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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노동자들④ 사감] 휴게시간에 사실상 근무…최저시급도 안 되는 임금

기숙사에서 상시대기, 주말엔 당직…판례·가이드라인 '근로시간' 명시했지만 현장선 무소용

2023.05.24(Wed) 15:21:37

[비즈한국] 2023년 5월 10일은 윤석열 정부 취임 1주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기도 하다. 비즈한국은 지난 1년간 한국 노동 현장에 일어난 변화를 추적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라진 노동자들’이다. ‘노동’이 사라진 건 아니다. ‘노동자’가 사라졌다. 정규직에서 기간제로, 지상에서 지하로, 직관적인 이름에서 세련되고 모호한 명칭으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빠르게 감춰지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사라지게 만들까. 일그러진 노동 현실을 짚어본다. 

 

기숙사 사감의 ‘휴게시간’은 사실상 근무시간이다. 사진은 서울에 있는 한 기숙사 내부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전다현 기자

 

6년째 대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하는 박진아 씨(가명)​는 불면증을 앓고 있다. 새벽에 잠들고 오전 일찍 일어나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서상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휴게시간을 빼면 8시간이지만, 실제 일하는 시간은 11시간에 이른다.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한 후 다시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한다. 주말에는 당직도 선다. ​​특히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는 ‘휴게시간’이지만 기숙사에 상주하게 돼 있다. ​

 

근무 시간이 아닐 때도 기숙사 내에서 상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보통 민원 전화를 받거나 응급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새벽엔 종종 응급상황이 발생한다. 응급환자가 생겨 병원으로 함께 이동하거나, 기숙사에 화재가 나 불을 끈 적도 있다. 모두 박 씨가 혼자 처리해야 한다. 박 씨는 “새벽에도 기숙사에 있어야 한다. 특히 새벽 2~4시에 사고가 발생하면 혼자 대응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새벽에 구급차를 부르거나 응급학생을 병원에 ​​직접 ​태우고 ​가는 일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결국 당직이 없는 주말을 제외하곤 종일 기숙사에 있어야 한다. 

 

실제론 일주일에 5~6일, 24시간 내내 기숙사를 관리하지만, 학교는 주 40시간 근무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연장, 야간, 휴일근로 수당도 없다. 연봉에 ‘수당’이 포함된 포괄임금제라서다. 학교는 계약서에 ‘수당에 기본급 외 연장근로, 휴일근로, 야간근로에 대한 수당이 포함돼 있다’고 명시했다. 실제 일한 시간으로 따져보면 박 씨의 임금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한다. ​

 

 

근로계약서에는 연봉에 연장, 휴일, 야간근로 수당이 모두 포함돼 있다. 사진=제보자 제공

 

박 씨가 근무하는 대학교 기숙사에는 사감이 총 2명, ​남자 기숙사에 1명, 여자 기숙사에 1명이 있다. 근로기준법에 한참 못 미치는 고용 형태지만 항의하기는 어렵다. 박 씨는 “노동조합도 없어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다. 옛날 노조가 있었다고 하는데, 노조위원장이 해고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지방 사립대학이라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다. 불만이 있어도 ​생계 때문에 ​참는다. 사감은 2명뿐이라 항의하기도 어렵다. 올해 학교에서 주야간을 분리해 고용형태를 바꿔줄 계획이었는데, 최근 정부에서 주69시간 근무제로 개편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갑자기 그 이야기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최근 강원도 한 고등학교에서 교장이 새벽에 ‘텐트’를 치고 여자기숙사 앞을 지키는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기숙사 사감들이 휴게시간인 오전 1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생긴 일이다. 전국의 기숙사 사감들은 이것이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휴게시간도 비상대기, 사실상 근로시간

 

기숙사는 24시간 운영된다. 새벽에도 관리가 필요하다. 중·고등학교 기숙사는 더 그렇다. 기숙사 사감을 고용하는 곳은 대부분 중·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같은 교육기관이다. 비즈한국이 전국의 다양한 기숙사 사감을 만나본 결과, 정부와 지자체에서 설립한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 대학교 등이 모두 상황이 비슷했다. 학교들은 4시간마다 30분 이상 휴게시간을 부여하게 한 근로기준법을 악용해 휴게시간을 하나로 붙여 마음대로 늘렸다. 사감들은 늘어난 휴게시간만큼 실제 근로시간이 늘었다.

 

공립학교에서 근무하는 신기영 씨(가명)​는 “2017년부터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하고 있다. 최근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다. 휴게시간이 8시간인 경우도 있다. 24시간을 비상대기 하는데, 이런 게 다 보이지 않는 거다. 직책도 사감이 아닌 ‘생활지도원’으로 명명해 지위도 모호하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기숙사 수용인원이 늘어나 업무 가중이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근무하는 유기만 씨(가명)도 비슷하다. 유 씨는 “학교에선 근무시간 외로 휴게시간을 4~8시간 잡아 놓는다. 통상 직장인들이 1시간 휴게시간을 갖는 것과 다르다. 법정근로시간 외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설정해, 사실상 무급으로 상시 관리하게 하는 거다. 실제 노동시간을 따지면 하루 16시간에 달한다. 학력과 경력도 요구한다. 대부분 초대졸, 대졸 이상을 기준으로 교원이나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이 있어야 뽑는다. 실제로 기숙사 행정 업무 외 학생 상담과 지도를 한다. 건물 관리나 소방안전에 대한 부분도 알아야 한다.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기숙사 안에 갇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경남지부​는 3년 전 기숙사 사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무급 휴게시간 문제를 ​오래전부터 ​제기했지만 나아진 게 없다고 말한다. 학비노조 경남지부 관계자는 “작년 임금협약에서 교육공무직원 처우개선수당에 사감이 대상으로 포함됐다. 이제야 근속수당, 상여금, 명절휴가비 등을 받는다. 하지만 문제 제기했던 무급 휴게시간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휴게시간을 대기시간이나 근무시간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 수당 역시 협약을 맺지 않은 지역에선 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비노조 관계자는 “중학교 사감들은 보통 주 4일 근무하는데, 실제 하루 근로시간이 10시간이 넘지만 주 32시간 근로자로 취급된다. 4시간 이상을 휴게시간으로 잡기 때문이다. 교육청에서 관리하는 공립학교지만, 월급이 최저시급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공무직위원회 ‘가이드라인’ 만들었지만 유명무실

 

2017년 대법원은 경비원의 휴게시간과 관련해 근로자가 실제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시간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기숙사 사감들은 휴게시간에도 기숙사에 상주하며 위급 상황에 대응하거나 업무를 본다. 이런 휴게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판례가 나왔음에도 사감들의 무급 노동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금까지 기숙사 사감의 노동시간과 관련해 모니터링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업무 형태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감시·단속적 근로자(감단근로자)로 승인 받은 경우에 한해 예외가 될 수 있어, 경우에 따라 접근을 하게 돼 있다. 일괄적으로 나갈 지침은 없다. 사안별로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알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감시·단속적 근로자는 근로가 감시적 또는 단속적으로 이뤄져 휴게시간, 대기시간이 많은 경우 근로시간이나 휴게시간 변경이 가능하다. 그러나 감단근로 승인을 받더라도 최저임금 기준은 예외가 아니다.

 

정부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업무 특성상 24시간 건물에 상주하는 직종은 실제 근로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할 수밖에 없다. 휴게시간이라 해도 상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 고용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2021년 9월 공무직위원회는 ‘공무직 근로자에 대한 인사관리 가이드라인’을 제작했다. 교육부는 여기에 관련 내용이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숙사 사감만을 대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근무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운영하지 않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런 부분(휴게시간)이 남용된다는 기관들의 의견이 있어 구체적으로 명시된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에 기숙사 사감의 휴게시간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보낸 적은 없다고 밝혔다.

 

2021년 9월 공무직위원회에서 발간한 ‘공무직 근로자에 대한 인사관리 가이드라인’​ 내용 일부. 사진=고용노동부

 

이 가이드라인에는 ‘야간 근로의 경우 직무 특성을 고려해 적정한 휴게시간을 부여하고, 사실상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휴게시간으로 운영하지 않도록 유의’라고 명시돼 있다.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지 1년이 지났으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공무직위원회 해체 전인 지난 2월 고용노동부는 이 가이드라인의 준수 현황을 조사했다. 그러나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공무직위원회는 3월 31일 자로 해체됐는데, 이후 공무직위원회를 대체할 기구는 아직 생기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공무직위원회의 심의 기능을 수행하는 곳은 없다. 다만 관련 부서에서 후속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공무직위원회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은 법적 효력이 있는 게 아니어서 이행률은 공개하지 않는다. 법적 문제가 있다면 별도로 고발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개별 사안을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무는 더 늘었는데, 추가채용 계획도 사라졌다

 

현장의 사감들은 가이드라인 이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업무가 가중됐다고 말한다. 앞서의 박진아 씨는 “노동 강도는 더 세졌다. 코로나19로 행정 업무도 늘었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추가 채용 이야기가 있었는데, 올해 전부 사라졌다”고 말했다. 신기영 씨 역시 “1년 전에 비해 업무가 더 가중된 건 사실이다. 2023년 추가 채용 계획이 있었는데, 교육청에서 갑자기 예산을 줄여 추가 채용이 무산됐다. 내려오는 채용 지침이라곤 한 동에 사감 한 명이다. 학생당 기준이 없다. 이 때문에 사감 한 명이 200~300명을 관리하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경상남도교육청 학교 기숙사 운영 길라잡이 내용 일부. 4시간 휴게시간을 예시로 뒀다. 사진=경상남도교육청


전라북도교육청  학교 기숙사 운영 길라잡이 내용 ​일부. 기숙사 동당 1일 사감 ​1명 ​배치를 기준으로 했다. 사진=전라북도교육청


교육부나 고용노동부에선 개별 사안마다 따져봐야 한다며 일괄적인 가이드라인은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의 이야기는 다르다. 휴게시간을 이용해 근무시간을 늘리는 상황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인력도 문제다. 각 시도교육청에서 발간하는 ‘학교 기숙사 운영 길라잡이’에는 사감 배치 기준을 기숙사 동당 1명으로 했다. 휴게시간도 ‘4시간’으로 예시했다. 사실상 일하는 시간이다. 

 

비즈한국이 최근 한 달간 워크넷, 잡코리아, 사람인, 인크루트 등에 올라온 기숙사 사감 모집 공고 15건을 분석한 결과, 모두 야간근무 기준 4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명시했다. 공적 기관인 중·고교, 대학교, 지자체 등에서 버젓이 무급 휴게시간을 규정했다. 야간근무수당을 명시한 곳도 찾기 어려웠다. 

 

현재 모집 중인 기숙사 사감 공고 내용 일부. 사진=온라인 공고 캡처


이양지 노무법인 삶 공인노무사는 “근로자가 휴게시간에 근무지에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다면 대기시간으로 봐야 한다. 가산수당, 야간근무수당도 적용돼야 한다. 기숙사 사감처럼 휴게시간에 상주하게 하는 건 모두 위법하다. 현재 기숙사뿐 아니라 아동보호시설, 장애인보호시설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처우 개선을 위해선 당사자가 직접 노동청에 신고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워 개선되지 않는 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앞서 학비노조 관계자는 “교육부 소속 공무직 사감은 방학중비근무제도가 적용돼 방학 기간 두세 달간 실업자가 된다. 실질적 야간비상대기 시간인 휴게시간에는 대기수당도 지급하지 않는다. 교육청이 ‘임금체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감들의 열정페이가 계속되는 한 기숙사 내 폭력이나 안전사고 문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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