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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GMO논쟁의 팩트와 스토리

2016.07.07(Thu) 08:12:38

지난 6월 29일 세계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한 통의 공개서한을 받았다.

“많은 과학자와 농업종사자들은 급증한 식량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GMO(유전자변형작물)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린피스는 GMO를 ‘유전자 변형 오염’이라고 규정하면서 GMO 식품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GMO가 인간이나 동물에게 해롭다는 사실은 아직도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골든라이스’는 기존 쌀에 비타민 A 성분을 강화한 것입니다. 기아와 비타민 A 부족으로 고통받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골든라이스는 훌륭한 대안입니다.”

편지의 발신자는 완곡하지만 분명하게 요구했다. “그린피스는 골든라이스 개발 반대 운동을 포기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

그린피스가 어디 이런 요구에 콧방귀라도 뀔 단체인가. 평소 같으면 논평을 요구하는 언론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격렬한 비판을 가했을 테지만, 그린피스는 하루가 지난 다음에야 필리핀 마닐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를 통해 신중히 논평했다.

“누군가가 유전자 조작된 ‘골든라이스’를 막고 있다는 비난은 잘못된 것입니다. 골든라이스는 실패한 해결법으로로, 20년 이상 연구했지만 아직도 판매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쌀연구소(IRRI)가 인정하였듯이 실제로 비타민 A 결핍을 해결한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지요.”

   
▲ 일반 흰쌀과 골든라이스를 비교하는 모습. 출처=국제쌀연구소(IRRI)

GMO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이렇게 점잖게 이야기를 주고받다니….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편지를 보낸 사람들의 권위가 작용했을 것이다. 편지를 보낸 이는 무려 110명의 노벨상 수상자들과 2800여 명의 과학자들이다. 1901년부터 2015년까지 874명의 사람과 26개의 단체가 노벨상을 수상했다. 874명의 수상자 가운데 생존자는 단 296명. 그런데 이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110명이 편지에 서명한 것이다.

이 서한을 주도한 사람은 ‘인트론(intron)’으로 알려진 유전자 서열을 발견한 공로로 199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리처드 로버츠. 그가 굳이 어렵게 10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수소문하여 서명을 받아낸 데는 노벨상의 ‘권위’에 의지해 보려는 비과학적인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리처드 로버츠의 의도는 적어도 그린피스에게는 통했다.

“네, 알았어요. 선생님 말씀 잘 듣겠습니다. 앞으로는 GMO 반대 운동하지 않을게요.”라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언론을 통한 토론은 가능하게 했다. 나만 해도 현재 전 세계에서 2억 5000만 명이 비타민 A 결핍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골든라이스’가 아직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이 아니며, 인도주의적 GMO의 상징으로 제시되는 골든라이스가 아직 개발되지 못한 이유가 환경단체의 반대 운동 탓이 아니라 여전히 그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한 난관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과학자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린피스의 응답이 얼마나 신중했는지 우리나라 언론에는 “그린피스는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라고만 나왔다. (우리나라 언론이 주로 인용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후에 인터넷 판에 그린피스의 반론을 추가로 실었다.)

이것은 과학자와 그린피스 사이의 이야기이고 실제 대중의 토론과는 거리가 멀다. 기사에 달린 댓글의 주종은 이렇다.

“110명 가운데 생리의학상, 화학상, 물리학상 수상자는 거의 없을 듯.”

“노벨상 반납하라고 전해주세요.”

“종교계부터 반대운동을 해야 합니다.”

“다국적 기업의 이윤창출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 된 과학자.”

“GMO 반대는 반인도주의적 범죄다.”

먼저 팩트부터 확인하자. 서명한 110명의 노벨상 수상자 명단은 여기(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리의학상 41명, 화학상 34명, 물리학상 25명, 경제학상 8명, 평화상 1명, 문학상 1명이다. 과학자가 정확히 100명이다.

노벨상을 반납하라거나 종교계가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마도 GMO가 과학윤리에 옳지 않으며 창조질서와 어긋난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GMO에 반대하는 환경주의자들을 반인도주의 범죄자로 모는 것은 정말 염치없다. 그들은 대체로 인도주의적 감성이 오히려 지나친 분들인 경우가 많다.

익명의 댓글이야 그렇다고 치자.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생물학 박사님 한 분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쓰셨다. “얼마 전의 선언으로, 과학기술이 만든 문제를 과학으로 해결할 거라 믿는 과학자들이 얼마나 단순한지 스스로 증명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연구비에 목을 매면 맬수록 그런 주장 또는 유혹에 이끌리겠지요. 저는 그런 과학자들을 ‘청부과학자’라고 풀이합니다. 권력과 돈에 영합하는 청부과학은 생태계의 안정을 위협하지요. 후손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듭니다.”

이쯤 되면 노벨상 수상자들의 권위를 빌어 호소하려던 전략은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노벨상 수상자들을 권력과 돈에 영합하는 청부과학자로 일반화하고 나면 더 이상 어떻게 토론이 진행되겠는가. 설사 상대방이 청부과학자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화가 안 된다.

대화의 기본은 팩트와 스토리를 구분하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내가 머릿속에서 지어낸 스토리인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스토리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먼저 팩트를 이야기하고 확인해야 대화가 된다. 골든라이스를 개발하고 있는 몬산토가,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사람을 ‘매수’하여 GMO가 안전하다는 주장을 펴게 한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이야기인가 말이다. 팩트에 기초하지 않은 스토리는 대개의 경우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유해하다.

과학은 의심하고 질문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것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과학계의 소문난 입담꾼.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를 자처한다.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후 현재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공생 멸종 진화>,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과학하고 앉아 있네> 등 70여 권의 책을 쓰고, 감수하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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