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중동 정세 불안이 국내 건설업계와 레미콘업계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이란 전쟁 이후 원유와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레미콘 제조 원가와 운반비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수도권 레미콘 가격 인상을 둘러싼 건설업계와 레미콘업계의 협상은 두 달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양측은 인상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인상 폭과 반영 시점을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건설업계와 레미콘업계에 따르면 양측은 지난달 31일 수도권 레미콘 가격 조정을 위한 7차 협상을 벌였다. 현재 레미콘 가격(규격 25-27-150)은 ㎥당 9만 5500원. 레미콘업계는 이 가격을 ㎥당 5600원(5.9%) 올리자고 주장한 반면, 건설업계는 그 절반 이하인 2400원(2.5%)만 인상하자고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2월 초 협상을 시작해 두 달째 줄다리기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7차 협상도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마쳤다.
레미콘업계가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이유는 원가 상승이다. 미국-이란 전쟁 영향으로 물길이 막히면서 중동산 원유 가격은 올해 초 배럴(Bbl)당 58달러에서 지난 3월 169달러까지 3배 가까이 올랐다. 원유를 정제한 나프타 가격은 1일 미터톤(MT)당 1241달러로 연초 대비 2배 이상 상승했다. 레미콘은 시멘트, 골재, 물에 혼화제를 배합해 만드는데, 혼화제 주원료가 나프타로 만든 에틸렌이다. 나프타 가격 상승에 따른 제조 원가 부담과 유가 상승에 따른 운반비 인상 압박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최근 가격 인하와 출하량 감소도 인상 요구 배경이다. 레미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레미콘 출하량 잠정치는 전년 대비 19%가량 줄어든 9300만 ㎥로 IMF 직후인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레미콘 출하량은 건설 경기 불황에 따른 수요 감소로 2021년 1억 4591만 ㎥에서 4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레미콘업계와 건설업계는 지난해 3월 레미콘 가격을 ㎥당 2300원 인하했다. 출하량 감소와 가격 인하로 업황이 악화한 상황에서 원가 인상 요인이 덮친 셈이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좋지 않은 업황에 유가와 혼화제 공급난까지 겹치면서 레미콘을 생산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가 됐다. 혼화제의 경우 레미콘 공장 저장창고 비축량이 대부분 2~3일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혼화제 조달이 끊기면 즉각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지금 상황이 지속되면 4월 중순~5월 초부터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며 “경영 상황이 어려운 영세업체들의 도산 우려도 있는 만큼 레미콘 공급망 보호를 위해서라도 합리적인 선에서 가격이 인상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역시 레미콘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중동발 원가 인상 요소를 당장 반영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가격 인상폭을 지난해 인하 수준인 2400원으로 제시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유가와 혼화제의 경우 가격 인상 요인이 충분히 있지만 현재 레미콘 생산에 직접 반영된 것이 아니다”며 “레미콘·혼화제 제조사에 확인한 바로는 4월까지는 레미콘 생산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당장 2주 뒤 수급 불안이 닥친다는 것은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레미콘 가격이 오르면 공사 원가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가 인상 자체에는 동의한 만큼 향후 레미콘 가격은 ㎥당 2400원~5600원 오를 가능성이 크다. 건설사는 인상분을 공사비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발주처나 조합과 갈등을 빚거나, 착공 단지의 경우 공사비 인상 제한 특약에 따라 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 다만 레미콘이 주택 현장 공사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통상 10% 수준이어서 직접적인 비용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다.
공사 원가 부담을 온전히 떠안기에는 건설업계 사정이 녹록치 않다. 건설현장 물가 변동을 나타내는 건설공사비지수는 올해 2월 133.69로 6개월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건설사들의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건설경기실사지수(CBSI)도 62.5로 2024년 5월 지수 개편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공사 원가는 높은데 업황은 얼어붙은 상황이어서, 건설사들로서도 레미콘값 인상분을 선뜻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건축자재는 대부분 국내에서 수급하는데, 국내 화학플랜트 가동률이 하락하면 자재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건축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도 있지만, 자재 수급이 어려워져 공사가 지연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착공 초기단계인 골조 단계에서의 공기 지연은 이후 따라잡을 수 있지만, 공사 마무리 단계에서의 공기 지연은 지체상금 및 PF채무인수 등에 대한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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