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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5인 집합 금지 설날에 보면 더욱 통쾌한 '3인의 며느리'

'며느라기', 'B급 며느리', '큰엄마의 미친봉고' OTT에서 만나는 유쾌한 명절 반란기

2021.02.02(Tue) 16:53:01

[비즈한국] 양대 명절 중 하나인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 시기 나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는 여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는 거다. 명절을 앞둔 여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전운이 감돈다. 주로 며느리들의 성토가 벌어지는데(물론 시어머니, 시누이, 동서의 입장도 있음), 읽다 보면 어지간한 드라마 뺨치게 재미난 사연들이 많다. ‘5인이상 집합금지’가 설 연휴까지 연장된 터라 이번엔 좀 잠잠하려나 싶었으나 오판이었다. ‘시월드는 대한민국이 아닌 것을··· 무조건 오래요’라고 절망하는 이부터 ‘자꾸 내려오라시니, 가서 신고하려고요’라는 결의에 찬 목소리까지, 도리어 격전의 기세가 한층 치열해진 분위기다.

 

실전이 이럴진대 콘텐츠 시장 또한 가담하지 않을 리 없다. OTT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담은 작품을 목격할 수 있는데, 2월 6일에 12회로 종영되는 카카오TV의 웹드라마 ‘며느라기’, KT OTT플랫폼인 시즌(seezn)의 오리지널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 그리고 왓챠에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 등이 그 주인공. ‘B급 며느리’는 2017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2018년 설을 앞두고 개봉해 2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화제의 독립 다큐요, 수신지 작가의 인스타툰으로 시작돼 웹드라마로 만들어진 ‘며느라기’는 카카오TV에서 7편 만에 조회수 1000만 뷰를 넘을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 1월 21일 극장 개봉과 28일 시즌 앱을 통해 공개된 ‘큰엄마의 미친봉고’는 몇 년 전 SNS를 통해 화제가 된 글에서 아이디어를 포착한 만큼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인지도 높은 내용이기도 하다.

 

KT의 OTT플랫폼 시즌(seezn) 오리지널 영화인 '큰엄마의 미친봉고'는 극장과 시즌 앱, IPTV에서 즐길 수 있으며 설 연휴에는 SBS 채널에 방영될 예정이다. 사진=시즌 제공

 

가장 최근작인 ‘큰엄마의 미친봉고’부터 얘기하자면, 나 역시 몇 년 전 SNS에서 회자되던 그 글을 봤기에 기대감이 컸다. ‘큰엄마가 우리 엄마랑 작은엄마랑 사촌언니, 동생들 해서 여자 가족들한테 읍내 장 보러 가자고 봉고차에 태우더니 지금 고속도로 달리심ㅋㅋㅋㅋㅋ 우리 강릉간다ㅋㅋㅋㅋㅋ’라는 아주 짧은 문장이었지만, 순식간에 눈앞에 그 기승전결이 촤르르 펼쳐지게 만들었으니까. 때는 명절이었고, 큰엄마가 분연히 차 키를 들고 일어설 때 ‘여자 가족들’의 반대편에 있던 남자 가족들이 그려내던 ‘빡치는’ 풍경이 있었으리란 건 자명하다. 봉고 안에 타고 있던 여자 가족들의 해방감은 ‘ㅋㅋㅋㅋㅋ’로 충분히 나타나는데, 나는 순간 그 문장을 읽으면서 영화 ‘델마와 루이스’ 혹은 여죄수들의 탈출기를 그린 ‘밴디트’가 떠오를 지경이었다고.

 

큰집부터 작은집까지 명절에 한 집에 모이나 여자들만 부엌에서 분주할 뿐 남자들은 모른 척한다. 이에 큰엄마의 대응은 차 키를 움켜쥐는 것. 사진=드라마 화면 캡처

 

그러니 그 글에 영감을 얻고 영화가 제작된 건 전혀 놀랍지 않다. ‘큰엄마의 미친봉고’라는 제목도 흥미를 돋운다. 그러나 원작 글이 담은 창의성과 배우들의 호연을 영화의 만듦새가 따라잡지 못하는 건 심히 안타깝다. 수십 년 희생한 큰엄마(정영주)가 막무가내 가부장적인 남편과 이혼을 결심하고 명절에 가출을 감행하는 건 나름 ‘사이다’인데, 그 이후의 행보를 개연성 내지는 감칠맛 돋게 그려내지 못한다. 그래도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하는 정영주의 호쾌한 모습은 반할 만하니, 시즌 이용자가 아니라면 설 연휴 때 SBS 채널에서 방영해줄 때 보는 것도 방법.

 

수신지 작가의 인스타툰으로 시작한 '며느라기'는 카카오TV에서 방영되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웨이브에서도 시청 가능. 사진=카카오TV 제공

 

‘며느라기’는 ‘시간차 유료’ 방식을 택한 카카오TV에서 방영하지만 웨이브 구독자들도 시청할 수 있다. 1월 넷째 주 웨이브 드라마 차트에서 10위에 오른 상태. 이미 수신지 작가가 인스타에서 웹툰을 게재할 때부터 2030 여성들의 전폭적인 호응을 얻었는데, 결혼생활 특히 ‘시월드’의 현실을 초현실주의로 담아낸 장면장면이 인상적이다. 막장이 아닌데도, 심지어 굉장히 평범하고 어찌 보면 따스해 보이는 시가임에도 그 안에서 며느리 민사린(박하선)은 순간순간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게 된다. “우리는 이거 먹자”며 묵은 밥을 시어머니와 함께 먹고, 남은 과일을 “우리끼리 하나씩 먹어치우”게 되고, 명절에 찾아온 시누이 부부의 식사를 차리기 위해 친정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주춤하게 되는 순간들 말이다. 차별이라고 짚고 넘어갈 수도 없게 만드는 조용한 ‘먼지 차별’의 무시무시함을 무씨네 가족에 입성한 민사린을 통해 우리는 느낀다. 벌써부터 설 연휴 때 지상파에 방영해서 부모 세대들이 필히 시청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가 자자할 정도.

 

명절날 차례를 지내고 민사린(박하선)이 남편과 함께 친정에 가려는 순간, 시누이 부부가 도착한다. 그렇다면, 이때 식사는 누가 차려야 맞는 걸까? 사진=드라마 화면 캡처

 

한 편당 20분 남짓의 숏폼으로 12회를 채우는 ‘며느라기’는 결혼 직후 며느리가 맞는 일상의 차별을 높은 밀도로 그려내면서 큰 공감을 얻었다. 드라마 내내 민사린이 ‘고구마’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에게 왜 싫다고 말을 못하냐고 다그칠 수 없는 건 사린의 모습이 곧 대다수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 대신 우리의 막힌 속은 사린의 동서인 정혜린(백은혜)이 풀어준다. 첫 명절에 찾은 시가의 모습을 한눈에 간파한 혜린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구일 씨는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고,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술 드시고, 구영 씨와 미영 씨는 데이트하러 나가고, 차례 음식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고··· 다들 너무 했다. 그리고 저는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님이랑 같이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저 일갈 후 혜린은 명절에 시가를 찾지 않는다. 문제는 저런 ‘사이다’ 행각을 아무나 감행하지 못한다는 거다. 물론 어디에서는 ‘난 사람’이 있고, 선구자도 있게 마련. 왓챠에 업로드되어 있는 ‘B급 며느리’의 김진영이 그런 존재로, 밤낮 가리지 않고 부딪치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견디다 못해 명절 불참을 선언해 버린다. “명절 때 시댁에 안 갔어요. 그래서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라며 웃는 그를 보고 통쾌함을 느끼는 여성이 많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데 김진영의 남편이자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선호빈 감독은 내레이션으로 말한다.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라고. “형수님(정혜린)은 형수님 인생 사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던 ‘며느라기’ 속 남편 무구영(권율)이 떠오르는 내레이션이 아닐 수 없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때부터 관객 호응이 좋았던 독립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는 2018년 1월 개봉해 2만 명 넘는 관객을 모으는 저력을 보여줬다.

 

80분 남짓한 이 다큐를 보면 사실 문제의 원인은 명확하다. “이게 나와 시어머니의 일 같지만…. 사실은 그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 손발 다 움직일 수 있는 어른 넷인데, 나랑 어머니만 그건 니가 했니 내가 했니 그러고 싸우고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이거든. 우스운 일이야.” 김진영의 이 말이 ‘며느라기’의 정혜린의 대사와 맞닿아 있는 걸 보라고. 

 

커뮤니티마다 조심스러운 어투로 ‘다들 설에 내려가시나요?’라는 글이 올라오고 있는 걸 보면 답답해 미쳐버리겠지만, 이런 작품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 변화의 조짐이니만큼 희망을 가져보자. 입이 떨어지지 않겠지만 ‘이번 설은 5인이상 집합금지 때문에 못 내려갑니다’라고 연습도 좀 해보자.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부모님께 위에 언급한 작품들을 넌지시 보여주면 더 좋고.

 

며느리가 명절에 시가를 찾지 않는 건 '사건'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집안에서 조용한 존재(시아버지나 남편)가 이 사건에 큰 책임이 있다는 걸 아는지.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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