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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SaaS 버리고 AI로" 10년 일군 브랜드 스스로 없앤 이 남자

유럽 최대 SaaS 컨퍼런스 SaaStock 창립자 알렉스 튜마, 다음 시대 향해 '시프트 AI'로 이름 바꿔

2026.04.24(Fri) 16:21:25

[비즈한국] “10년간 일군 SaaStock 브랜드를 나 스스로 없애버리기(burn down)로 결정했다.”

 

유럽 최대 B2B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컨퍼런스인 SaaStock의 창립자이자 CEO인 알렉산더 튜마는 지난 15일 미국 오스틴에서 SaaStock USA 2026이 개막하기 직전,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SaaStock ​설립자인 알렉스 튜마가 10년간 일군 SaaStock 브랜드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사진=the saas revolution show 영상 캡처

 

그는 “사용자(seat)당 요금제는 회복 불가능한 구조적 압박을 받고 있다”면서 “AI가 고객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워크플로를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SaaStock은 201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34개국 700명이 모인 컨퍼런스로 시작했다. 튜마가 IT·통신 영업 11년 경력을 접고 2015년 개설한 SaaS 전문 블로그 ‘SaaScribe’가 그 씨앗이었다. 2년 만에 참가자가 1500명으로 늘었고, 이후 북미·남미·아시아·호주로도 확장했다. 전성기엔 5개 대륙 4000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행사로도 발전했다.

 

고객 메시징 플랫폼 인터컴(Intercom), 기업용 결제 인프라 소프트웨어 패들(Paddle), 일정 예약 자동화 툴 캘린들리(Calendly), 온라인 협업 툴 미로(Miro), 기업 HR 관리 플랫폼 페르소니오(Personio) 등 소위 ‘잘나가는’ 유럽 SaaS 업체들이 이 무대를 거쳐갔다.

 

SaaS 스타트업들에게 SaaStock은 자신들의 기술을 선보이고, 투자자를 만나 유니콘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나서야 하는 몇 안 되는 검증의 기회였다.

 

이 기회마저 이제 없어졌다. SaaStock USA 2026는 그렇게 SaaS 시대의 종언을 고한 자리가 됐다.

 

#AI, 사스포칼립스를 불렀다

 

SaaS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를 뜻한다.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컴퓨터에 직접 설치하는 대신, 매달 돈을 내고 온라인에서 빌려쓰는 형식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쓰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365를 비롯해 노션(Notion), 슬랙(Slack) 등이 잘 알려진 B2B SaaS다.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 수에 맞게 소프트웨어를 사는 것보다 이렇게 빌려쓰는 것이 비용이 저렴하고, 관리나 유지보수, 확장도 쉽다. 대부분 SaaS는 사용자 수 만큼 돈을 받는다. 예를 들어 직원 10명이 쓰면 10명분, 100명이 쓰면 100명분을 지불하는 구조다. 하지만 AI가 직원들의 업무를 대신하게 되면서 직원 수에 맞게 좌석을 구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AI의 발전이 직원 머릿수대로 돈을 벌던 비즈니스 모델의 몰락, 즉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를 불러온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산하의 유럽 테크 매체 TNW(The Next Web)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2월 중순까지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약 2조 달러(약 2900조 원)의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사스포칼립스의 진원지였던 2월 3일 단 하루에만 2850억 달러(약 400조 원)의 가치가 증발했다.

 

#AI 에이전트가 쏘아올린 공

 

사실상 사스포칼립스가 시작된 2월 3일은 앤트로픽과 구글이 잇따라 새로운 AI 에이전트 관련 발표를 쏟아낸 날이다. 앤트로픽은 자사 AI 에이전트 도구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를 공개하고, 법률·금융 등 11개 업무 영역에 적용 가능한 플러그인을 선보였다. 예를 들어 “고객사 계약서를 검토하고 리스크 조항을 요약해줘”라고 입력하면 클로드 코워크가 문서를 열고, 법률 기준에 따라 분석하고, 보고서까지 작성해준다. 또 영업 담당자가 “이번 분기 파이프라인 정리해줘”라고 입력하면 클로드 코워크가 CRM 데이터를 직접 열람하고, 분류하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도 있다. 단순 채팅형 AI를 넘어 전문 SaaS나 인력이 필요했던 영역까지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이날을 기점으로 급속히 퍼졌다.

 

구글 역시 지메일(Gmail)·문서(Docs)·시트(Sheets) 등 워크스페이스 전반에서 자사 AI 모델 ‘제미나이(Gemini)’를 기반으로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업무를 종결짓는 자율형 에이전트 플랫폼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이용자가 원하는 작업을 말로 설명하면 에이전트가 관련 앱을 직접 열고, 데이터를 읽고,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상용화됨에 따라 단순 반복적인 SaaS 조작 업무의 최대 80%가 자동화될 것으로 본다. 이는 단순히 인건비 절감을 넘어, ‘인원수만큼 소프트웨어 계정을 산다’는 개념 자체를 하루 아침에 과거의 유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SaaS 업계, 줄줄이 기업가치 폭락

 

이러한 인식 변화는 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2026년 초 실적 발표 시즌을 전후로, 협업 소프트웨어 지라(Jira) 등을 만든 호주의 SaaS업체 아틀라시안(Atlassian)은 기업 고객의 좌석 수 감소를 처음으로 공개한 이후 수주에 걸쳐 주가가 약 35% 하락했다. SaaS의 창시자격이자 CRM(고객 관리) 솔루션 업체인 세일즈포스(Salesforce)의 경우도 비슷한 기간에 약 28% 하락했다.

 

전통 소프트웨어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Adobe), SAP, 오라클(Oracle), 서비스나우(ServiceNow) 등도 수백억에서 많게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분석됐다.

 

SaaS 생태계 전망 역시 회의적이다.

 

글로벌 IT 전문 시장조사 및 컨설팅 기업인 가트너(Gartner)의 2026년 IT 지출 전망에 따르면, 기업들의 신규 기술 투자 예산이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구독에서 AI 인프라와 에이전트 구축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실제 현장(CIO 설문 등)에서는 신규 소프트웨어 관련 예산 증액분의 약 70%가 기존 앱 업그레이드 대신 자체 AI 모델 확보와 연산 자원 구매로 이동했다는 수치가 확인됐다. 이제는 기업들이 ‘범용 소프트웨어’에 자릿세를 내기보다 자체적으로 특화된 AI 생태계 구축을 택했음을 보여준다.

 

#종말인가 전환인가

 

다만 사스포칼립스가 소프트웨어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사스포칼립스 공포가 한창이던 2월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시스코(Cisco) AI 서밋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쇠퇴하고 AI로 대체된다는 인식은 세상에서 가장 비논리적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AI는 기존 소프트웨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 활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프트웨어 사용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였다.

 

운용자산 6000억 달러(약 890조 원) 규모의 미국 대형 사모펀드 아레스매니지먼트(Ares Management)의 마이클 아루게티 CEO도 AI 혼란을 소프트웨어만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기업 깊숙이 자리 잡은 시스템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죽는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머릿수 장사’라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SaaStock USA 밋업에 참석한 SaaS 관련 기업과 스타트업 관계자들. 사진=SaaStock USA

 

SaaS 기업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세일즈포스는 앤트로픽과 손잡고 AI 에이전트 통합 플랫폼을 내놨고, SAP는 8000명 규모의 인력을 AI 중심으로 재배치했다.

 

TNW는 기업 10곳 중 7곳이 이제는 단순한 구독료가 아니라, ‘AI가 실제로 얼마나 일을 했는지’에 따라 비용을 내겠다고 요구한다고 밝혔다. 머릿수가 아닌 ‘결과’에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로의 전환이 생존의 조건이 된 셈이다.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도 이 같은 재편의 한가운데에 있다. 유럽 벤처캐피털 데이터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유럽 스타트업 투자에서 AI가 차지하는 비중은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돈은 SaaS에서 AI 인프라와 버티컬 AI(Vertical AI, 특정 산업에 특화된 AI)로 이동했다.

 

#튜마의 선택

 

그렇다면 튜마는 어떤 결정을 내렸나. SaaStock을 닫는 대신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새 이름은 ‘시프트 AI(Shift AI)’​다. SaaS라는 단어 자체를 브랜드에서 지운 것이다.

 

이 결정이 나오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고 그는 직접 밝혔다. 컨퍼런스 수익이 나빠서도, 참가자 수가 줄어서도 아니었다. 튜마가 스스로 물은 질문은 단 하나, “이 이름을 달고 다음 시대를 이끌 수 있는가”였다. 아쉽게도 그의 대답은 “노(No)”였다.

 

시프트 AI의 첫 행사는 오는 10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다. 튜마는 10년간 쌓아온 커뮤니티를 그대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SaaStock이 가치 있었던 것은 이름 때문이 아니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던 창업자들의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제 바르셀로나에서 새로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필자 이정우는 17년간 언론사 기자로 자동차, 2차전지, 중공업 등 주요 산업을 비롯해 국방, 외교, 환경, 교육,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담당했다. 특히 모빌리티 및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성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123팩토리'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정우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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