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26년 2월 13일,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꺼낸 문장은 짧지만 무겁다. “기회를 줬는데도 다주택을 정리하지 않고 버틴 이들에게, 대출 만기 연장 혜택까지 더해주는 것이 공정한가.” 이 발언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다. 정부가 시장에 던지는 정책 신호이며, 다주택자에게는 리스크의 성격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경고장이다.
이제 다주택자의 고민은 ‘가격이 오를까, 내릴까’를 넘어섰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세금과 대출, 거래 규제가 동시에 조이는 상황에서, 내 포지션이 ‘우연히 유지되는 다주택’인가, ‘의도적으로 설계된 자산 구조’인가. 시장은 늘 살아남는다.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집’이 아니라 ‘계획 없는 구조’다.
#공포의 근원은 가격이 아니라 ‘세 가지 시계’
첫째 시계는 ‘세금 시계’다. 정부는 예고대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2026년 5월 9일부터 재개한다고 못 박았다. 동시에 5월 9일까지 계약을 맺은 경우 잔금과 등기 실무를 고려해 4~6개월 유예 장치를 두겠다는 보완책도 제시했다.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다. ‘유예’가 있다는 말은 곧 ‘마감’이 있다는 뜻이다.
둘째 시계는 ‘대출 시계’다. 다주택자에게 신규 대출이 막혀 있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새로워진 것은 ‘만기 연장’마저 공정성 프레임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규제는 대개 ‘취득’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연장’과 ‘유지’로 넘어온다. 오늘의 메시지는 그 전환을 보여준다.
셋째 시계는 ‘거래 시계’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거래를 어렵게만 하는 게 아니라, 거래를 느리게 만든다. 강남3구와 용산구 아파트 용도의 토지거래허가구역이 2026년 12월 31일까지 연장된 사실은, 시장의 ‘시간 비용’을 키운다. 세금 시계는 빨라지는데, 거래 시계는 느려진다. 이 역전이 다주택자의 협상력과 선택지를 갉아먹는다.
이 세 시계가 동시에 움직이면 무엇이 생기나? ‘폭락’이 아니라 강제 정리가 생긴다. 다주택자의 가장 큰 비극은 가격이 내려서가 아니라, 만기와 세금과 거래가 한날한시에 겹쳐 ‘팔고 싶을 때 못 팔고, 버티고 싶을 때 못 버티는 상태’로 떨어질 때 발생한다.
다주택자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순서’다. 다주택자가 모두 투기 세력인 것도 아니고, 모두가 선량한 임대 공급자인 것도 아니다. 현실은 다양하다. 그러니 “팔아라” 혹은 “버텨라” 같은 구호는 무책임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판단의 순서다.
먼저, 당신의 다주택이 어떤 다주택인지부터 분류하라. 다주택의 운명을 가르는 건 ‘채수’가 아니라 ‘구조’다.
레버리지형 다주택자는 담보대출, 전세 승계, 갭 구조 비중이 큰 경우다. 이 유형의 리스크는 가격보다 만기와 금리, 전세 만기에서 터진다. 현금흐름형 다주택자는 대출이 낮고 월세 등 임대수입이 안정적이라면 버틸 여지가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다 들고 가자’는 욕심이 결국 세금 마감과 정책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승계형 다주택자는 가족의 상속, 증여, 거주 이전이 예정된 경우. 이 유형은 매도보다 승계 설계의 정확성이 성패를 가른다.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모르면, 정책이 바뀔 때마다 감정만 요동친다. 감정이 흔들리면 거래는 늘 늦어진다. 늦어진 거래는 세금 시계에 진다.
다음으로, 모든 집의 ‘만기 달력’을 만들라. 다주택자의 위기는 숫자가 아니라 날짜에서 시작한다. 주택별로 대출 만기일, 고정·변동 구조, 상환 방식, 전세 계약 만기일, 보증금 반환 가능성을 한 장의 달력으로 정리하라. 대통령의 메시지가 대출 만기 연장 문제를 공정성으로 끌어올린 순간, 만기 연장은 더 이상 습관이 아니라 심사와 분위기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보유 주택을 ‘코어’와 ‘독’으로만 나눠라. 사람들은 흔히 ‘좋은 집’부터 팔지 못해 망한다. 사실은 반대다. 나쁜 집을 못 팔아서 망한다. 코어는 시장이 흔들려도 수요가 남는 집이다. 직주근접, 학군, 교통, 희소성이 겹치며 임대가 유지되는 자산이다. 독은 공실 가능성이 크고, 수선비가 늘고, 환금성이 낮고, 규제에 더 취약한 자산이다. 정리는 코어를 파는 게 아니라 독을 먼저 빼는 것이다. 이것이 질서다.
5월 9일은 ‘캘린더’가 아니라 ‘협상력의 분기점’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5월 9일부터 재개된다는 사실은, 단순히 세율이 오르는 문제가 아니다. 그날 이후로 달라지는 것은 매도자의 심리가 아니라 매수자의 협상력이다. 세금이 무거워지는 순간, 매수자는 더 느긋해진다. 매도자는 더 조급해진다. 거래 규제로 매도 절차가 길어질수록 그 격차는 커진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연장은 바로 그 시간 비용을 늘린다.
정부가 계약 체결 후 잔금과 등기 기간을 4~6개월 유예하겠다고 밝힌 것도, 현실적으로 거래가 ‘기간 산업’임을 인정한 조치다. 하지만 유예는 구명줄이 아니다. 구명줄은 “내가 살고 싶은 방향으로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다주택자의 선택지는 네 갈래뿐이다. 정치는 다주택자를 한 단어로 묶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장은 묶이지 않는다. 다주택자가 지금 취할 길은 결국 네 가지 중 하나로 수렴한다.
첫째, 선별 매각, ‘한 번에’가 아니라 ‘순서 있게’.
모두를 정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독을 방치할 여유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은 단순하다. 세금이 아까워서 못 파는 집은, 대개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그 비용은 금리일 수도 있고, 공실일 수도 있고, 보증금 반환 압박일 수도 있다. 선별 매각은 ‘가격 맞추기’가 아니라 ‘리스크 제거’다. 그리고 리스크 제거는 늘 가장 취약한 고리부터 끊는 작업이다.
둘째, 똘똘한 한 채로의 재편—‘구호’가 아니라 ‘기능’으로.
똘똘한 한 채는 슬로건이 아니다. 비싸서 똘똘한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팔리고, 필요할 때 빌려지고, 필요할 때 내가 살 수 있는 집이 똘똘하다. 규제지역에서 대출 한도와 LTV가 촘촘해진 환경에서는, 여러 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정책 리스크의 확률 게임’이 된다. 예컨대 규제지역에서 주담대 한도가 15억 원 초과 25억 원 이하 4억 원, 25억 원 초과 2억 원으로 줄고, 규제지역 LTV도 강화되는 흐름은 레버리지형 다주택의 숨통을 좁힌다.
셋째, 임대 운영의 정공법, 현금흐름으로 버티는 방식.
대출이 낮고 임대 수요가 안정적이라면, 버티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그 버티기는 “언젠가 오르겠지”가 아니라, 공실과 보증금 리스크를 관리하는 운영이어야 한다. 이 국면에서 임대사업자의 실력은 ‘지역 전망’이 아니라 ‘상품화’에서 드러난다. 수리, 관리, 임대료 구조, 월세 전환의 타이밍, 세입자 교체 비용을 숫자로 통제하라. 버틸 수 있는 다주택은 ‘많은 집’이 아니라 ‘관리되는 집’이다.
넷째, 승계 설계, 양도세를 피하는 게 아니라 ‘세목을 바꾸는 것’.
증여와 상속은 해답이 될 수도,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양도세를 피하려다 증여세와 상속세로 더 무거운 짐을 지는 경우가 흔하다. 승계형 다주택자는 “세금 줄이기”보다 가족의 거주 계획과 자금 계획을 일치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이 정렬이 끝난 다음에야 세금 설계가 의미를 갖는다.
#다주택자에게 남은 길은 하나다. ‘사전에 정리된 결단’
이제 다주택자에게 필요한 것은 선동의 분노도, 희망의 주문도 아니다. 질서 있는 결단이다. 만기 달력을 만들고, 코어와 독을 나누고, 5월 9일 이후의 세후 현금흐름을 계산하고, 선별 매각이든, 한 채 재편이든, 임대 운영 강화든, 승계 설계든 하나를 선택해 실행하라.
다주택 시대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무계획 다주택의 시대가 끝나는 것이다. 정책이 강해질수록 살아남는 방식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숫자, 날짜, 순서. 다주택자의 생존은 ‘집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는 것’에 달려 있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유튜브 ‘스튜TV’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다시쓰는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 설명서(2025)’ ‘경기도 부동산의 힘(2024)’ ‘서울 부동산 절대원칙(2023)’ ‘인천 부동산의 미래(2022)’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원칙(2022)’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2021)’ ‘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2020)’ 등이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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