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엔터

[정수진의 계정공유] '당신이 죽였다'가 2025년에도 통하는 서글픈 현실

글로벌 1위 등극한 '가정폭력' 소재 범죄 스릴러…시대 변했어도 '시궁창' 현실 통렬히 묘사

2025.11.14(Fri) 16:43:01

[비즈한국] ‘당신이 죽였다’가 넷플릭스 글로벌 1위에 올랐다. 지난 11월 7일 공개 이후 순위가 오르더니, 11일 기준 21개국 넷플릭스에서 정상을 차지했다(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 기준).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가 세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한두 해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왜 이 작품이 세계의 흥미를 끌었는지는 들여다볼 만하다. ‘당신이 죽였다’는 가정폭력을 주제로 여성의 연대를 담은 범죄 스릴러물. 2025년에 가정폭력이 웬 말인가 싶은데, 통했다. 

 

오랜 시간 가정폭력을 휘두른 아버지와 그에게 맞고 사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딸이 있다. 어린 딸은 폭행이 일어날 때마다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옷장으로 숨었다. 딸이 성인이 되어서도 어머니는 여전히 맞고 살지만, 딸은 이미 오랜 시간 죄책감과 무력함에 젖어 제대로 된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 백화점 명품관 VIP 담당 직원인 조은수(전소니)는 그렇게 살아왔다. 누군가의 폭력에 단호하게 대응하기 위해 주짓수를 배우지만 아직 실행한 적은 없다.

 

오랜 시간 자행된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조은수. 그러나 그 무력함으로 백화점 VIP 고객이 죽음을 맞은 현실을 보면서, 친구 희수마저 잃을 순 없다고 결심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조희수(이유미)는 학창시절 가정폭력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던 은수의 곁에 있어주던 친구다. 커튼 휘날리던 창문가에 자살을 시도하던 어머니의 잔상으로 그 비슷한 광경을 목도한 학교에서 난리를 피우던 은수를 따스하게 안아준 이가 희수다. 희수는 자라서 동화작가가 되고, 투자증권회사 부지점장까지 오른 유능한 남편 노진표(장승조)와 결혼해 전업주부가 되었다. 시어머니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여성학자 고정숙(김미숙), 시누이 노진영(이호정)은 청와대 파견까지 예정돼 있을 만큼 전도유망한 경찰이다. 그런데 희수는 불행하다. 매일 밤 희수는 남편에게 끔찍하게 맞고 산다.

 

어린 은수는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옷장에 숨으며 그를 방관한다. 어머니 역시 자식들을 위해 속수무책 폭력을 당하다 무감해진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희수는 왜 맞고 살까? 동화작가였던 희수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나갈 만큼 촉망받는 동화작가였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먹고살 수는 있는 세상 아닌가. 그러나 희수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해외로 도망을 결심하지만, 남편 진표는 요양원에 꽁꽁 숨겨둔 희수의 어머니를 찾아내 무자비한 폭행을 휘두르고 돌아오라 종용한다. 어머니가 볼모인데 어떻게 하겠나! 경찰에 신고도 하려 했지만, 우연히 마주한 시누이 진영은 모르는 척 ‘가정폭력은 잘못하면 무고죄로 역으로 고소당한다’고 말하며 은근히 희수를 협박한다. 어느새 희수는 오늘밤 안 맞는 게, 한 대라도 덜 맞는 게 중요해졌다. 완벽한 가스라이팅이다. 

 

맞서도 보고, 도망도 가보고, 신고도 하려 했지만 항상 현실의 벽에 막혔던 조희수. 어떻게 하면 한 대라도 덜 맞을까 하는 지경에 이르다 목숨을 끊고자 결심했을 때, 은수의 제안을 듣게 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희수의 상황을 알게 된 은수가 나선다. 은수는 이미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백화점 VIP 고객을 외면했다는 죄책감으로 가득한 상태. 우연한 기회에 가까워진 진강상회 대표 진소백(이무생)의 한마디로 결심한다. 희수와 함께 희수의 남편을 죽이기로. 우연인지 천운인지 진소백의 상회에서 노진표와 쌍둥이처럼 닮은 불법체류자 장강(장승조, 1인 2역)을 만났고, 그를 회유해 노진표인 척 중국으로 출국시킨 뒤 노진표를 죽여 아무도 몰래 처리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밖에서는 완벽하게 애처가인 척하지만 실상 24시간 내내 희수를 옥죄고 집착하는 폭력남편 노진표. LP로 클래식을 틀어놓고 아내를 때린 후엔 고가의 보석을 선물하는 사이코패스적인 인물이다. 장승조가 노진표와 함께 조선족 불법체류자 장강까지 1인 2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드라마는 완벽한 듯 보이지만 실상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은수와 희수의 계획이 어떻게 실패하고, 어떻게 변주하는지를 조마조마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스릴러로써 ‘당신이 죽였다’를 평가하자면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들다. 계획은 허술하고, 개연성은 낮으며, 인물들의 관계성에도 의문이 간다. 특히 친구를 위해 살인까지 생각하는 조은수가 정작 자신의 어머니는 외면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으며, 조은수와 진소백의 관계 또한 이해가지 않는다. 

 

학창시절부터 서로를 의지해왔던 단짝 은수와 희수. 그들이 짠 살인 계획으로 가정폭력의 고리를 끊고 평범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조희수의 시가 인물들, 시어머니 고정숙과 시누이 노진영이다. 시누이 노진영은 올케 희수가 폭행을 당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외면하는 건 물론 오빠네 부부 문제가 자신의 커리어에 누를 미칠까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인물이다. 경찰대 졸업 후 경찰청창을 목표로 하는 진영에게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코앞으로 다가온 청와대 비서관 입성. 무사히 청와대로 입성한다면 설령 오빠가 죽었다 해도 개의치 않는 인물인데, 드라마 초반 덤덤하게 희수에게 현실을 말하며 협박하는 그의 모습은 실제로 그런 말을 내뱉을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더 소름이 끼친다.

 

빌런인 듯 빌런 아닌 진소백. 과거 가정 내의 아픔이 있는 그는 멈춰버린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은수와 희수를 만나 돕게 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고정숙은 다른 의미로 한층 더 끔찍하다. 1000회 넘게 강연회를 열 만큼 사회적으로 인기가 좋은 고정숙은 강연에서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날 때마다 어딘가 멍투성이인 며느리를 보고는 또 넘어졌냐면서 진실을 외면한다. 심지어 맞는 여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투로 말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명예남성’의 모습이다. 아들이 실종되자 전전긍긍하며 며느리를 닦달하던 고정숙이,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난 희수를 보곤 아들이 돌아왔냐며 반색할 때는 악마가 따로 없구나 싶다. 

 

노진표 이상으로 빌런인 노진표의 어머니 고정숙과 노진표의 동생 노진영.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희수의 상황을 묵살하고 적극적으로 외면하는 방관자이자 가해자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2025년에 가정폭력이 웬 말인가 싶지만, 잘 생각해보면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흔히 ‘데이트 폭력’이라 불리는 교제폭력으로 폭행당하고 살해당하는 여성들의 뉴스를 보라. 해마다 교제폭력과 스토킹 신고 건수는 늘고 있는 실정이다. 용감하게 신고를 해도, 가해자가 처벌받기까지 과정은 지난하며 그 사이사이 피해자는 ‘진짜 피해자다웠나’는 세간의 질문으로 2차 가해에 시달리곤 한다. 결혼 전인 타인일 때의 폭력에도 대처가 무방비한데,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버린 후엔 어떻겠는가. 드라마 속 노진영의 말처럼, ‘가정의 일은 가정에서 알아서’란 무언의 종용이 얼마나 많겠나. 2022년 당시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 연구’를 봐도, ‘가정폭력은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란 문항에 응답자의 19.6%나 ‘그런 편이다’ 혹은 ‘매우 그렇다’로 답변을 했을 정도니까. 

 

‘당신이 죽였다’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나오미와 가나코’가 원작이다.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가 잘 드러나 있는 원작은 2015년 발간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원작을 영상화한 드라마가 공개되어도 여전히 통용되는 현실이 서글프다. ‘당신이 죽였다’에서 은수와 희수의 살인에 사회는 책임이 없는지,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들에 우리의 무심한 시선엔 책임이 없는지 곱씹어볼 만하다. 아마 이 드라마가 글로벌 1위로 오른 것도 그런 우리 모두의 책임의식 때문이 아닐까. 

 

별점 ★★☆

제목에 담긴 메시지는 통렬, 스릴러 드라마의 재미는 실종.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정수진의 계정공유] 밉지만 짠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 [정수진의 계정공유] 변성현과 설경구의 만남은 언제나 '굿뉴스'…거기에 홍경을 곁들인
· [정수진의 계정공유] 호불호는 '어쩔수가없다' 그래도 안 볼 수가 없다
· [정수진의 계정공유] '은중과 상연', 나는 그 시절 은중이었을까, 상연이었을까
· [정수진의 계정공유] 나영석의 남자들, 매력만점 김대명과 박병은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