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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방] 연봉과 열정 사이, <그라제니>

2016.06.23(Thu) 18:54:42

야구만화 하면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가 있다. 비범한 재능의 발견, 무한대의 노력, 역경의 극복 그리고 동료애와 협동심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 야구만화(넓게는 스포츠만화)가 이런 코드에 부합할 것이다. 야구만화 속 등장인물은 소속팀의 우승을 위해 혹은 현재보다 높은 수준의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독자는 그들이 흘리는 땀을 동경한다.

한마디로 뜨겁다. <거인의 별>의 호시 휴마는 아동학대에 가까운 아버지의 특훈을 견뎌내고 결국 마구(공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하는)를 던지는 투수가 되었고,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사와무라 에이준과 <4번 타자 왕종훈>의 왕종훈은 명문 소속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갑절의 노력을 한다. <크게 휘두르며>의 선수들은 각자의 재능보다 협동을 통해 팀을 만들고, 반대로 <터치>의 타츠야는 천재 투수로 불리며 거의 혼자 팀을 이끈다. 공통으로 그들의 열정은 뜨겁다 못해 타오른다.

   
<거인의 별>(왼쪽)과 <다이아몬드 에이스>는 주인공의 열정이 불타오르는 전형적인 야구 만화.

조금 새로운 야구만화가 있다. 제목은 <그라제니>, 그라운드에 돈이 묻혀 있다는 뜻이다. 이 만화는 열정과 ‘노오력’을 응원하는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의 연봉이 책정되는 과정과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협상하는 모습, 리그의 경제논리에 따라 팀을 옮기는 과정을 경기의 승리보다 뚜렷하게 다룬다. 그래서 만화의 배경은 고시엔(일본의 고교야구대회)이 아닌 프로리그다.

프로 8년차의 ‘본다 나츠노스케’는 경기 중간에 나와 한두 타자를 상대하고 들어가는 계투이다. 아무리 보아도 야구만화의 주인공으로 그려지기 어려운 역할이다. 하지만 본다에게는 재미있는 재능이 있다. 그는 소속리그 12팀 선수의 연봉을 모두 외운다. 취미로 <선수명감>을 들고 다니며 읽은 결과다. 이렇게 암기한 연봉이 무기나 약점이 되면서 만화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26세에 연봉 1800만 엔을 받는 본다는 무려 4할을 치고 있는 타자 나가사와 류를 상대하게 된다. 나가사와는 프로 2년차에 처음으로 1군에 진입했다. 연봉은 1000만으로 800만 차이. “1800이 1000에게 질 수 없지”를 외치며 자신 있게 삼구삼진을 기록한다. 이어서 나온 타자는 34세의 카도와키로 상대 팀의 간판선수였다. 연봉은 3000만 정도를 받지만, 전성기를 지나 기량이 많이 떨어진 상태. 현재는 팀의 3번째 포수로 버티며, 2할을 기록 중이다. 본다는 “그래도 3000의 선수다”라는 중압감에 결국 안타를 허용한다.

연봉의 차이가 능력의 차이가 된 것이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 옆에 서면 쪼그라드는 것처럼, 사업실패로 망연자실한 친척의 소식에 속으로 안도하는 것처럼. 본다는 그렇게 상대의 연봉에 따라 다른 마음가짐으로 공을 던진다. 나아가서 본다는 자신의 연봉을 기준으로 인생을 설계한다. 마치 우리가 학자금대출과 건강보험료를 걱정하듯이 자신의 처지에서 많은 경제적 고민을 한다. 야구만화의 주인공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유사 히어로가 아니라 독자와 같은 수준의 샐러리맨으로 설정한 것은 유효했다.

   
하지만 <그라제니>는 샐러리맨 같은 야구선수를 통해 야구를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로 그린다. 

지금까지 부와 명예는 열정과 노력 뒤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모습 자체에 응원을 보낼 수 있었다. 영광의 순간은 그 과정을 지켜본 이들에게는 당연한 보답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는 땀이 배신하는 경우를 이미 많이 보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자 야구만화가 판타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야구만화도 새로운 것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본다는 결국 변화한다. 작품의 끝에서 더 높은 연봉을 제안한 나고야의 팀 대신 결혼 상대가 있는 도쿄의 팀을 선택한다. 행복은 연봉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황순욱(피망과토마토 대표알바)

 

신촌에서 만화카페 ‘피망과토마토’를 꾸리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작은 만화방을 운영하는 게 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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