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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규제' vs '미국 압박'…쿠팡이 끼운 불씨

제재하면 충돌, 안 하면 굴복…정부 정면 돌파 가능할까

2026.02.05(Thu) 09:49:24

[비즈한국] 쿠팡을 둘러싼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쿠팡의 개인정보 해킹 사태 이후 제재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쿠팡을 비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관세를 인상한 것도 쿠팡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현실적으로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쿠팡에 대한 조치 없이 넘어가면 ‘미국 기업 봐주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쿠팡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월 27일(현지시간)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주 워싱턴 D.C.에서 김민석 총리와 만나 쿠팡을 포함한 미국 기술 기업들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쿠팡은 미국 법인 쿠팡Inc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또 쿠팡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기업이며 총수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미국 국적이다. 쿠팡은 한국에서 주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본거지는 미국에 두고 있는 셈이다. 밴스 부통령이 쿠팡을 미국 기업으로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쿠팡 개인정보 해킹 사태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쿠팡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쿠팡을 비호한다면, 한국 정부도 쿠팡에 대한 제재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27일(현지시간) 한국의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인상 이유로 한국 입법부가 미국과의 합의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를 이행하려면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돼야 한다. 대미투자특별법은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발의됐지만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쿠팡 사태가 관세 인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27일 소셜미디어(SNS)에서 “미국 정치권에서는 한국 정부가 쿠팡을 상대로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고, 쿠팡 투자사들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등 보복 조치를 요구해왔다”며 “밴스 부통령이 김민석 총리에게 직접 쿠팡 문제를 언급한 데 이어 이번 관세 인상 카드까지 꺼내 든 것은 통상 현안이 기업 이해관계에 의해 외교·통상 압박 수단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4일 “미국 하원 공화당 법사위원회는 관세 인상 발표 직후 ‘쿠팡과 같은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표적으로 삼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라는 입장을 공식 계정에 올렸다”며 “쿠팡 사태가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통상 마찰의 뇌관이 된 만큼, 어설프고 감정적인 접근으로는 국익도 국민 안전도 지켜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가 1월 30일 서울경찰청으로 출석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런 이유로 정부가 쿠팡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현실적으로 미국과 척을 져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일부 미국 쿠팡 투자사들은 지난 1월 미국 USTR에 한국 정부의 쿠팡 관련 조치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가 쿠팡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 미국 투자사들의 요구도 더 거세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미국 투자사들의 요구를 마냥 무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가 쿠팡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앞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쿠팡에 대한 제재가 없으면 한국과 미국 정·관계에 로비가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기관은 일단 쿠팡 관련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1월 30일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를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2월 3일에는 박대준 전 쿠팡 대표를 위증 혐의로 소환해 조사했다. 또 안권섭 특별검사팀은 3일 퇴직금 미지급 혐의로 임성환 전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표와 정종철 CFS 대표 등을 기소했다.

청와대도 관세 인상과 쿠팡 사태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월 31일 관세 협의를 위한 미국 방문 후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쿠팡 관련 논의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며 “미국에서도 쿠팡은 관세 협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요소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민석 총리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쿠팡에 대해서는 법적인 문제는 한국 정부 입장에 따라 법대로 하고, 그것이 불필요한 양국 간 통상 관련 문제로 비화하거나 오해로 번지지 않도록 소통한다는 차원에서 입장이 교환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는 미국과 무관하게 쿠팡에 대한 조치를 이행하려는 분위기다. 이재명 정부로서는 쿠팡 제재로 인한 미국 사회와의 갈등을 관리해야 하는 숙제가 남은 셈이다. 그나마 쿠팡도 최근 들어 이재명 정부 정책에 어느 정도 호응하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생리대는 우리나라가 해외 대비 40% 비싸다”고 발언했다. 이에 쿠팡 자회사 CPLB는 생리대 전문 PB(자체 브랜드) ‘루나미’의 개당 가격을 크게 낮췄다. 루나미 생리대의 현재 개당 가격은 중형 99원, 대형 105원이다.

다만 쿠팡은 여전히 사과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당장의 신뢰 회복은 어려울 전망이다. 김범석 의장은 지난해 12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후 추가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로저스 대표는 지난 1월 경찰에 출석하면서 “계속 그래왔듯 한국 정부의 조사에 완벽하게 협조하겠다”고 말했지만 사과는 없었다.

한국 정부의 조치가 없더라도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쿠팡의 실적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쿠팡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지난해 12월 3428만 764명에서 올해 1월 3318만 863명으로 3.21% 감소했다. 쿠팡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유통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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