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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서면 실태조사'에 담긴 공정위의 규제 신호

공정위 서면 실태조사, 법 위반 징후 파악과 직권조사 방향 설정의 기초 자료

2026.06.08(Mon) 11:51:20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공정거래 규제는 기업 간 ‘갑을 관계’에서 비롯된 불공정거래행위 규제에 방점을 둔다. 사진=생성형 AI

 

우리나라 공정거래 규제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규제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이른바 대·중소기업 거래 공정화 규제로도 불리는 이 영역은, ‘갑을 관계’에서 비롯된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는 데 방점을 둔다. 독점력 형성이나 남용을 주된 규제 대상으로 삼는 외국의 경쟁법 실무와 뚜렷이 구별되는 지점이다.

 

불공정거래행위 규제를 둘러싸고는, 사인 간 거래에 국가 권력이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사적 자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그 핵심이다. 우리 공정거래 법제는 거래 유형에 따라 개별 단행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규제의 법적 근거를 구축해 왔다.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법이 그 결과물로, 각 거래 유형의 특성에 맞게 순차적으로 제정됐다.

 

이러한 입법 배경을 고려하면, 이들 4개 법률의 내용이 서로 유사한 구조를 띠는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들 법률은 다음의 공통 요소를 핵심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① 서면 작성을 통한 권리·의무의 명확한 설정

②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한 정보공개 제도, 서면 실태조사 실시

③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불공정행위 방지

④ 사후 분쟁 시 경제적 약자를 지원하는 제도 도입(손해액 추정, 증거 수집 원활화, 조정제도 등)

 

그런데 규제 실무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함에도 실무자들이 자주 간과하는 제도가 있다. 바로 공정위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서면 실태조사다. 서면 실태조사란, 공정위가 시장 전반의 거래 현황과 법 위반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행정조사다. 구체적으로는 법 위반 징후 포착, 직권조사 대상 선별, 자율 시정 유도, 정책 수립 근거 자료 확보 등을 목적으로 수천에서 수만 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설문 형식의 조사를 진행한다.

 

서면 실태조사가 주목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조사 대상 사업자의 수가 수만 개에 달해 시장 전반의 실태를 폭넓게 반영한다. 둘째, 설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개별 사업자의 법 위반 여부가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다. 셋째, 조사 결과는 이후 공정위의 직권조사 방향과 정책 수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특성상 관련 업계 종사자라면 서면 실태조사의 내용과 결과를 반드시 주시해야 한다.

 

먼저 2025년 유통 분야 납품업체 서면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조사는 공정위가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라 42개 대규모 유통업체와 거래하는 납품업체 76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 대상 업태는 편의점, 대형마트, 아울렛·복합몰, 면세점, 전문판매점, 백화점, TV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 등 다양하다.

 

납품업체 응답을 분석한 결과, 온라인 쇼핑몰과의 거래에서 전년 대비 거래 관행 개선율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더불어 대금 감액·지연 지급, 부당 반품, 판촉비용 전가, 배타적 거래 강요, 판매장려금 부당 수취 등 주요 불공정행위 유형 전반에 걸쳐 온라인 쇼핑몰의 피해 경험률이 가장 높았다.

 

이에 공정위는 “유통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납품업체가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모색하는 한편, 불공정행위가 빈발하는 분야의 거래 관행 개선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온라인 쇼핑몰 관계자라면 납품업체와의 거래에서 불공정거래 이슈가 잠재해 있지 않은지 지금이라도 면밀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서면 실태조사를 통해 시장 전반의 거래 관행과 법 위반 여부를 점검한다. 사진=생성형 AI

 

다음으로 2025년 하도급 거래 서면 실태조사의 주요 결과를 보자. 공정위는 제조·용역·건설업종에 걸쳐 원사업자 1만 개와 수급 사업자 9만 개, 총 10만 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 규모만으로도 하도급법이 가장 촘촘한 규제 밀도를 갖추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사 결과에서 주목한 첫 번째 쟁점은 하도급대금 연동제 회피 문제다. 연동제 적용 대상임에도 원사업자가 이를 준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하도급대금 연동제란 하도급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원재료가 있는 거래에서, 원재료 가격이 변동될 경우 하도급대금도 이에 연동해 조정하도록 약정을 체결할 의무를 원사업자에게 부과하는 제도다. 원재료 가격 인상 부담을 수급 사업자에게 전가하지 않기 위한 취지인데, 원사업자 입장에서는 수급 사업자로부터 형식적인 미연동 동의서를 받아 이 의무를 우회하려는 유혹이 크고, 실제로도 이러한 편법적 관행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쟁점은 기술 탈취다. 수급 사업자 응답 중에는 기술 관련 피해 사례를 지적하는 것이 많았다. 구체적으로는 원사업자의 일방적인 기술자료 요구, 비밀유지계약(NDA) 체결 회피, 나아가 기술을 무단으로 활용해 손해를 입은 사례들이 다수 보고됐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정위는 하도급대금 연동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탈법행위(미연동 합의 강요, 쪼개기 계약 등)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한편, 기술 탈취 근절을 위한 직권조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이 두 사안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 강도가 뚜렷이 높아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마지막은 2025년 대리점거래 서면 실태조사 결과다. 이번 조사는 21개 업종의 공급업자 510개사와 대리점 5만 개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온라인 유통의 급성장으로 대리점 거래가 위축됐을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실상은 달랐다. 대리점 채널은 여전히 전체 유통경로 중 가장 큰 비중(51.9%)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 수치는 전년 대비 오히려 증가했다. 온라인(7.3%), 직접 납품(19.4%), 직영점(8.4%), 기타(13.0%) 등 여타 유통경로를 모두 압도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시장 경쟁의 심화와 함께 대리점 거래의 질적 수준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대리점주 응답에 따르면 거래 만족도는 하락세를 보이고, 불공정행위 경험률은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구조적 취약성이 두드러진다. 대리점주는 창업 시 평균 2억 1000만 원 이상을 투자하고, 매장 리뉴얼에만 평균 5593만 원을 추가로 지출한다. 그럼에도 대리점 계약은 대부분 1년 단위로 체결되거나 심지어 계약 기간을 아예 정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공급업자가 일방적으로 거래를 종료하면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는 구조적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공정위는 ‘공급업자의 부당한 계약 해지 및 갱신 거절 등을 규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리점을 관리하는 실무자라면, 거래 종료·갱신 거절·재계약 거부 등의 의사결정을 내릴 때 법적 리스크를 충분히 검토하고 한층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공개되는 서면 실태조사 결과를 꼼꼼히 살펴보면, 시장의 흐름과 각 사업자가 직면한 고민의 윤곽이 보인다. 규제 대응 차원에서뿐 아니라, 업계 동향을 파악하고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정독해 볼 만한 자료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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