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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누군가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당신에게 '미지의 서울'

일란성 쌍둥이의 현실적인 역할 체인지…박보영의 1인4역 빛나는 하드캐리

2025.06.11(Wed) 10:19:01

[비즈한국] 엄마도 분간하지 못할 만큼 꼭 닮은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 눈빛만 봐도 척하면 척인 자매도 있는데, 거기다 일란성 쌍둥이라면 뭐든 다 통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일찍이 가수 김국환이 명곡 ‘타타타’에서 노래하지 않았나.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복제인간이 아닌 이상 아무리 핏줄을 나누고 얼굴이 닮은 사이라 해도 같은 사람은 아니다. ‘미지의 서울’의 유미래(박보영, 아역 이재인)와 유미지(박보영, 아역 이재인)도 쌍둥이지만, 때론 남보다도 서로를 모른다.

 

미래와 미지는 일란성 쌍둥이지만 똑 닮은 얼굴 빼고 모든 게 다르다. 언니인 미래는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이 약해 유년기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냈지만, 동생 미지는 원체 튼튼한 몸으로 집에서 둬도 알아서 혼자 크는 애로 통했다. 모범생이었던 미래가 대학을 거쳐 공기업에 입사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은 반면 미지는 서른이 되도록 고졸 출신 일용직 근로자란 수식어를 떼지 못한다. 미지에게도 이유는 있다. 학창시절 ‘육상천재’로 불리며 반짝 주목을 받았으나 발목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꿈꿨던 대학과 선수로서의 미래는 물론, 마음 속 품고 있었던 첫사랑마저 떠나보내고 한동안 실의에 빠졌다. 그 실의의 기간에 쓰러진 할머니 월순(차미경)에 대한 애정과 죄책감으로 간병을 도맡은 것도 이유 중 하나.

 

고졸과 대졸, 지방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와 서울에서 일하는 공기업 직원. 미지(왼쪽)와 미래는 쌍둥이지만 성격뿐 아니라 삶의 궤적이 뚜렷이 다르다. 사진=tvN 제공

 

커갈수록 점점 삶의 궤적이 달라지고, 그만큼 거리가 생긴 쌍둥이에게 서로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 아니,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아예 서로의 삶을 바꿔 살아보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심각한 번아웃과 우울증에 걸린 미래의 상황을 알게 된 미지가 황당무계하지만 절실한 제안을 건넨 것. “내가 너로 살게, 너는 나로 살아.” 부서 이동이 가능해지는 단 몇 개월만, 미지가 미래인 척 서울에서 대신 버텨주겠다는 것이다. 

 

이건 그간 종종 있었던 바디 체인지물이나 똑 닮은 얼굴이 역할을 뒤바꾸는 일명 ‘왕자와 거지’ 서사와는 다르다. 어릴 적 헤어졌다 재회한 쌍둥이가 상황을 바꾸는 ‘해 뜨는 집’(1980년작 영화)이나 린제이 로한 주연의 ‘페어런트 트랩’(1998년작 영화) 같은 해프닝성 체인지물과도 사뭇 다르다. 사람들은 남이 가진 조건과 상황, 순간순간의 말과 행동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단정짓는 우를 범하는데, 하물며 가족은 어떻겠나. 서로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미래와 미지도 서로의 삶을 대신 살면서 서로에 대해 얼마나 몰랐는지, 편하게만 바라봤던 상대의 삶 속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크고 쓰라린 것인지 알게 된다. 

 

미지의 첫사랑인 이호수.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게 잘생긴 변호사지만, 교통사고가 남긴 상흔으로 왼쪽 귀의 청력을 비롯해 신체 왼편에 돌이킬 수 없는 결함이 있다. 이로 인해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경계인이라 느낀다. 사진=tvN 제공

 

쌍둥이의 역할 체인지는 주변인들에게도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 먼저 미래·미지의 동창이자 미지의 첫사랑인 이호수(박진영, 아역 박윤호). 신발에 돌 들어간 것처럼 불편한 로펌 생활을 이어가던 호수는 미래인 척 하는 미지의 말에 뭔가를 깨닫고 과감히 로펌을 나온다. 사실 호수 또한 미지가 자신의 첫사랑이었으나 겹겹이 쌓인 오해로 인연이 어긋났던 사실도 밝혀진다. 미지인 척 하는 미래가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된 딸기밭의 농장주인 한세진(류경수)도 있다. 세진은 텅 빈 미지의 이력서에 흥미를 느끼고 미지를 채용하는데, 대기업에서 자신이 쓰던 운용술을 대입하며 제멋대로 (미지인 척 하는) 미래를 판단하다가 한소리를 듣고 반성하게 된다. 

 

미지인 척 하는 미래와 얽히게 되는 초보 농장주 세진. 유들유들하고 능글맞은 성격으로 어딘가 이상한 사람 같지만, 꽁꽁 감춰둔 그의 속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진=tvN 제공

 

바뀐 서로의 삶으로 상대는 물론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미지의 서울’. 보통 사람들에겐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볼 기회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곱씹고 반추하는 경험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때로 미지이거나 미래이며, 호수이거나 세진이다. 가십으로 미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들이거나 미지에 대해 뒷말을 늘어놓는 동네 사람들이기도 하다. 남 모를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으로 괴로워하거나 소소한 거짓말을 일삼는 미래·미지의 동창 박지윤(유유진)이거나 자신의 약점을 혐오하다 괴물이 된 호수의 선배 변호사 이충구(임철수)일 수도 있다. 십수 년을 이웃으로 지냈지만 막상 서로의 상황을 모르고 입바른 훈수를 두는 미래·미지 엄마 옥희(장영남)와 분홍(김선영)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나의 미지의 세계임을 순간순간 잊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미지의 서울’을 보면서 얻는 곱씹음과 반추가 절절히 다가온다.

 

소위 빌런 포지션에 속하는 인물들 또한 잘 살펴보면 우리의 모습 중 어딘가 닮아 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슬리는 미래를 괴롭히는 회사 상사들, 자신을 배신했다 여기고 호수를 방해하는 선배 변호사, 항상 주류에 속해 있고자 소소한 거짓말을 일삼지만 남 모를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으로 괴로운 동창 등등. 사진=tvN 제공

 

12부작인 ‘미지의 서울’은 이제 절반까지 왔다. 과거에 쌓였던 오해들이 조금씩 밝혀지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들도 있다. 로사식당 주인 김로사(원미경)가 대표적. 로사식당은 미래의 회사 한국금융관리공사의 신사옥 설립 예정지에 위치해 있어 어떻게든 미래인 척 하는 미지가 회유해야 하는 인물인데, 서정시인이었다는 이력과 어울리지 않게 난독증을 앓고 있다는 비밀이 밝혀지며 궁금증이 한층 커진 상태다. 먹물 냄새 풀풀 나는 세진이 왜 부득부득 할아버지의 딸기밭을 포기하지 못하는지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도 남아 있고, 미래가 회사에서 따돌림당하는 이유 중 하나인 박상영 수석과의 불륜설에 대한 이야기도 남아 있다.

 

미래인 척 하는 미지가 회사 업무상 접촉하게 된 로사식당의 주인 김로사. 과거 시인이었다고 하고, 수십 년째 모교에 장학금을 기부했다는데, 알고 보니 난독증이라는 등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새로운 얼굴이 드러난다. 사진=tvN 제공

 

극중 미지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미지(未知)라는 이름에 걸맞는 말이며, 알 수 없는 인생을 매일매일 마주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지의 서울’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작이 될 수 있을지도 아직은 모른다. 3.6%로 시작한 시청률은 6화에 이르러 6.4%로 훌쩍 뛰었고,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펀덱스가 발표한 5월 5주차 드라마 화제성 순위 또한 3위일 만큼 반응이 뜨거운 건 확실하다. 1인 2역 혹은 미래인 척 하는 미지와 미지인 척 하는 미래까지 1인 4역을 연기하는 박보영에 대한 호응은 더욱 강렬하다. 극본과 연출의 높은 퀄리티도 만족스럽다. 그러나 기대를 걸었던 작품이 용두사미로 끝났던 쓰라렸던 지난 날의 기억이 있기에 아직은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아무쪼록 ‘미지의 서울’이 이 기대를 끝까지 만족시켜줬으면. 

 

미래와 미지가 서로의 삶을 바꾸게 된 계기는 미래가 당하는 직장 내 괴롭힘 때문.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한 가운데, 피해자가 느끼는 모욕감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묘사가 섬세해 눈길을 끈다. 사진=tvN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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