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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보단 몰개성이 낫다" 정치적 소비주의가 바꾼 기업 마케팅 풍경

의도와 무관하게 '정치적 입장'으로 해석…철저한 검수 시스템으로 노이즈 차단에 주력

2026.06.10(Wed) 15:24:30

[비즈한국] 광고 문구 하나가 브랜드의 ‘입장’으로 해석되는 시대가 됐다. 소비가 곧 정치적 의사 표현이 되는 ‘정치적 소비주의’가 일상이 되면서, 기업이 무심코 고른 단어와 표현도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다시 읽힌다. 높아진 소비자 감수성은 기업이 마땅히 살펴야 할 영역이 됐지만, 동시에 논란 가능성만을 잣대로 모든 표현을 걸러내기 시작하면 ‘무난한 메시지’만 남는다는 고민도 커지고 있다. 스타벅스 ‘5·18 탱크데이’ 논란과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도서 홍보 문자 사례는 이 두 갈래 과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알라딘 매장. 사진=윤채현 기자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읽히는 순간’ 입장이 되는 현상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단연 스타벅스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탱크데이’ 표현이 포함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사과와 후속 조치에 나섰지만 여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무신사는 2019년 양말 광고에 쓴 ‘속건성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가 뒤늦게 재조명되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다만 무신사는 뒤늦게라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내놓으면서 오히려 위기 대응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소비자들의 문제 제기가 기업의 감수성을 끌어올리고, 기업이 이에 어떻게 응답하느냐가 브랜드 평가를 가르는 구조가 자리 잡은 셈이다.

 

반면 알라딘 사례는 결이 다르다. 알라딘커뮤니케이션은 지난 5일 회원들에게 데이비드 팩먼 정치 평론가의 신간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홍보 문자를 보냈다. 문자에는 “우리는 투표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극우가 활개 치고 가짜뉴스가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지는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등 책의 메시지를 옮긴 문구가 담겼는데, 일부 보수 성향 소비자들은 이를 서점의 정치적 입장 표명으로 받아들였고 불매 운동과 회원 탈퇴 움직임이 이어졌다. 도서의 메시지와 서점의 메시지가 구분되지 않은 채 논란이 된 셈이다.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논란이 잇따르자 기업들의 대응은 전방위 검수 강화로 모이고 있다. 여름 성수기 마케팅을 앞둔 식음료업계는 기획 단계부터 마케팅을 전면 재검토하는 분위기다. 빙그레는 매년 호국보훈의 달과 국군의 날에 진행하던 자사 아이스크림 ‘탱크보이’의 군부대 전달 행사 진행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스타벅스 ‘탱크데이’가 도마에 오르면서 온라인에서 ‘탱크보이는 괜찮냐’는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논란이 된 표현과 단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수년간 이어온 행사까지 재검토 대상이 됐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는 논란 가능성이 있는 표현이나 온라인 밈의 의미를 사내에서 공유하는 등 내부 검수 체계를 보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I가 만든 문구도 예외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활용도가 높은 상황인데, 특정 사건이나 온라인 밈과 어떤 맥락에서 연결될 수 있는지까지 다시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27일 오후 서울 스타벅스 광화문점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정용진 회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박정훈 기자


#‘걸러내기’가 안전책이지만…남는 건 무난함뿐

 

소비자들이 기업의 표현에 사회적 책임을 묻는 흐름 자체는 거스를 수 없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노이즈 마케팅이 주목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논란이 곧바로 브랜드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라며 “소비자 감수성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마케터도 소비자 심리를 더 세밀하게 살피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표현을 사전에 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표현을 같은 잣대로 걸러내는 방식에는 우려도 나온다. 출판업계에서는 도서 홍보 문구를 일반 유통 광고와 같은 기준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서점은 다양한 사회과학 도서를 함께 다루는 공간인 만큼, 특정 도서를 소개했다는 이유만으로 서점의 정치적 입장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대형 서점 관계자는 “마케팅 문구는 늘 조심해서 본다”면서도 “이번 일로 내부 기준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리스크 회피가 마케팅의 획일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기업처럼 잃을 것이 많은 기업일수록 공격적인 마케팅보다 리스크 관리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며 “리스크를 피하려다 보면 파격적이거나 개성 있는 아이디어보다 무난하고 안전한 메시지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에 요구되는 것은 논란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일률적 ‘걸러내기’가 아니라, 표현이 놓이는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읽어내는 감수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신사 사례가 보여주듯 논란 자체보다 그 이후의 대응이 브랜드 평가를 가르는 만큼, 맥락을 읽는 역량 없이 무난함으로만 도피하는 것은 기업이 치러야 할 또 다른 비용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윤채현 기자

cogusz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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