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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그들'의 집단 사직서는 왜 설득력이 없을까

과중한 업무 시달리는데 인원 충원은 반대 '모순'…믿는 구석은 '대체 불가한 사회적 지위'

2024.02.22(Thu) 15:52:22

[비즈한국] ‘파업’이란 노동자들이 근로조건의 유지나 개선, 혹은 어떤 정치적 목적 등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실현하거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집단으로 일을 중지하는 단체행동을 일컫는다. 보편적으로 부당한 처우나 고용조건 등의 개선, 고충처리,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등을 관철하기 위해 파업을 하는데, 이전 글 노사관계2 회사에서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방법 에서도 다루었듯이 이러한 단체행동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다.

 

전국 수련병원의 전공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한 대학병원에 전공의 부족으로 진료가 지연됨을 알리는 안내문이 놓여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의사 파업’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더 정확히는 대학병원 등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들(의사면허취득 후 전문의를 취득하기 위해 각 과의 n년차 수련에 들어간 의사들)의 ‘단체 사직서 제출 및 근무지 이탈’과 자영업자인 개원 의사들의 집단행동이다. 이들이 파업을 하는 사유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정책 때문인데 전공의들은 ‘의대정원 증원’ 이 대표적인 파업 사유이고, 개원의들은 ‘보상체계(비급여 과잉진료 및 실손보험, 미용의료제도) 개선’ 이 주된 원인이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파업 사유인 ‘근로조건 개선’ 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는 의아한 점이 많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노동인력이 충원되고, 자신이 할 일을 나눠서 할 사람이 늘어나므로 주당 근무시간이 80시간(*전공의특별법에 따르면 주당 수련시간은 최대 80시간을 넘을 수 없으며, 전공의들은 평균 77시간을 병원에서 근무(혹은 생활)하고 있다. 일부러 ‘근무시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에서 훨씬 줄어들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른 근로자들처럼 주당 최대 52시간까지 근무하면 수면부족에 시달릴 일도, 상대적으로 박탈당한 워라밸을 한탄할 일도 없다. 보통은 근로자가 인력충원을 요청하고 사용자는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이를 반대하기 때문에 파업이 시작되는데, 역으로 인력충원을 근로자가 결사반대 하고 있는 모양새로 비친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이들이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형태로 파업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1년 365일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닐지언정 막상 손이 떨려서, 혹은 정말로 사직서가 수리되면 이후에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쉽사리 제출하지 못한다. 언제든 대체가능한 수많은 근로자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대체 불가한 노동력’이며 병원에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으리라, 아니 ‘못하리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미 3년 전 의대정원을 400명씩 순차적으로 증원하겠다고 했을 때도 의사국시를 집단으로 미응시하며 단체행동을 했었고 결국 정부가 응급으로 추가시험 기회를 부여했던 경험을 통해 본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학습한 바 있다. 대학병원의 교육수련부(전공의들은 근로자이면서 피교육생 신분이므로 이들에 대한 인사관리는 교육수련부에서 별도로 한다)에서는 ‘사직서를 내거나 잠수타는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찾아 헤매는 일이 담당업무의 하나다.

 

생명을 다룬다는 과중한 업무부담과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이탈자가 잦은 편이므로 최소 일주일 정도는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업무복귀를 설득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정설이다. 그만큼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한 명’이라는 근로자(겸 수련생)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매우 크다. 때문에 전공의들이 이탈하면 대학병원의 ‘수술-입원 시스템’이 마비된다.

 

어차피 사직서는 수리되지 않을 것이고, 정부는 한발 물러서는 방향에서(당초 2000명 증원이라는 획기적이고 선정적인 카드 대신 몇백 명 수준으로 숫자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적당한 타협점을 찾을 공산이 크다. 그러니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그간의 ‘당당당당(연속 당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숨고르기를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전공의들은 근로자 신분이지만 동시에 ‘피교육생’이기 때문에 ‘교육수련’이라는 명분 아래 값싼 임금(월평균 300~400만 원)을 받으며 근로를 착취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주당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소득이지만 ‘의사로서의 책임과 부담’만 막중하다. 게다가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업무 특성, 도제식의 전문가 집단이라는 위계 구조가 명백한 조직 문화 속에서 가끔은 ‘괴롭힘’인지 교육인지 경계가 모호한 고난도 트레이닝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으며 버티기도 한다. 때문에 자신들의 처우개선이 비단 ‘의대정원 증원과 인력충원’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혹은 알고 싶지 않은)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저들이 과연 나와 같은 ‘근로자, 혹은 노동자’ 인지부터가 의심스럽다. ‘단체행동권’, ‘직업선택의 자유’ 같은 권리를 주장할 만큼 ‘힘 없는 집단’인지 공감도 되지 않고 이질감만 느낀다. 그러니 인력충원을 반대하고 거리낌 없이 사표를 제출하는 모습이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 봐도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파업은 지지받지 못하고 그저 고액의 미래소득을 포기하지 못하는 부잣집 젊은이들의 밥그릇 싸움이나 떼쓰기 정도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전공의 사직으로 입는 타격이 별로 크지 않으니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천명하기도 하고, 정부는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공문을 보내기도 한다. 과연 실제로 사직서를 수리하거나 불법행위로 처벌될지는 미지수다. 언론에서 떠들기 좋은 메시지에 불과할 뿐, 99%의 확률로 실제 행위는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이 요구하는 대로 패키지 정책과 정원증원을 ‘전면 백지화’하고 새롭게 대화기구를 설치하면, 그들의 수련환경(혹은 근무환경)이 어떤 방식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그래서 나의 근로환경이나 내 주위의 파업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다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볼 뿐이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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