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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은 오프라인, 구매는 온라인" 수입 화장품 판매 직원의 한숨

업무 늘었지만 판매수당 비중 높은 급여 체계 '고수'…시세이도, 온라인판매 기여 노동 인정 '눈길'

2021.11.26(Fri) 10:46:27

[비즈한국] 11월 25일 목요일, 평일 오후 3시의 백화점은 적당히 한가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본점 1층의 한 럭셔리 뷰티 브랜드 매장에서 립스틱을 집어 들며 점원에게 “구매는 온라인에서 할 것”이라며 운을 뗐다. 

 

제품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기자를 익숙하게 응대한 판매 직원은 인터뷰를 요청하자 잠깐의 시간을 허락했다. 3년 차 판매직원인 A 씨는 “방금 막 나간 손님도 20분 넘게 제품에 대해 물어보고 손에 발라보더니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고 나갔다. 당연하다는 듯 온라인으로 구매할 거라고 이야기하더라. 브랜드에 애정을 갖고 일하지만 그럴 땐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의 온라인 채널 확장은 매출 상승으로 연결됐으나, 판매직 노동자의 처우는 오히려 나빠졌다. 온라인 채널 운영에 수반되는 업무가 가중됨에도 회사 측이 이를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은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1층의 화장품 매장들. 사진=연합뉴스

 

A 씨와 같은 판매 직원은 기본급이 낮은 대신 연장근무 수당, 판매 인센티브 등을 더해 급여가 책정된다. 최근 가속화된 화장품 브랜드들의 온라인 전략이 곧 판매직 노동자의 임금 하락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당연히 매장 철수 등에 따른 구조조정도 동반된다. 

 

A 씨는 “급여의 10~20% 정도가 매장 판매에 따른 수당인데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회사가 할인쿠폰과 샘플 등 혜택을 온라인에 몰아주니 우리(오프라인 매장)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는데, 부수적인 업무는 늘어난다. 온라인에서 산 제품을 교환해주거나 사용법을 설명하고, 온라인몰 가입을 돕는 것도 다 우리 일”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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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속 온라인 채널 확장으로 성장 가속화

 

코로나19의 타격은 럭셔리 뷰티 브랜드를 비껴갔다. 온라인 채널 확장의 가속화가 오히려 성장을 이끌었다. 그동안 럭셔리 브랜드들은 전통적 유통처인 오프라인 매장을 벗어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고급스러운 매장 분위기와 아무 곳에나 입점하지 않는다는 희소성이 곧 브랜드 가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온라인 채널이 열리자 확장은 거침없이 이뤄졌다. 샤넬을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랑콤을 네이버에서 판매하는 식이다. 

 

온라인을 통한 매출 비중은 빠르게 늘고 있다. 로레알은 온라인 매출이 전체의 50%를 넘어섰으며, 샤넬·시세이도 등 타 브랜드 상황도 비슷하다. 하지만 매장 시연과 환불·교환 등 판매직 노동자의 추가 노동은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제품 테스트와 설명, 시연 등을 한 뒤 온라인 구매가 이뤄지더라도 실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매장 판매가 줄어드니 당연히 급여도 줄고 든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판매직 노동자의 온라인 관련 업무가 부수적이었다면 점차 메인 업무가 되어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확인하고 싶은 소비자가 있는 한 매장은 계속해서 유지될 텐데, 직접 소비자를 대면하는 직원의 노동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곧 브랜드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본사가 해외에 있는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좀 더 큰 구조 속에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판매직 노동자 처우는 왜 개선되지 않을까

 

5년 전 대구백화점의 한 럭셔리 화장품 판매직원으로 근무했던 B 씨는 이미 그때부터 온라인 판매 보조로 인한 피로도가 극심했다고 전했다. B 씨가 근무했던 매장은 출근 후 가장 먼저 온라인 주문건 확인 후 제품 포장, 백화점 내 택배 상하차장으로 운반하는 일을 시켰다. 백화점 오픈 후에도 매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대부분 온라인 판매 관련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온라인에서 구매한 제품을 반품, 환불하거나 제품을 시연하고 설명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매장으로 걸려온 온라인 제품 문의 전화에 응대하거나 온라인 판매 제품에 대한 별도의 재고 확인 등의 업무는 대부분의 직원이 느끼는 고충이었다. 

 

B 씨는 “당시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 본사의 매출 압박, 백화점 담당자의 텃세 외에도 매출 하락으로 인한 매장 퇴점, 과도한 업무 등으로 퇴사하는 걸 봤다. 대부분의 브랜드 본사가 오프라인 매출 감소를 이유로 온라인 판매에 수반되는 매장노동을 강제하고 있다고 본다. 유통 구조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면 판매직 노동자에게 온라인 판매 관련 업무가 과중되는 것에 비례해 급여를 인상해주거나 업무를 별도로 분리해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지난 11월 5일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샤넬지부는 샤넬본사 앞에서 2021년 임·단협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날 노조는 “코로나19 시기에도 백화점 문이 열리기 전에 샤넬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는 기사가 쏟아진다. 하지만 샤넬 노동자들의 처우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사진=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노동조합은 선두에서 꾸준히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 산하에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이 있다. 소속 지부로는 로레알코리아, 록시땅코리아, 부루벨코리아, 샤넬코리아, 클라랑스코리아, 한국시세이도가 있다. 이들 노조는 최근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내기도 했다. 시세이도의 판매직 노동자들이 업계 최초로 화장품 온라인 판매에 기여한 노동을 임금으로 인정받게 된 것. 매달 고정수당 5천 원에 불과하지만, 업계 최초로 온라인 판매 기여분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의 본사가 대부분 해외에 있다는 점은 판매직 노동자 처우 개선의 발목을 잡는 주요 걸림돌이다. 온라인화 속도가 빠른 국내에서 온라인 기여 노동을 인정할 경우, 해외 지점에도 명분을 주게 된다는 게 회사 입장이다. 유종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직국장은 “이미 5~6년 전부터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고, 코로나19를 거치며 가속화된 상황이다. 고가의 제품일수록 직접 테스트해보고 물건을 확인한 뒤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많은데, 이를 위한 노동은 모두 판매직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샤넬, 로레알 등 대부분의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는 국내 브랜드가 아니다. 이들 본사는 대부분 프랑스에 있고, 우리나라가 특히 온라인 전환이 빠른 상황. 본사는 한국에만 온라인 판매 노동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라 협상이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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