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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10년 만에 구미호 드라마, 과거에는 어떤 구미호 있었나

여름이면 생각나는 친근한 괴담 '구미호: 여우누이뎐' v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2020.08.20(Thu) 12:06:42

[비즈한국] 어릴 적 여름의 기억 중 하나는 ‘전설의 고향’을 보는 거였다. CG기술이 조악하다 못해 분장마저 허술할 때였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내 다리 내놔~~”라고 절규하는 시체가 인상적인 덕대골 전설 에피소드와 고혹적인 미녀들이 앞 다퉈 출연하던 구미호 에피소드는 백미.

 

사실 구미호는 지금 생각하면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처녀귀신이나 몽달귀신은 억울한 사연으로 결혼도 못하고 죽었다는 사연이 있고, 저승사자야 무섭긴 해도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에 불과하고, 도깨비나 망태할아버지는 어딘지 정감이 간다. 그런데 구미호는 변신술 및 여러가지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간을 빼먹는 무서운 존재이면서, 딱히 사연이 없음에도 구태여 하잘것없는 인간이 되고자 한다. 게다가 인간이 되겠다는 간절한 소망은 믿었던 인간 남자의 배신에 의해 좌절되고 심지어 죽음을 맞는 게 대부분. ‘전설의 고향’ 속 구미호들은 충실히 그 플롯을 따라왔지만 2010년, 드디어 그 정형화된 플롯을 바꾼 드라마가 등장했다. 그것도 두 편이나. ‘구미호: 여우누이뎐’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다감(방영 당시 한은정)을 주연으로 내세운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절절한 모성의 구미호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구미호 모녀를 핍박하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신선한 드라마였다. 사진=KBS 홈페이지

 

2010년 7월 시작한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기존의 구미호 공식을 교묘히 뒤튼다. 인간을 남편으로 맞아 10년을 함께 지냈으나 단 하루 차이로(!) 남편이 약속을 저버리는 바람에 인간이 될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만 구산댁(한다감, 개명 전인 방영 당시는 한은정). 구산댁은 여느 구미호처럼 인간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대신 인간과의 사이에서 낳은 반인반수 자식 연이(김유정)를 지키는데 여념이 없는 모성애 강한 구미호다.

 

아이러니한 건 이 드라마 속 구미호 구산댁은 절대 먼저 인간을 해치지 않는데, 인간이 먼저 나서서 구산댁과 그의 자식을 해치려 든다는 거다. 평범한 인간과 다른 괴물이기에 처치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지긋지긋하게 구산댁을 쫓는 퇴마사에, 병든 자식을 살리겠다는 욕심으로 남의 자식의 간을 탐하는 양반 윤두수(장현성), 역시 남과 다른 존재이기에 구산댁 모녀를 괴롭히는 ‘큰 그림’을 설계한 박수무당 만신(천호진)에 이르기까지.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병으로 인해 반인반수 연이(김유정)의 간을 먹게 된 인간 윤초옥(서신애). 이제 성인 연기자로 활약 중인 김유정과 서신애의 아역 배우 시절로, 성인 연기자 뺨치는 두 배우의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진=KBS 홈페이지

 

보통 구미호 괴담에서 구미호는 인간의 간을 파먹거나 여우구슬에 인간의 기를 채우는 등 인간을 이용하는 괴수인데,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구산댁은 호시탐탐 자신과 딸을 해치려는 인간들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고초를 겪는다. 심지어 결국 딸 초옥(서신애)의 병을 고치려는 윤두수의 칼에 어린 연이는 목숨을 잃는다. 인간에게 간을 빼앗기는 구미호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윤두수를 조정하며 구산댁 모녀를 괴롭히면서 동시에 윤두수와 불편한 관계의 조현감(윤희석)을 이용해 윤두수 일가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만신은 얼마나 악독하며(심지어 그 자신이 구미호 못잖은 괴상한 존재다), 남의 자식을 해하는데 주저하는 윤두수를 몰아세우며 자기 자식만 살리려는 부인 양씨(김정난)는 또 얼마나 무서운가.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자신과 다른 존재는 무조건적으로 핍박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그 어떤 존재보다 악랄해질 수 있는 인간의 민낯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전까지 특출난 연기를 선보인 적 없는 한다감의 노력하는 연기가 돋보였고, 장현성, 김정난, 천호진 등 중년 연기자들과 김유정과 서신애라는 걸출한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부인 양씨(김정난), 만신(천호진)과 더불어 드라마 최대 악당 윤두수(장현성). 처음 구산댁에게 반하고 구산댁의 딸 연이를 귀여워하는 모습에서 연이를 죽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 끝내 미쳐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까지, 장현성은 극과 극의 연기를 오가며 ‘하드캐리’ 했다. 사진=드라마 화면 캡처

 

2010년 8월 시작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는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 인간의 간을 먹는다는 억울한 괴담 때문에 신랑을 얻지 못하고 오랜 시간 그림 속에 갇혀 있던 구미호(신민아)가 주인공으로, 우연히 그를 그림 속에서 해방시켜준 인간 남자 차대웅(이승기)과 사랑에 빠지며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남녀 주인공의 오해와 갈등은 물론 삼각•사각관계 등 기본 플롯은 여느 로맨틱 코미디와 매우 흡사한데, 여주인공이 구미호라는 게 다르다. 그런데 약속된 시간까지 인간 남자에게 자신이 구미호임을 들키지 말아야 하는 기존 구미호와 달리 이 구미호는 애초부터 아홉 개의 꼬리를 찬란히 펼쳐 보이며 당당하게 자신이 구미호임을 커밍아웃한다.

 

‘홍자매’가 집필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는 항상 인간 남자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하는 구미호, 남자를 홀리고 간을 빼먹는 ‘팜므파탈’ 구미호를 넘어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구미호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사진=SBS 홈페이지

 

게다가 인간인 차대웅은 초반을 제외하곤 구미호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보다 더 인간사회에 어수룩한 구미호인 데다 인간을 해치지 않으니(잡아먹겠다는 귀여운 협박은 몇 번 하지만) 오히려 인간에게 이용당하기 딱 좋은 존재인 것. 그리고 툭하면 “웅아~ 소(고기) 사줘~”를 외치고 ‘뽀글이물’(사이다)를 마시고 “아~ 마시따~!”를 연발하는 귀여운 구미호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구미호를 연기한 신민아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같은 구미호를 연기하며 극강의 사랑스러움을 뿜어냈다(당시 많은 남자들이 여자친구의 신민아 따라하기 때문에 곤혹스러웠다는 후문).

 

드라마의 히로인인 구미호를 연기한 신민아. 빛나는 외모와 애간장을 녹이는 애교, 절로 뺨을 쥐어보고 싶은 사랑스러움으로 중무장한 신민아의 구미호는 그야말로 극강이었다. 사진=SBS 홈페이지

 

‘환상의 커플’ ‘최고의 사랑’ ‘주군의 태양’ ‘호텔 델루나’ 등을 집필한 홍정은・홍미란 자매의 작품답게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는 통통 튀고 발랄하다. 지고지순한 구미호의 순정을 짓밟는 인간이 없고, 잠시 잠깐 시련은 있을지언정 남녀 주인공의 사랑은 유의미한 결실을 맺는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하다는 평도 있지만, 그래도 20대 청춘만이 뿜어낼 수 있는 발랄함이 드라마 전반에 몽글몽글한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여기에 이선희의 ‘명품 보이스’로 드라마의 감정선을 극대화하는 메인 테마곡 ‘여우비’, 구미호와 차대웅의 ‘꽁냥꽁냥’을 극대화하는 대웅 테마곡 ‘정신이 나갔었나봐’(이승기가 불렀다)가 곁들여지면 오그라드는 손발을 하나하나 펴면서 흐뭇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눈여겨볼 건 ‘구미호: 여우누이뎐’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모두 구미호라는 존재에서 성소수자, 장애인, 유색인종 등 사회에서 차별받는 다양한 약자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는 것. 그래서 2020년 등장할 새로운 구미호들이 기대된다. tvN에서 10월 방영 예정인 이동욱, 조보아, 김범 주연의 ‘구미호뎐’과 장기용, 혜리가 출연 예정인 ‘간 떨어지는 동거’가 수컷 구미호를 등장시킨다는데, 기존의 암컷 구미호들과는 어떻게 다를지 너무 궁금하잖아?

 

인기 절정을 누리던 이승기는 한심스럽지만 차마 미워할 수 없는 능글맞은 귀여움이 돋보이는 차대웅 역을 잘 소화했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메인 테마는 이승기를 발굴한 스승이자 같은 소속사 가수 이선희가 이승기를 위해 불렀는데, 이 OST ‘여우비’가 드라마의 감정선을 극대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사진=SBS 홈페이지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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