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연재 작가들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지위를 주장하며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이 소속된 웹툰작가노조는 지난달 카카오엔터에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위한 교섭요구서를 제출했다. 카카오엔터가 ‘웹툰 작가는 노조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교섭을 거부한 가운데 노조는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을 통해 카카오엔터 측의 교섭 의무를 명확히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작가들이 개별 웹툰 플랫폼을 상대로 벌이는 첫 단체교섭 시도다. 지난해 말부터 교섭 추진 시기를 조율하다가 카카오엔터 ‘매각설’이 불거지자 속도가 붙었다. 향후 업계 전반의 계약 관행과 수익 분배 구조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어 주목되지만 현실적으로 진전까지 갈 길이 멀다. 플랫폼과 웹툰작가의 단체교섭은 현실화할 수 있을까.

#‘교섭 거부’ 카카오엔터에 7월 중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
웹툰작가노조는 카카오엔터의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7월 중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접수할 계획이다.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 신청은 3개월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카카오엔터가 교섭 거부 의사를 밝힌 지난달 16일을 기준으로 웹툰작가노조는 다음 달 17일까지 구제 신청이 가능하다.
작가들은 웹툰 상생협의체에서 이끌어낸 협약이 구속력과 구체성 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구체적인 사항을 플랫폼과 교섭 테이블에 앉아 풀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카카오엔터는 웹툰 작가들이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은 “상생 협약이 구속력이 있으려면 세부적인 사항들이 결정돼야 하는데 현재는 안 그렇다. 표준계약서 협의 당시에도 영업상 비밀이 노출될 수 있다는 플랫폼들의 우려에 작가들이 양보한 부분이 있고 ‘추후 교섭에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고 했다.
수익 정산 정보는 협약서에 비교적 자세하게 규정된 사항이지만 약속한 정보가 다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하 위원장은 “‘다양성 만화 육성을 위해 노력한다’와 같은 항목은 애초에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다. 창작 환경 조성과 관계 깊은 만큼 이 부분은 플랫폼별로 교섭을 통해 노조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2022년 말 ‘웹툰 생태계 상생 환경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지난해 6월 표준계약서 8종을 제·개정해 고시한 바 있다. 그간 카카오는 매출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창작자 복지를 위해 휴재권을 보장(최소 40화 연재 시 2회 휴재)하는 구체적 문구를 계약서에 적용하는 등 상생 협약문 실천에 나섰다.
#매각설 이후 교섭 본격화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재계약 보장” 요구
카카오엔터 매각설은 교섭 추진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노조가 회사 매각 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전면 재조정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카카오가 앵커에쿼티파트너스, 싱가포르투자청 등 카카오엔터의 주요 주주사에 경영권 매각 의사를 전달했다고 알려지면서 카카오엔터의 매각설이 흘러나왔다. 카카오엔터는 콘텐츠 분야 핵심 자회사 중 하나지만,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기업공개(IPO)가 녹록지 않자 전략을 선회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카카오는 매각설 제기 직후 “상대 회사 주주와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공시했다가, 지난 8일 “일부 주주 구성 변경 중심의 방안 등을 포함해 다각도로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재공시했다. 지분 매각 혹은 조정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만큼 지분 구조조정이나 투자자 유치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하 위원장은 “매각이 진행될 경우 2차적 저작물 작성권 관련 조건을 전면 재조정할 수 있는 재계약 권리를 요구할 것”이라며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모펀드가 들어온다면 사업이 일관성 있게 전개되기보다 단기간 내 이윤 창출에 치중할 가능성이 있다. 작가와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웹툰·웹소설 업계에서는 플랫폼이나 제작사(CP)가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제한하는 불공정 행위가 지적돼왔다. 저작권법상 드라마, 영화 등을 만들려면 원작자의 허락이 필요한데 계약 시 작가에게 불리한 계약을 맺는 일이 반복돼 공정위가 2018년 웹툰 플랫폼에 이어 올해 제작사 중심으로 무더기 시정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복잡하게 얽힌 법적·현실적 쟁점, 단체교섭 실현될까
문제는 단체교섭의 실현 가능성이다. 플랫폼·특수고용직은 합법 노조를 만들어도 사측의 교섭 거부 등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히 저작권을 보유하고 제작사와 외주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은 웹툰 작가의 특성상, 노조 설립 이상의 법적·현실적 쟁점이 얽혀 있다. 실제 교섭권 확보까지는 행정 절차를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플랫폼의 사용자 책임 등을 규명하는 게 관건이라는 평가다.

가장 큰 쟁점은 노조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다. 카카오 관계자는 “법률 검토 결과 웹툰 작가들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웹툰작가노조는 2020년 12월 17일 서울시로부터 노조 설립을 인가받은 독립 노조다. 노동법 전문 김남석 변호사는 “노조 설립 필증을 받았기 때문에 노조법상 근로자 지위는 어느 정도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며 “다음으로는 사용자가 누구인지 실질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있다면 종속적인 지위에서 그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는지, 혹은 자영업자로 봐야 하는지 등이 구체적인 쟁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노조는 노동위 구제 신청은 카카오엔터 직계약 작가 중심으로 진행해 노사관계를 입증하고, 이후 제작사를 통해 계약한 작가 처우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사용자 지위가 인정될 수 있는지도 법리적으로 따져볼 사안이다. 김 변호사는 “이 경우에도 교섭 상대방이 될 수 있다는 판례가 존재한다. 중간에 낀 제작사가 휴재권, 근로조건 등을 사실상 결정할 기회나 권한이 없고 플랫폼이 정한대로 따라야 한다면 카카오가 실질적인 사용자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업계는 작가들의 교섭 요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 시장인 기본 환경에서 작가들의 수익 구조나 계약 방식, 작업 형태가 워낙 다양해 노사 프레임으로 동시에 다루는 게 까다로운 문제이기도 하다. 연재 방식, 편집 개입 수준, 원고료 방식 등이 작가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작가들을 하나의 교섭 대상으로 다뤄야 한다면 운영상 부담이 뒤따를 수 있다.
이에 웹툰 노동의 성격과 그 결과물인 작품과 저작권, 창작자의 권한 등을 충분히 따져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창작자 다수가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활동해온 만큼, 플랫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웹툰작가들의 노동자성 인정 여부는 향후 업계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는 “노동위원회에 제소될 경우, 회사의 입장을 성실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매각설 둘러싼 현재 상황
·
플랫폼 문닫으면 사라지는 '소장권'이라니…
·
'퐁퐁남 논란' 속 여성작가들 "불매 아닌 네이버웹툰에 분노" 이유는…
·
'검정고무신 방지법' 재추진, 저작권 분쟁 막을 묘수 이번엔 나올까
·
웹툰업계 숙원 '만화진흥위원회' 출범부터 '잡음' 나오는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