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종철 작가의 어머니는 물회를 좋아하신다고 했다. 육수를 따로 넣지 않고, 생선회에 고추장과 채소를 넣고 비벼 자작하게 먹다가 뒤에 물(얼음)을 부어 먹는 포항식 물회. 책 ‘제11호 태풍 힌남노’에도 물회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더하며 수해 복구 의지를 다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온다. 우리는 작가의 어머니를 뵙고 싶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더운 봄날, 작가는 자신의 소울푸드로 김치찌개를 꼽았다.
#모두를 둘러앉히는 김치찌개의 힘
작가가 김치찌개를 좋아할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제철동 사람들’, ‘제11호 태풍 힌남노’ 등 그의 작품 곳곳에 김치찌개가 등장한다. 무엇보다 그는 김치찌개(전골)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아들내미”다. 경북 포항시 남구 제철동에서 삼십여 년째 이어온 부모님의 식당은 그의 작품에서 ‘상주식당’과 ‘하늘식당’으로 두 차례 이름이 바뀌었지만, 김치찌개가 빠진 적은 없었다.
어머니 ‘순이’의 김치찌개는 직접 낸 육수에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김치와 양념을 더해 끓여낸다고 한다. ‘며느리한테도 안 알려주는’ 비법이 있는지 내심 기대하며 작가의 입만 바라보는데, 아들도 별다르게 아는 바가 없는 눈치다. 라면 사리가 무한 리필인데, 가격이 1인분에 8000원으로 염하다고 하니 푸진 인심이 맛의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수해 복구가 한창이던 때에도 사람들이 찾아와 “내가 이 김치찌개를 얼매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늘식당 장사하는 거 보니까, 동네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힘이 난다”라고 했다니, 작가가 그리워하는 김치찌개는 작가 한 사람의 추억을 넘어 마을, 공동체를 잇는 매개이기도 하다.
“포스코에 신입으로 입사한 직원이 단골손님이 되고, 시간이 지나서 과장으로 승진했다며 찾아오고, 부장이 돼서 부하 직원들과 회식하러 오는데, (중략) 어떻게 식당 문을 닫겠냐. 몸이 받쳐주는 한, 계속 장사를 해야지.” 어머니 ‘순이’의 김치찌개를 먹고 자란 것은 작가만이 아니다. 지글지글 끓는 김치찌개를 사이에 두고 작가, 부모님, 동생, 식당의 이모들, 공단과 마을의 사람들이 둘러앉는다.
작가는 1년에 두어 번 포항을 찾을 때마다 김치찌개 노래를 부르지만, 오랜만에 본 아들에게 좋은 걸 먹이고픈 어머니는 삼겹살, 물회 같은 별식을 내주신단다. 며칠 전 생일에도 작가는 고향에 가서 김치찌개 타령을 했지만, 어머니는 미역국을 차려주셨다고 한다. 한여름 같은 봄날, 우리는 팔팔 끓는 김치찌개에 사리를 넣었다.
#“우리 이야기는 만화가 된다”
만화가 이종철은 자신과 동떨어진 먼 곳에서 주제를 찾지 않는다. 직접 겪고, 오래 보고, 많이 생각해온 일, 사람, 관계가 주제가 된다. 우리 모두 몸도 마음도 ‘파손 주의’라고 말하는 ‘까대기’부터 마을 공동체 안에서 성장해가는 개인을 비추는 ‘제철동 사람들’, 재난을 겪으며 서로가 ‘상관있는’ 관계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제11호 태풍 힌남노’, 너와 내가 각자의 자리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전태일임을 시사하는 ‘다시 전태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몸을 써 일하고 애써 살아가는, 함께하는 이들의 어제와 오늘이 그의 만화가 된다. 그의 만화를 볼 때마다 작중 캐릭터가 된 현실의 사람들은 내내 안녕한지,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징징거리지 말자
현실에 코 박고 살아온 사람이 문득 옆과 뒤를 보았을 때, 그의 시선에 관계와 연대가 담긴다.
“까대기 알바를 한 6개월 정도 했을 때, 이걸 가지고 웹툰을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했어요. 그때는 ‘여기는 절대 일하면 안 되는 곳’, ‘지옥의 알바’ 같은 자극적인 느낌이었죠. 그런데 6년 정도 일면서 함께하는 동생들도 생기고, 까대기 대장 같은 역할을 하게 되니까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아웅다웅하는 택배 기사님들과도 관계가 만들어지니까 함부로 못 그리겠더라고요. 이해하는 측면이 많아졌죠.”
그는 자신이 겪어온 일을 재작년 여름 더위처럼 이야기한다. 열기에 치솟았던 감정은 해를 묵히며 제자리를 찾는다. 자극, 거룩, 비장의 강박에서도 이미 벗어났다. 시간이 지났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나무에서 멀어진 뒤에야 보이는 숲을 곡진하게 그려낸다. 감정을 폭발하지 않고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을 거울로 비추듯 담아낸다. 그해 여름을 뜨겁게 보낸 사람만이 시선에 거리와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주인공 이름을 본명과 비슷하게 하니까 감정이입이 과해져서 징징거리게 되더라고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것처럼. 그런데 주변 친구들을 막상 만나보면 박봉에, 야근에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징징거리지 말자 싶었죠.”
#가르치려 들지 않는 이종철의 자전 다큐
최근작 ‘다시 전태일’은 출판사의 제안으로 시작한 만화다. 처음 기획은 청소년에게 전태일 열사를 소개하는 만화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이야기까지 아우르는 것이었으나, 이것이 작가의 양에 차지 않았다. 작가는 전태일을 과거에 박제하기보다는 ‘나’를 포함한 현재의 전태일과 과거의 전태일을 연결해 생동하게 하고자 했다. 자전적 만화를 그려온 작가적 특성이 부조된 전태일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오늘에 되살린 것이다.
그가 만화가가 되는 과정에서 르포르타주나 역사의 재현으로서 특정한 지점들을 드라마틱하게 부각하는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의 만화를 그들 뒤에 세우지는 않았다. 그는 이방의 관찰자도, 전지전능한 심판자도 아닌 작가 자신의 자리에 섬으로써 고유한 만화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노동과 인권, 재난과 피해자 소외를 다루지만, 당위에 갇히지 않고 강변하지 않음으로써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방식이다. 그의 시선이 절묘한 지점이다.
#다음엇지*
자리를 옮긴 카페에서 그의 다음을 물었다. 그는 TK(대구 경북)의 정치적 보수성과 그 근간에 대한 만화 작업을 오래도록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북 포항에서 나고 자라, 전북 군산에서 대학에 다니며 영호남의 정서를 모두 겪어본 그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소화해 만화로 그려낼지 궁금했다. 자칫하면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어려운 주제이기에 염려가 되면서도, 그동안 성실하게 축적해온 그의 작가적 경험과 역량이라면 복잡하게 뒤엉킨 결들을 잘 되새김하여 칸칸이 세밀하게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었다.
그는 최근 강단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교육자로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역과 노동, 자신의 삶을 관류하는 주제들을 출판만화의 형식으로 그려온, 어쩌면 시류와 정반대로 나아간 작가의 경험이 상업 만화 연재와 스튜디오 취직 외에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가닿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그에게 우리는 우리의 바람을 답인 양 건넸다. 만화로 만화 이론을 펼쳐 보인 스콧 맥클라우드처럼, 소재 발굴에서부터 책 출간까지, 자신의 창작 방식과 과정 면면을 그가 잘하는 자전적 만화로 그려내면 어떨까. 카페가 북적이기 시작할 무렵, 다음 칸(만남)에는 막걸리를 그려 넣자고 약속하며 자리를 마쳤다.
*다음엇지: 만화를 일컫는 순우리말.
이종철 작가는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나 포항제철 공단 마을에서 자랐다. 한적한 시골 마을과 공단 사이의 상가 동네에서 제철소 노동자와 인부, 식당 종업원, 농민 등 다양한 유형의 삶을 만났다. 전라북도 군산의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바다 아이 창대’(2017)의 그림을 맡아 화업을 시작했다. 서울로 이주해 생계를 위해 택배 상하차(까대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때의 경험을 그린 ‘까대기’(2019)가 ‘2018 다양성만화제작지원’에 선정됐고, ‘오늘의 우리만화상’(2019)을 수상했다.
포항제철 인근에서 나고 자라며 봐온 제철소 노동자들과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제철동 사람들’(2022)과 태풍에 휩쓸린 제철동 마을 사람들의 연대를 그린 ‘제11호 태풍 힌남노’(2024)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다시 전태일’(2026)을 그렸다. 현재는 만화 작업을 하며 백석예술대학교와 구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손에 박힌 굳은살이 작가로서의 자기 정체성 같다고 말하는 그는 부단히 몸을 써 칸을 그려내는 작가다. 진득하게 자리를 지키며 만화를 그려내는 이두호 작가보다는 발로 뛰는 취재를 바탕으로 만화를 그리는 허영만 작가에 가깝다고 할까.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종철 작가와 이두호 선생의 인연이다. 고등학교 때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작가가 YWCA에서 개최한 대회에 네 칸 만화를 출품했다가 은상을 수상했는데, 그때 시상자가 이두호 선생이었다고 한다.
십 대 때 주간 만화잡지를 보며 빠른 호흡의 만화에 자신을 잃어갈 무렵, 투니버스에서 방송한 명작 단편 애니메이션과 한국 고전 만화 애니메이션 소개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등이 참여한 ‘내가 살던 용산’(2010)을 비롯한 한국의 르포 만화들을 읽으며 “나도 내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때 하나의 조류를 형성했던 한국의 르포 만화 장르가 숨을 고르는 요즘, 이종철 작가의 만화는 자기만의 서사로 그 흐름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
필자 서찬휘는 만화 칼럼니스트로 만화와 그 주변 문화들의 흐름과 연결고리를 역사적 맥락에서 탐색하고 정리해왔다. 1998년부터 만화 정보 커뮤니티 ‘만화인’을 운영했고 한겨레신문, 일요신문, 인천일보, 국방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필자 송하원은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 대표로 대안만화 전문서점 ‘홈통’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기획자이자 만화 연구자이며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금천문화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만화가의 소울푸드’에서 한국 대표 만화가들이 사랑하는 음식을 통해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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