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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100번째 프러포즈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험악한 세상에 내리쬐는 인생의 따스함 그려…'올드라마' 100회 끝으로 연재종료

2021.01.07(Thu) 14:58:55

[비즈한국] 몇 차례 언급했지만 김수현 작가의 작품은 믿고 보는 편이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아쉬웠고, ‘그래, 그런 거야’로 두 눈을 질끈 감긴 했지만, 그래도 김수현 작가의 차기작이 나오면 볼 것은 분명하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2010년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작품으로, 100%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보기 드문 드라마. ‘올드라마’ 100번째이자 마지막 드라마로 ‘인생은 아름다워’를 소개하는 건, 평온하게 제주도에 놀러 다니던 그때가 그립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뉴스로 도배되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그래도 인생이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 따스함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제주도 토박이인 부모 밑에서 자란 양병태(김영철)과 그와 재혼한 김민재(김해숙) 가족을 중심으로 3대가 제주도에 모여 사는 ‘인생은 아름다워’. 제주도가 배경인 만큼 병태는 제주도에서 펜션과 농장을 하고, 병태의 동생 병준(김상중)은 골프장과 타운하우스 등을 운영하는 회사의 전무로 일하며, 병태의 딸 지혜는 골프장 리조트 프런트, 호섭(이상윤)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스킨스쿠버 사업을 한다. 사진=SBS 홈페이지

 

‘인생은 아름다워’는 김수현 작가의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드라마. 3대는 물론, 결혼한 딸네 자식까지 한데 모여 사는 대가족이 주인공인 만큼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이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첩을 다섯이나 두며 평생을 밖으로 돌던 할아버지(최정훈)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할머니(김용림)와의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고, 재혼해 28년간 살면서도 그 여파로 이따금 아파하는 자식들을 건사해야 하는 큰아들 양병태(김영철)와 요리연구가 아내 김민재(김해숙), 동성애자라는 비밀을 숨기기에 무척이나 외로운 병태의 큰아들 양태섭(송창의), 어릴 적부터 병태와 살갑게 지냈으나 남몰래 생부를 궁금해하는 민재의 큰딸 양지혜(우희진), 마흔이 훌쩍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병태의 남동생 양병준(김상중)과 양병걸(윤다훈) 등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모 드라마처럼 한 회 걸러 한 번씩은 누군가 죽거나 죽이거나 죽이려 들진 않지만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현실적인 스릴이 넘쳐나긴 마찬가지다. 30여 년간 첩들과 사느라 본처와 본처 자식들을 외면했던 할아버지가 여든이 넘어 ‘죽을 땐 집에서 죽어야지’라는 소리를 하며 집으로 돌아온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해보라. 내가 그 할아버지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살 떨리게 싫은 건 당연하다. 곱게 잘생기고 무엇 하나 모자란 데 없는 내과 의사이자 집안의 장손이 알고 보니 남자를 좋아하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은 어떤가. 동성애자를 배척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내 아들이나 내 형제가 그렇다고 고백하면 순간 눈앞이 깜깜해질 만하다(그가 겪어낼 앞날이 가슴 아파서라도).

 

병태와 민재 부부는 김수현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임감 있는 맏이와 맏며느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재혼한 며느리 민재는 전실 자식인 태섭에 대한 책임감이 지나쳐 오히려 두 사람 사이 관계가 어색할 정도. 환갑이 되어서도 자식 걱정에 여념이 없는 한국의 부모를 잘 표현해냈다. 사진=드라마 캡처

 

잔잔하다면 잔잔하고, 격랑이라면 격랑일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이 대가족은 언제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것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줄 안다. 그건 ‘가족이니까’로 대변되는 순혈주의 때문은 아니다. 이 가족의 중심인 양병태와 김민재 부부부터 각자의 자식을 데리고 재혼한 커플인 만큼 가족이 깨어진 경험이 있기에 아차 하는 순간 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환갑을 앞둔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난관들을 끊임없이 노력하고 믿음과 신뢰를 쌓아 올리며 앞으로 나아간 결과, 지금에 이르른 것이리라(물론 그 해결에는 누군가의 희생과 인내가 크기도 했지만).

 

병태의 큰아들 태섭(송창의)과 그의 연인 김경수(이상우). 방영 당시 ‘드라마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에이즈로 죽으면 SBS가 책임져라’라는 입이 떡 벌어지는 비난 광고가 일간지에 실릴 만큼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지상파 방송에서 동성애자 커플을 다루는 것이 그만큼 파격적이었던 것. 사진=SBS 홈페이지

 

무엇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재밌다. 눈물 콧물 다 쏟아내게 하다가도 소리 내어 끽끽거리게 만든다. 드라마의 서사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태섭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 하는 장면이었는데, 새어머니 민재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눈물이 솟구친다. 소처럼 끔벅끔벅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던 병태의 모습도 선연하다. 지혜가 엄마 민재 때문에 자신의 생부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를 내며 울 때도 눈시울이 뜨끈거린다. 그러다가도 병준이 자신의 회사 오너 딸인 조아라(장미희)와 20대 뺨치는 밀당을 선보이는 장면으로 넘어가면 폭소를 터트리게 된다. 보고 있으면 한 대 때려주고 싶게 얄밉지만 너무 있을 법한 인물인 병걸의 행태도, 할머니가 한 맺힌 세월을 뒤로 하고 할아버지와 옥신각신할 때도 웃픈 웃음을 멈출 수 없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 63부작 드라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인생은 아름다워’는 볼 만한 드라마다.

 

드라마의 알콩달콩을 책임졌던 조아라 대표(장미희)와 양병준 전무. 특히 양병준을 맡은 김상중은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할 때라 ‘SBS의 주말을 책임지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이 작품을 유튜브로 뒤늦게 본 시청자들은 ‘이 로맨틱한 양병준이 ‘감자바보’ 홍준표(내 남자의 여자) 맞냐’며 놀라워한다. 사진=드라마 캡처

 

회차마다 드라마 엔딩을 누군가가 넘어지는 장면으로 끝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오늘은 누가 넘어질까 궁금할 만큼 남녀노소 주조연을 막론하고 연신 넘어졌고, 때로는 보조출연자까지 꽈당 넘어지곤 했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마라톤에서 언제고 누구든 예기치 않게 넘어질 수 있음을,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걷고 뛰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꽈당 엔딩’에 함축돼 있다. 

 

잘 만든 드라마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볼 때마다 심장을 울리곤 한다. 드라마는 필연적으로 그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훗날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을 거고, 연출이나 대사 또한 촌스러운 부분이 있겠지만 그래도 잘 만든 드라마는 시대를 막론하고 통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방영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유튜브 ‘빽드-스브스 옛날 드라마’ 채널에서 회당 25~30분가량으로 편집해 업로드하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비밀을 안고 있는 태섭만큼은 아니었지만 똑순이 큰딸 양지혜(우희진) 역시 재혼 가정에서 자란 어려움이 만만치 않음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가 남편 이수일(이민우)와 꾸린 가정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이혼하고 재혼한 어머니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는 트라우마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드라마 캡처


 

‘젊은이의 양지’로 시작한 ‘올드라마’가 ‘인생은 아름다워’로 끝을 맺는다. 소개한 작품 중 가장 오래된 드라마는 1988년작 ‘조선왕조 500년-인현왕후’였고, 가장 최신작은 2011년작 ‘드라마 스페셜-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1988년 이전에도, 그리고 소개하지 않은 드라마 중에도 좋은 드라마는 많았을 테지만 내가 태부족이라 이것으로 마치려 한다. 2021년에 모두들 저마다 아름다운 인생을 맞이하길, 때로 넘어지더라도 훌훌 털고 나아가길 바란다. 그 여정이 즐거울 수 있도록 오래도록 곱씹을 수 있는 잘 만든 드라마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제주도 토박이인 할머니(김용림)는 이 대가족의 가장 큰 어른이지만 앞뒤 분명하고 시대에 따를 것은 따라야 한다는 신식 할머니다. 수십 년간 가족을 외면한 남편을 받아들이는 생부처 같은 모습은 여지없는 옛날 사람이지만, 그 또한 사람의 일이니 왈가왈부할 것은 못 된다는 걸 이 할머니를 보면 깨닫게 된다. 사진=SBS 홈페이지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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