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이 한국산업은행(산업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 근질권 말소 소송에서 최종 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창업회장과 산업은행은 동부그룹 구조조정을 계기로 갈등을 이어왔다. 김 창업회장은 2014년 동부제철에 자금을 수혈하는 과정에서 담보로 잡힌 주식을 돌려달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주식 근질권 설정 계약이 유효하다고 판단해 산업은행의 손을 들었다. 동부제철 매각 후 수년이 지난 뒤에도 김 창업회장이 주식 담보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패소 배경에 눈길이 쏠린다.
사건의 시작은 DB그룹이 동부그룹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동부그룹은 핵심 계열사 동부건설과 동부제철의 대규모 적자, 동양그룹 사태의 여파 등으로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동부그룹은 그해 11월 주요 계열사 매각·유상증자·총수 일가 사재 출연 등을 담은 자구 계획을 발표했으나, 자체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12월 5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사전적 구조조정 약정을 체결했다.
구조조정은 산업은행 주도로 진행됐다. 2014년 4월 동부제철은 산업은행에 1400억 원대 긴급 대출을 요청했다. 동부제철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상환 자금 912억 원의 만기가 돌아오면서다. 이를 갚지 못하면 대출금을 회수당해 채무 불이행 상황을 맞을 수 있었다. 산업은행은 동부제철에 912억 원의 산업운영자금을 빌려주며 자금을 수혈했다. 김 창업회장은 동부제철 대표로서 채무와 관련한 연대보증 계약을 맺었다.
긴급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동부제철은 인천공장을, 김준기 창업회장은 서울 한남동 자택과 본인 소유의 계열사 주식 일부를 담보로 제공했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자택의 채권최고액은 100억 원으로 잡혔다. DB아이엔씨(DB Inc.) 공시에 따르면 담보 제공된 대출 잔액은 1689억 원(추정)이다. 다만 대출 잔액 중 담보 제공 금액은 확인되지 않는다.
김 창업회장은 2014년 10월 사태에 책임을 지고 동부제철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4년 11월 동부그룹은 동부특수강을 현대제철 컨소시엄에 2943억 원에 매각했고, 매각 자금으로 산업은행에 약 390억 원을 상환했다. 이에 앞서 2014년 5월 동부제철은 인천공장을 물적분할해 동부인천스틸을 설립했다. 동부제철은 2019년 6월에야 KG그룹이 구성한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KG그룹은 동부제철 인수 이후 2020년 3월 동부인천스틸을 동부제철로 흡수합병했다. 동부제철은 이후 KG스틸로 사명을 변경했고, 잔여 채무도 인수했다.
KG그룹이 동부제철을 인수한 지 약 4년이 지난 2023년 1월, 김준기 창업회장은 산업은행에 동부제철 대출과 관련된 담보 제공 및 주식 근질권 설정계약 등을 해지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어 4월에는 산업은행을 상대로 대출 관련 설정한 주식 근질권을 말소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김 창업회장은 여러 근거를 들어 주식 근질권 말소를 요청했다. 먼저 주식 근질권 설정계약과 담보 제공 계약의 조건이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이었는데, M&A로 해제 조건이 달성돼 계약이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창업회장이 2014년 동부제철 대표와 대주주 자리에서 물러났고, 2019년에는 동부제철이 KG그룹에 매각되면서 경영에 관여할 수 없는 제삼자가 됐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을 때는 김 창업회장이 대표로서 연대보증을 섰지만, 2015년 7월 산업은행이 김 창업회장의 연대보증을 면제했으므로 주식 담보도 같이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더불어 김 창업회장은 산업은행과 대출 계약에서 설정한 주식 근질권이 당시 채무만 담보하는 한정근질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4년 12월 19일 산업은행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김 창업회장의 주장과 달리, 주식 근질권이 당시 대출만 담보하는 것이 아닌 여러 채무를 담보하는 포괄근질권이라고 판단했다. 계약서에 한정근질권이라는 내용이 없고, 김 창업회장이 포괄근질권을 염려해 계약 체결을 망설였던 점 등이 이유다.
소송을 제기한 시점에 산업은행에서 빌린 돈을 완전히 갚은 상태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근질권의 피담보채무를 모두 변제하지 않은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주식 질권 설정 계약의 해지를 주장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근질권 설정 해제 조건이 성립했다는 주장에 관해서는 김 창업회장 측이 제시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주식 담보 관련 계약서에 인천공장 매각을 계약의 해제 조건으로 기재하지 않았다는 점, 인천공장 매각만으로 채무를 모두 갚을 수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연대보증 면제에 관해서는 근질권 설정과 별개라고 봤다. 산업은행이 동부제철에서 물러난 김 창업회장의 연대보증채무는 면제해줬지만, 근질권 면제와는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창업회장은 즉각 항소했으나 2심에서도 패소했다. 2025년 10월 23일 서울고등법원은 “1심의 사실 인정과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다”며 일부를 제외하고 1심 판단을 대부분 수용했다. 오히려 2심은 산업은행의 입장을 더 인정했다. 이를테면 김 창업회장 측은 동부제철 매각 대금으로 채무를 변제하지 않은 것이 산업은행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는데, 2심 법원은 이에 관해 “산업은행이 다른 채권자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매각 대금을 대여금 상환에 우선 충당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명시했다.
결과에 불복한 김 창업회장은 상고에 나섰지만, 올해 4월 30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근질권 말소 소송은 산업은행의 최종 승소로 마무리됐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와의 갈등으로 김준기 창업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다시 불거지는 모양새다. 지난 2월 공정위는 DB그룹 동일인인 김 창업회장이 대기업집단 지정 심사에서 15개 법인을 고의로 누락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와 사익 추구에 활용했다며 김 창업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법원은 4월 30일 김 창업회장에게 벌금 1억 50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으나 김 창업회장 측은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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