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플랫폼이 없으면 데이터도, 인공지능(AI)도, 미래 산업의 주권도 없다.”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플랫폼산업진흥법’ 관련 간담회에서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구글 등 해외 플랫폼이 국내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현실을 짚으며 플랫폼을 단순한 규제 대상이 아닌 국가 전략 자산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 반토막…“규제의 역설 경고음”
이날 간담회의 기조 발제를 맡은 최민식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는 “22대 국회에 발의된 플랫폼 관련 법안 19개 대부분이 규제에 집중되어 있다”며 플랫폼 산업의 기술 혁신과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플랫폼산업진흥법 제정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보고서에 따르면 플랫폼 스타트업에 대한 100억 원 이상 대규모 투자 비중은 2021년 17%에서 2023년 8%로 반토막 났다. 최 교수는 “주요국들이 디지털 경제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정책과 법제도를 통해 자국 플랫폼 산업 보호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플랫폼을 기술·산업 경쟁력의 핵심 기반으로 관리하고 육성하는 ‘국가 플랫폼 자본주의(State Platform Capitalism)’ 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규제와 진흥의 균형을 맞춘 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날 간담회는 국회 스타트업 연구모임 ‘유니콘팜’이 주최하고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관했다. 현장에는 산업계와 학계, 정부 관계자가 모여 국내에서 규제 관점으로 접근하는 플랫폼 정책의 방향을 ‘진흥’으로 선회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갔다.
제시된 ‘플랫폼산업진흥법(안)’은 총 4장 19개 조문으로 구성됐다. 중소 플랫폼 생태계 지원(제10조), 창업 활성화(제11조), 전문인력 양성(제12조), 기술혁신 지원(제13조) 등을 명시하고, 이용자 보호를 위해 자율규제(제18조)와 분쟁 해결(제19조) 체계를 담은 것이 특징이다.
#플랫폼이 곧 산업 인프라, 상생 해법에는 ‘시각차’
패널 토론에서는 법안의 실효성과 자율규제의 중요성을 둘러싼 구체적인 제언이 이어졌다. 선지원 한양대 법전원 교수는 정부 주도 규제의 부작용을 짚었다. 선 교수는 “현재의 플랫폼 산업은 기술 집약적일 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이용자 반응을 통해 자율규제를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정부가 자율규제를 주도한다는 명제는 모순을 안고 있다. 과거 게임산업법 사례처럼 정부가 개입하는 시점부터 오히려 시장의 자율규제는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며 “이용자의 능동적인 리액션과 시장의 선택에 맡기는 신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업계 대표로 나선 최희민 라포랩스 대표는 데이터 주권의 실제 사례를 들었다. 4050 여성 패션 플랫폼 ‘퀸잇’ 운영사인 라포랩스는 지난해 말 SK스토아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현재 대주주 승인 변경 등 관련 절차를 밟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최 대표는 “해외 주요 AI 모델은 상향 평준화돼서 차별점이 줄어들고, 결국은 ‘로컬 데이터’가 승부처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 특유의 사계절 패션 데이터 등은 국내 플랫폼만이 가질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플랫폼이 없으면 AI 기술이 있어도 고객과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정산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플랫폼들은 셀러에게 줄 돈을 자사 자금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현재 자율규제가 잘 작동하고 있다”면서도 “혹여 규제가 도입되더라도 금융기관 예치 등 운영 방식의 자율성은 플랫폼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소상공인 측은 실질적인 정산 주기 관리 등 상생을 위한 정교한 제도 설계를 요청했다. 입점 업체를 대표한 민상대 디지털상공인연합 회장은 “국내 상공인의 95% 이상이 10인 이하 사업장이다. 매출 100억 원대에 도달하면 다시 위축되는 양상이 나타난다”며 “플랫폼은 소상공인의 인큐베이터지만, 규제를 통해서라도 정산 주기를 단축해주는 것이 10인 미만 영세 기업들에게는 피가 도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승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연구위원은 “강력한 빅테크 규제를 시행한 유럽에서 오히려 스타트업 투자가 위축되는 ‘규제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며 전체 생태계 후생을 고려한 유연한 법 설계를 당부했다. 전성민 교수는 “국내 스타트업 사업계획서 10개 중 9개가 플랫폼을 표방하는 만큼, 플랫폼 주권 확보는 다음 세대를 위한 생존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진흥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법령 간 중복성을 검토하는 상황이다. 정보통신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ICT융합법) 등 기존 법령이 이미 플랫폼 기업 지원을 상당 부분 포괄하고 있어, 기존 법과의 관계를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방침이다.
ICT 융합법이 기술 일반에 대한 지원이라면, 이번 진흥법안은 플랫폼 특유의 ‘데이터 선순환’과 ‘입점업체 상생’을 법제화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중심의 ‘온플법’은 거래 공정성에만 치중해 산업 육성이라는 큰 그림을 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곽미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플랫폼팀장은 “플랫폼을 규제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진흥 관련 관점도 법적으로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 정책 연구 과제로서 검토하고 있다”며 “온플법만으로는 플랫폼 산업 진흥 전체를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진흥 법안도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 다만 별도의 플랫폼 진흥 법안이 필수적인지는 논의해봐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공동대표는 “분당 과금 방식으로 글로벌을 공략하는 트웰브랩스 같은 기업들 역시 플랫폼 기업”이라며 “플랫폼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데이터와 서비스의 선순환이 가능하며 한국 AI 경쟁력도 도약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유니콘팜 공동대표인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쿠팡 사태’ 등을 계기로 다시 불붙은 플랫폼 규제 일변도의 논의 지형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김 의원은 “개별 사건이 산업 전체의 정책 방향을 좌우하게 될 경우 그 한계는 분명하다. 해법이 지속 가능하려면 플랫폼 산업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과 성장 구조를 함께 고려한 전략적인 정책 설계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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