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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위민원트] 다이아 박은 시계는 제발 참아줘요

2016.06.13(Mon) 15:43:05

남자가 슈트에 갖춰야 할 것은 드레스셔츠만이 아니다. 슈트와 셔츠에 잘 어울리는 ‘드레스워치’를 갖추었을 때, 여자는 남자의 스타일과 취향에 한층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지난해 JTBC 보도 담당 사장인 손석희의 시계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손목시계 하나도 검소한 손석희’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사진 때문이다. 캡처한 이미지 속 손석희는 2만 원대 카시오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이를 두고 네티즌은 “멀리서 보면 명품처럼 보인다”고 칭송했다.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손석희가 찼으니까 시계도 멋있어 보이는 거지! ‘손석희 is 뭔들’의 공식이 없었다면 과연 카시오 시계가 멋져 보였을까? 대한민국 대표 지성인이라는 후광이 없이는, 전자시계를 찬 61세 보통 남자가 멋져 보이기는 어려울 거라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30대 후반의 브랜드 컨설턴트 A는 한술 더 떠 “전자시계는 취직 전의 남자가 차는 거 아냐?”라고 말했을 정도다.

시계 분야의 마이바흐라는 파텍 필립,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랑한 시계로 유명한 브레게, 혹은 예물 시계로 인기가 높은 롤렉스나 까르띠에 등 고가의 시계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수천만 원에서 때로 수억 원을 호가하는 시계 브랜드에 목매는 남자야말로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시즌마다 시계를 바꾸며 자신의 부와 트렌디한 취향을 과시하는 남자는 무척 시시해 보인다. 다만, 61세의 남자라면(40세의 남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슈트에 어울리는 시계를 고르는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다. 슈트에 드레스셔츠를 갖춰 입듯이 드레스워치를 갖추는 것은 스타일이나 취향이 아니라 때로 교양처럼 느껴지니까.

통상적으로 포멀한 슈트에 차는 시계를 드레스워치라고 한다. 신사의 시계인 셈이다. 시계 컨설턴트인 이은경 씨는 저서 <시계 남자를 말하다>에서 이상적인 드레스워치의 조건을 네 가지로 소개한다.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드레스워치는 품격을 상징하므로 스틸이나 세라믹 소재보다 금 혹은 플래티넘 같은 귀금속 소재로 된 것이어야 한다. 둘째, 스트랩은 금속 브레이슬릿보다는 가죽 스트랩이어야 한다. 셋째, 디자인은 심플한 스타일이 좋다. 마지막으로, 기계식 무브먼트를 장착한 것이어야 한다.

이쯤 되면 혹자는 물을 것이다. ‘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추려면 역시 명품 시계여야 하나요?’라고. 물론 답은 NO다. 금이나 플래티넘이 아니면 어떤가. 가죽 스트랩이 아니면 어떤가. 누구라도 자신의 능력과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누릴 권리가 있다. 다만 그가 말한 기준이 슈트에 어울리는 시계를 고르는 데 좋은 힌트를 준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 시계 역시 밸런스를 고려해 옷차림에 맞는 게 더 중요하다. 출처=롤렉스

이 힌트에 도움 받아 ‘박훈희식 드레스워치’의 기준 네 가지를 만들었다.

첫째, 브라운 혹은 블랙 컬러의 가죽 스트랩이거나 금속 브레이슬릿이어야 한다. 적어도 패브릭 스트랩은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슈트에 다니엘 웰링턴의 컬러풀한 패브릭 스트랩 시계를 찬 남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가로저어진다고 할까. 마치 슈트에 슬리퍼를 신은 것처럼 보인다. 여자의 스타일로 비유하자면,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클러치 대신 에코백을 든 것과 뭐가 다른가. 스트랩의 경우, 두께가 얇은 가죽 스트랩보다는 적당히 묵직한 가죽 스트랩이 더 멋져 보인다. 금속 브레이슬릿도 좋다. 까르띠에의 탱크나 산토스, 롤렉스의 서브마리너, IWC의 인제니어 같은 시계는 슈트에 매치해도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니까.

둘째, 다이얼의 크기가 적당하고 블랙, 화이트, 골드 중 하나일 것. 남자 시계의 다이얼이 너무 커도 티나게 멋 부리는 것 같아서 싫고, 작으면 여성적으로 보인다. 또한 다이얼 바닥이 블루 컬러처럼 튀는 컬러로 장식된 것도 별로다.

셋째, 빈티지일수록 좋다. 오래된 물건의 가치를 아는 남자에게 호감도가 상승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 존 바바토스가 포토벨로 마켓에서 예거 르쿨트르의 메모복스를 발견하고 “꿈에 그리던 이 시계를 구했다”고 말할 때나 마크 론슨이 1950년대 발매된 롤렉스의 오이스터 퍼페추얼 데이-데이트를 삼촌에게 물려받고 “우리 집안의 가보예요. 삼촌이 자선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무지하게 도와주고 간신히 받아냈죠”라고 말할 때, 그가 선택한 시계는 장식이 아니라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꼽은 드레스워치의 마지막 조건은 보석이 박혀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여자들이 시계를 보석으로 장식하는 남자를 비호감이라고 느낀다.

첫 만남에서 시계를 통해 남자를 파악한다는 30대 초반 여성 B는 “옷은 TPO에 맞추어 입어야 하는데, 시계는 비교적 선택이 자유롭잖아요. 차나 옷에 비해 옵션도 가격대도 엄청 다양하고요. 그래서 전 시계를 통해 남자의 스타일을 가늠할 때가 많아요.”라면서 “그런데 다이아몬드가 박힌 롤렉스 시계를 찬 남자는 너무 싫어요. 가격과 상관없이, 그 남자의 옷차림에서 시계가 액세서리처럼 느껴지는 순간, 남자에게 매력을 못 느끼겠더라고요. 취향과 스타일이 멋진 남자는 호감이지만, 멋 부리는 남자는 비호감이잖아요.”라고 덧붙였다.

나름 스타일을 추구하는 30대 중반의 패션잡지 출신 C마저도 화려한 보석 시계에 고개를 저었다. “보석 시계, 특히 쇼메 같은 브랜드의 시계를 찬 남자가 너무 싫어요. 나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손목에 보석 시계를 찬 경우가 많은데, 부를 과시하려는 마음이 엿보일수록 지성미가 떨어져 보이더라고요.”

‘박훈희식 드레스워치’의 기준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 기준에는 내 주변의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남자에게 시계는 부, 취향, 지성, 그리고 심미안의 상징이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옷차림의 밸런스’가 아닐까.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는 옷차림을 하고, 옷차림에 맞는 드레스워치를 찬 남자야말로 여자들의 로망이다.

박훈희 칼럼니스트

 

‘좀 놀아본 언니’라는 필명의 섹스 칼럼니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직업은 콘텐츠 기획자이다. 매거진 <퍼스트룩> 편집장을 거쳐 현재 책뿐 아니라 영상, 오프라인 행사 등 모든 종류의 콘텐츠를 기획-제작한다. 저서로는 <어땠어, 좋았어?>가 있다.

‘왓위민원트(What women want)’에서는 여자가 원하는 남자의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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