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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성분명 처방' 법안 추진에 26년 묵은 의·약 갈등 '재점화'

의료계 "징역 1년 감수하란 거냐" 반발…약계 "기형적 영업 구조 탓"

2026.03.13(Fri) 11:14:15

[비즈한국]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후 26년 만에 의료계와 약계의 해묵은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국회가 필수의약품 수급 안정을 위해 의사에 성분명 처방을 권고 또는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양측의 기득권과 명분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의약분업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약계에서는 의사들이 기형적인 제약영업 생태계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다며 일축하고 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 등 의료계 관계자 200여명이 지난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의 성분명 처방 법안 추진을 반대하는 궐기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책임은 의사가, 선택은 약사가?" 징역형 강요에 격분한 의사들

 

지난 11일 오후 4시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 등 의료계 관계자 200여 명이 '성분명 처방 저지 궐기대회'를 열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약사법 개정안을 규탄했다.

 

의료계는 환자 안전과 치료의 일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성분명 처방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 박근태 회장은 “환자가 안전하게 치료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며 “같은 성분이라 할지라도 제약사마다 제조 공법이 다르고 생체 이용률과 흡수 속도에 따라 차이가 많이 존재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행정규칙인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을 살펴보면 대조약(오리지널)과 시험약(제네릭)의 비교평가항목치의 기하평균비율의 90% 신뢰구간이 80~125% 이내면 동일 주성분을 함유한 두 제제의 생체이용률은 통계학적으로 동등하다고 평가받는다. 의료계에서는 성분이 같다는 이유로 의사가 처방한 약과 다른 약을 약국에서 임의로 대체 조제한다면 약효가 떨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환자 단체인 의료정책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김형중 대표도 “마이너스 20%에서 플러스 25%의 약효 차이는 사실 약이 바뀌는 수준의 차이”라면서 “고령의 당뇨 환자 등은 단순 혈당 조절 실패를 넘어 수면 중 저혈당 증세로 사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의료계는 법안에 포함된 처벌 조항에 대해서도 분노감을 표출했다. 박종환 서울 25개구 의사회장단 대표회장은 “의사가 약 이름을 쓰는 이유는 책임을 지기 때문인데 약은 약국에서 고르라고 한다”며 “선택은 약사가 하고 책임은 의사가 진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겠다고도 한다"며 격분했다. 황규석 범대위 홍보위원장도 “성분명 처방 안 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을 때린다고 한다”며 “우리 의사들은 언제든지 교도소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의사가 돼야 될 것 같다”고 성토했다.

 

성분명 처방 법안의 원인으로 지목된 의약품 수급 불안정 사태에 대해서는 정부 정책 실패를 꼬집으며 사태가 악화된다면 의약분업 원칙을 파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료계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의약품 수급 불안정 사태는 원료 의약품의 과도한 해외 의존과 정부의 잘못된 약가 정책이 불러온 명백한 정책 실책인데도 국회가 본질적인 개선책 도입은 외면한 채 성분명 처방이 해결책이라는 황당한 법안을 통해 책임을 의사들에게 미루고 있다”면서 “개악을 강행한다면 2000년 시작된 의약분업 의·약·정 합의 파기로 간주하고 의약분업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궐기대회에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충남 보령시서천군)가 참석해 의료계애 힘을 실었다. 장 대표는 “윤석열 정부에서 의료계의 목소리를 충분히 챙겨 듣지 못하고 급하게 의료 개혁을 추진하다 결국 실패해 국민들께 불편을 드리고 또 의료계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께 상처를 드려 죄송하다”면서 “앞으로 의료계의 목소리와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국민의힘이 더 새겨듣고 충분히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겠다. 그래서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정책들을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약속드린다”고 말해 의료계의 환호를 받았다.

 

#"본인들이 처방해온 약이 짝퉁약?"…기형적 영업 구조 정조준한 약사회

 

반면 약계는 이러한 의료계의 반응에 냉소적이다. 의사들이 명분으로 내세운 반발 이면에는 제약사들이 만들어 놓은 영업적 유착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날 국회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이수진·서영석·장종태·김윤 의원과 무상의료운동본부,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공동주최로 ‘건강보험 중심 약가제도 개편을 통한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노수진 대한약사회 홍보이사는 “현재 국내에서는 동일 성분 의약품이 수십 개씩 존재하는데, 상품명 처방 체계에서는 특정 회사 제품을 선택하는 권한이 오직 처방권자인 의사에게만 집중된다”면서 “이 구조에서는 제약사가 약의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보다, 동일 성분 의약품 중 자사 제품을 병·의원에 먼저 진입시키는 영업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분명 처방과 성분 단위 가격 경쟁으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리베이트·품절·다제처방 문제를 풀기 어렵고 성분명 처방을 전면 도입해 동일 성분 내 최저가 또는 중앙값 약제로 대체조제하면 매년 7조 9000억 원의 재정 절감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약계에서는 의사들이 동일 성분의 제네릭의 효능과 안전성을 문제삼는 데 대해서도 의구심을 보낸다. 현재 유통되는 제네릭들은 의사들이 매일 병원과 의원에서 환자들에게 직접 지시하고 처방해 유통되는 약들이고 대형 종합병원들도 입찰 경쟁을 통해 특정 제약사의 제네릭을 들여와 처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계 관계자는 “의사들이 이제 와서 제네릭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의사 처방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명백한 자기부정”이라고 비판했다.

 

#의무화부터 권고까지…국회 문턱 대기 중인 성분명 처방 법안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소위에서 성분명 처방 법안이 상정돼 있다. 당초 지난 11일 심사가 예정됐지만 당일 다른 쟁점 법안의 논의가 길어진 탓에 성분명 처방 법안은 내달 열리는 소위원회에서 재논의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대전 서구갑)과 김윤 의원(비례대표)이 각각 법안을 발의했는데 장 의원은 의사에게 상품명 처방 대신 성분명으로 의약품을 처방할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의료계에서 분노하는 위반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 조항이 포함된 법안이 장 의원이 발의한 것이다. 대상 의약품은 수급 불안정 의약품 공급관리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구에서 심의를 거쳐 공식 지정한 수급 불안정 의약품에 한정한다.

 

김 의원의 법안은 의무로 규정한 장 의원과 달리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에게 성분명 처방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담고 있다. 대상 의약품은 수급이 불안한 의약품 외에도 국가필수의약품까지 범위를 넓혔다. 이들 법안 모두 모든 의약품에 대해 성분명 처방 의무를 전면 도입하는 것이 아닌 제한적인 범위에서 적용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사실 현재 법률 규정에서도 성분명 처방이 금지돼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12조는 의사나 치과의사의 처방전 발급시 기재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제1항 제5호에서 ‘처방 의약품의 명칭(일반명칭, 제품명이나 약사법 제51조에 따른 대한민국약전에서 정한 명칭을 말한다)·분량·용법 및 용량’을 명시하고 있어 의료인은 처방전을 작성할 때 성분명이나 상품명 중 하나를 선택해 처방전을 쓸 수 있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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