만, 그렇다고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전략을 짜는 것 또한 무모하다. 숫자는 숫자일 뿐, 데이터는 사람이 데이터 이상의 변수를 모두 고려해 해석하기 나름이다. 특히 인간의 감정과 예술적인 요소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그렇다. 

TV 산업에서 파일럿 테스팅은 수년에 걸쳐 해마다 진행되는 필수 과정이지만, 테스팅의 결과를 반영한 결정은 전적으로 방송국의 몫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4조 원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사인펠드(Seinfeld)’라는 시트콤은 25년 전 파일럿 테스팅에서 처참한 결과를 받고 사라질 위기를 맞았었다. 이 쇼가 너무 뉴욕적이고 너무 유태인적이라 대중에게 어필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방송사에서는 ‘사인필드’에 예전엔 보지 못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소신껏 이 쇼를 밀고 나갔고, 결국 오늘날 ‘프렌즈(Friends)’와 함께 가장 성공한 시트콤으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가장 성공한 시트콤인 ‘사인펠드’는 25년 전 파일럿 테스팅에서 처참한 결과를 받았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리서치의 한계는 인간의 사고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사람들은 익숙지 않은 것을 처음 접하면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실험적인 시도를 한 작품들이 리서치의 틀 안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히트작이 나오려면 기존의 형식을 답습하는 것을 넘어 뭔가 새롭고 신선한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관건은 그 새로움이 시청자와의 친밀함을 잃지 않는 수준이냐, 아니면 그 선을 넘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가느냐 하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수장인 테드 서랜도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프로덕션 커미셔닝(시운전)을 할 때 70%는 데이터고 30%는 감인데, 그 30%가 항상 먼저다.” 예술과 경영의 줄타기. 그것이 엔터테인먼트 시장이다.

필자 황지영은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엔터테인먼트 경영 석사를 마치고 Fox Television, Warner Bros. Television 리서치 부서에서 일했다. 글로벌 소비자 마케팅 리서치 회사 Hall & Partners, Kelton Global에서 경력을 쌓고 2015년 소비자 마케팅 연구 회사 마인엠알(MineMR)을 설립, 현재 미국 LA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소비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황지영 MineMR 대표·마케팅전문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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