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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부장에 고함] '백스피릿'의 막걸리처럼, 사람이 익어간다는 것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효용가치의 감소가 아닌 숙성의 과정

2021.11.09(Tue) 13:55:49

[비즈한국] 코로나 이후 꽤 많은 사람이 집에서 혼술을 한다. 그런 혼술족들을 위한 대리만족 프로그램이 나왔다. 구수한 입담의 요리하는 CEO 백종원이 호스트로 나오는 넷플릭스의 ‘백스피릿’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백종원이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을 만나, 매회 다른 우리술을 테마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술과 음식 이야기를 이끌고 게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 요즘 ‘백스피릿’의 인기가 한창이다.

 

사진=넷플릭스 ‘백스피릿’​ 화면 캡처

 

‘백스피릿’ 시리즈에 이어지는 메뉴와 술의 라인업은 그야말로 꿀 조합이다. 삼겹살과 조개구이엔 소주가 곁들여지고, 한우구이에는 안동소주와 같은 전통주, 갓 익은 총각김치와 전에는 막걸리, 전기구이 통닭엔 맥주, 피자엔 크래프트 비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맛이 절대 없을 수 없는 궁극의 맛조합으로 매회 차마다 두 눈과 귀가 행복해지고, 상상되는 맛 때문에 입과 뇌가 괴로워지는 비주얼들이 쏟아진다. 그렇게 ‘백스피릿’을 보다 보면 냉장고에 있는 음식과 술을 털어 화면을 앞에 두고, 결국 뭐가 되었든 술 한 잔을 마시게 된다. 

 

모두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국민조합급 안주와 술만큼 눈에 쏙 들어오는 건 게스트 라인업이다. ‘백스피릿’에는 가수 박재범과 로꼬, 배우 한지민, 배우 이준기, 나영석 PD, 배구선수 김연경, 배우 김희애가 출연한다. 백종원은 다채로운 게스트들에게 우리 술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알려주기도 하고, 해당 술과의 음식조합, 게스트들의 세상살이와 인생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실제 음주를 하면서 방송 촬영하기에, 취중 속 스며 나오는 백종원과 게스트들의 솔직한 면모들을 살피는 재미도 있다.

 

게스트와 술과 메뉴별로 이어지는 ‘백스피릿’의 에피소드 중에 가장 재밌진 않았지만, 신기하게 가장 마음 뭉클하게 들어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다름 아닌 나영석 PD가 출연한 ‘익어간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회차였다. 울산의 유명한 막걸리 양조장을 찾아 막걸리가 직접 발효되고 익어가는 과정을 살피며 그 현장에서 갓 익은 총각김치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 두 사람의 음주 여정을 살펴보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두 사람의 음주 마지막 즈음 나눴던 대화가 인상 깊어서였다.

 

사진=넷플릭스 ‘백스피릿’​ 화면 캡처

 

백종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 아니면 안 되지, 뭐든 하나하나 가르쳐줬던 친구들이 이제는 정말 아는 것이 많아졌더라고요. 처음에는 이거 아나 싶어 물어봤던 질문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친구들의 의견에 대해 진중하게 듣게 되고 어느새 제가 의존하기도 하더라고요. 애들이 잘할 때, 적당할 때 퇴직해야 하나 싶어요.”

 

뒤를 이어 나영석은 한참의 긴 호흡 같은 숨을 들이켜고 다음과 같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제가 작아져요~! 처음에는 겸손 떠느라고 애들 앞에서 작은 척했는데, 지금은 사실 실제로 작아지는 거 같아요. 애들이 잘하는 걸 보면, 나중에는 이걸로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날, 내가 빠져주는 것이 맞겠구나 싶어요.”

 

격하게 공감을 표하며 대화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잔을 부딪치고 막걸리 한 모금을 더 입에 적신다. 이렇게 업계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도 아래 후배 혹은 직원에게 내 능력을 추월당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니, 두 남자의 대화에 마음이 참말로 짠해졌다. 그리고 이들 두 사람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사진=넷플릭스 ‘백스피릿’​ 화면 캡처

 

사람은 효용의 가치 없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숙성되어야 제대로 맛이 나는 고급 막걸리처럼 말이다. 나는 이들이 본인을 서서히 추월할 것 같다고 말한 그 후배들이 이 두 사람의 농익은 가르침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발효되고 익어가는 시간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효용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숙성의 과정을 통해 다시 비우고 새로운 성찰의 시간으로 채워지는 새로운 단계에 이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백스피릿’의 두 남자 이야기에 심장 쫄보가 된 이들이여, 늙어간다는 것에 지레 겁먹지 마시길. 임영웅이 불러 다시 재발견된 노사연의 노래 ‘바램’의 가사처럼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니까. 그리고 오늘도 조금씩 익어가는 당신에게 멋지게 건배~!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바즐’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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