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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치료제 개발하는 의사?' 의대 정원 확대 둘러싼 실효성 논란

정부 "감염병 대응 기반 다질 것" 의료단체 "실패한 의전원 실험 되풀이"…의협은 8월 총파업 예고

2020.07.29(Wed) 09:50:06

[비즈한국] 의과대학 정원 확대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특히 ‘의과학자’를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정부는 “백신 등 분야 의과학자가 부족하다”며 재학생 중 해당 분야 인력 양성을 조건으로 대학에 추가 정원을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감염병 위기 대응 능력을 향상하겠다는 의도인데, 전문가들은 “터무니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특히 ‘의과학자’를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한 백신 연구소를 방문한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의과학자 양성 통해 백신·치료제 개발 능력 갖추겠다

 

의과학자 양성 계획은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의 일환이다. 정부는 2022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최대 400명 증원해 10년간 한시적으로 3458명을 유지해 의료인력 총 4000명을 추가로 확충하는 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역 의사 300명, 역학조사관·중증외상 등 특수 전문분야 300명, 제약·바이오 등 의과학 분야 인재 50명을 양성하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추진하는 이번 방안은 이달 말에서 8월 초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를 거쳐 확정된다.​

 

복지부에 따르면 의과학자는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가 아닌 백신 개발 등 연구개발에 주력하는 의사를 말한다. 정원을 배정받은 대학에서 의과학자 교육을 받은 학생은 추후 연구소·기업체·​대학 등에서 일하게 된다. 치료제나 백신 개발을 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을 통해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겠다는 게 정부 이야기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관계자는 “이들이 다 같이 모여 개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관련 공공기관이 따로 설립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의과학자 정원을 배정받을 대학을 심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의 복지부 관계자는 “대학을 심사할 때 자연계와 공학을 얼마나 잘 연계해서 교육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평가할 계획이다. 학생이 기업체와 지역의 바이오센터 등과 어떻게 연계될지 등도 심사 요소로 생각 중”이라며 “대학에서 의과학자 과정을 밟는 학생을 향후 교수로 임용하거나 장학금을 두 배로 주는 등 다양한 수단이 필요하다. 정부도 대학에 지원을 늘리되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회수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약업계에서는 환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약사 등에 영입될 의과학자가 중개연구 전문가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기 때문. 중개연구는 의약품의 효능을 전임상 단계에서 미리 평가해 신약 개발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임상에서 어떤 자료가 필요하고, 어떻게 그 데이터가 사람들에게 약으로 적용되는지를 해석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의과학자는 임상 의사나 관계자들과 협의를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아직 의과학자 양성이 덜 돼 있어 국내 제약사들은 대부분 동물실험과 임상 등을 위탁연구기관(CRO)에 맡기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의전원 실험 되풀이? “의과학자 양성보다 기초과학 투자가 먼저”

 

반면 의료계에서는 의과학자 양성 방안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과학자 정원을 배정해도 지원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와 의과학자의 임금이 현재 크게는 두 배 이상 차이 나 의대생이 대부분 임상의사의 길을 택하는 실정을 도외시했다는 것. 임상의는 전문의가 많고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라 대우가 좋다. 가령 연세대 의대에는 지금도 의과학자 양성 과정이 있지만 프로그램별 지원자는 매년 4~5명 정도다.​ 

 

대한의사협회는 당정의 의대 정원 확대 방안에 아예 반대하고 있다. 당정은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문제를 위해 의대 정원 확충이 필수라는 입장이지만, 의협은 의사 숫자가 늘어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질 거라고 주장한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대한의사협회. 사진=이종현 기자

 

이 때문에 실패한 정책인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의 수순을 밟을 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의전원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4년 동안 의학 수업을 받도록 한 제도인데, 의과학자 양성을 명분으로 2005년 도입됐으나 사실상 폐지됐다. 신규 지원이 갈수록 줄어들어 의전원 상당수가 기존 의대 체제로 회귀했다. 현재 의전원 형태를 유지하는 곳은 차의과대학교가 유일하다.​

 

의과학자를 육성하겠다던 정부 정책은 실패를 거듭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바이오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의과학자를 양성하는 ‘의과학자 육성 지원 사업’이 도입됐다. 의·​치·​한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에게 최대 7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연간 최대 500만 원의 교육연구지원비를 주는 제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의과학자 육성 지원 사업 현황’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142명에게 79억 원의 국가 예산이 지원됐지만, 졸업한 61명 중 44.3%에 달하는 27명이 졸업 후 의과학자가 아닌 개업의가 되거나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는 “​과거 6년제 의대 시절보다 기초과학을 전공한 입학생을 받은 8년제 의전원 제도하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의사 수가 더 줄었다. 지금 늘린다는 의과학자 양성방안은 과거 실패한 의전원의 실험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의과학자 과정을 마치면 병원·​제약사 등​ 산업체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두고도 민간에만 이득인 셈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우석균 대표는 “​기초과학 발전 없이는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 개발은 멀고 먼 이야기다. 정부가 말하는 의과학자는 산업체 쪽에서 요구하는 인력이지, 진정한 기초과학자는 아니다”​라며 ​“​​결국 타국의 백신이나 치료제를 가져와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는 인력이 될 것인데, 그보다는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치료제와 백신 개발 이후 정부가 어떻게 개입할지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소장은 “공중보건을 위해 미충족 수요가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나 약제가 불충분한 치료제를 만들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결국 시판을 할지 말지, 또 가격은 어떻게 할지는 민간 제약사가 결정한다”며 “공공제약사 같은 공공 인프라를 구축할 생각이 없다면 시장 실패가 분명히 발생할 영역에 대해 어떻게 공공성을 강화할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앞서의 복지부 관계자는 “융합의 시대에서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구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우려는 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학생에게 의과학자가 되기를 강제하기도 힘든 현실”이라며 “잘 운영하겠다는 대학을 골라 지원을 강화하려 한다”고 답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대 정원 확대 자체부터 반대하고 있다.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문제를 위해 의대 정원 확충이 필수라는 정부 입장과 달리, 의협은 의사 숫자가 늘어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질 거라고 주장한다. 의협 측은 “무분별한 의사 증원은 오히려 대도시와 지역의 의료 격차를 크게 늘리고, 의료의 과수요와 과도경쟁을 유발해 의료제도를 심각하게 왜곡할 것”이라며 정부가 추진안을 밀어붙이면 8월 중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예고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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