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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에서 서로 이겼다?' 한·일 공기압 밸브 분쟁 팩트체크

13개 쟁점 중 10개 한국 승소 유지…산업부 "일본에 부과한 기존 관세율 유지할 것"

2019.09.11(Wed) 17:07:31

[비즈한국]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된 공기압 밸브 한·일 무역 분쟁에서 우리나라가 부분 승리했다고 ​산업통상자원부가​ 11일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날 일본 정부도 “​WTO가 ​한국의 WTO 협정 위반을 인정하고 시정을 권고했다”​며 자국이 이번 분쟁에서 승리했음을 시사했다. 같은 기구에서 발표한 분쟁 결과인데 서로가 이겼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공기압 전송용 밸브. 사진=WTO 홈페이지 캡처

 

우리나라 정부는 2015년 일본 공기압 전송용 밸브 제조업체를 상대로 반덤핑관세로 불리는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공기압 전송용 밸브는 자동차와 일반 기계, 전자 등의 설비 핵심 부품이다. 2013년 기준 647억 원 규모로 국내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값싼 일본산 공기압 전송용 밸브가 국내 시장의 73%를 점유하고 있었다. 국내 업체들이 “일본의 덤핑 수출로 국내 산업이 피해를 받고 있다”며 정부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16년 우리 정부의 덤핑방지관세 부과처분이 덤핑의 가격 효과, 물량 효과, 산업 범위, 국내 산업의 피해, 인과관계 등 여러 면에서 WTO 반덤핑 협정​을 위반한다며 WTO에 우리나라를 제소했다. WTO 분쟁은 통상적으로 피소국의 승소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한국이 패소해 덤핑방지관세 부과 처분이 취소되는 경우 사실상 국내 공기압 밸브 시장을 일본 기업에게 내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공개한 WTO 상소판정보고서 ‘상소 판정 요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WTO는 지난해 4월 1심 격인 WTO 분쟁해결기구(DSB) 패널 판정에서 우리나라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WTO 패널은 한국 무역위원회의 각종 조사가 WTO 반덤핑 협정에 합치하는 방식으로 시행됐다고 판단해, 쟁점 13개 가운데 10개를 승소 판정했다. 

 

일본은 이 판정이 부당하다며 WTO에 상소를 제기했다. WTO는 올해 4월 상소심 구두심리 회의를 거쳐, 지난 10일(현지시각) 상소 판정 보고서를 WTO 회원국과 대외에 공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WTO 상소기구는 쟁점 중 두 가지를 번복했다. 

 

분량만 수백 장에 달한 해당 보고서에 나온 번복 이유는 간단했다. WTO 상소기구가 일곱 번째 쟁점인 ‘인과 관계’에서 불합치를 판정받은 요소를 검토해보니, 해당 요소가 첫 번째 쟁점인 ‘가격 효과’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애초 패널 판정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던 일곱 번째 쟁점 가운데 일부가 첫 번째 쟁점으로 포함되어 패소된 것.

 

상소 판정 보고서 6.6.a 항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상소 기구는 패널 보고서의 7.94 항과 8.1.b 항에서 패널의 발견을 뒤집고, 해당 항이 일본이 주장한 쟁점 1의 참조 조건 내에 있음을 발견한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패널 보고서 결과와 세부 내용이 약간 달라졌을 뿐, 13개 항목 중 10개가 승소 판정을 받은 것은 동일했다. ​

 

일본 경제산업성이 11일 발표한 보도자료 중 ‘상소기구 보고서의 판단 개요’. 일본은 한국이 WTO 반덤핑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론 첫 번째 쟁점인 ‘가격 효과’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사진=일본 경제산업성 홈페이지 캡처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자국이 이번 WTO 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이 보고서의 권고를 조기에 이행해 조치를 신속하게 철폐하기를 요구한다”며 “만약 한국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WTO 협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보복 조치를 발동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입장을 표명했다.

 

‘비즈한국’ 취재 결과 일본 경제산업성은 첫 번째 쟁점인 가격 효과 부분만 승리한 것을 강조해 보도자료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항목에서 어떤 판정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별도의 내용을 첨부하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 간 분쟁이다 보니 한 부분이라도 승소 판정을 받았을 경우 관례적으로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발표하는 경향이 있다”며 “패널 판정을 받았을 때도 일본 정부는 지금처럼 행동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가 13개 가운데 10개 부분에서 승소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패소 판정을 받은 항목에 대해서 WTO에 이행 계획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일본이 향후 보복 조치를 할 수도 있다는 시각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패소 판정을 받은 세 가지 항목에 대해선 ‘이행 계획 보고서’를 제출하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열 번째 쟁점인 ‘비밀정보처리’와 관련해 패널 측으로부터 ‘정당한 사유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밀정보로 처리한 것은 협정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정부는 앞으로 ‘정당한 사유를 명확히 제시하겠다’란 내용의 이행 계획 보고서만 제출하면 일본은 보복 조치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WTO 분쟁 자국 승소 주장 해프닝은 한국의 ‘진짜’ 승리로 귀결될 전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WTO는 쟁점에 대해 ‘맞다’, ‘틀리다’만 얘기할 뿐이다. 실제 이행 여부는 WTO 보고 결과에 따라 양국 정부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면서도 “보고서 검토 결과, 덤핑방지관세 부과 처분을 유지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현 규칙을 이어갈 계획임을 시사했다. 

 

기획재정부 관세제도과에서 시행하는 ‘일본산 공기압 전송용 밸브에 대한 덤핑방지관세의 부과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 8월부터 일본 SMC사에 11.66%, CKD사·토요오키사에 각각 22.77%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박찬웅 기자 rooney@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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