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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51마리의 돌고래

2016.07.20(Wed) 18:17:55

<고래가 그랬어>는 아마도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어린이 교양잡지일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마음껏 제 꿈을 펼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의’로 하다 보니 여러 가지 논란도 불러일으킨다. 평소 성향과 달리 내가 애써 이 잡지를 피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잡지 이름에 들어 있는 ‘고래’ 때문이다.

고래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첫 만남이 그렇다. 전라남도 여수에 살던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한여름에 아버지가 대낮에 집에 오셔서 나를 데리고 부둣가로 가셨다. 고래가 잡혀 올라왔다는 것이다. 나도 만화책에서 봤던 그 어마어마하다는 고래를 보고 싶어서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와우! 정말 산채만 한 시커먼 고래가 멀리서부터 보이는데 그 아래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고 고래 위에도 창칼을 든 사람이 여럿 올라가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아버지는 나를 고래 바로 앞까지 데리고 가셨다. 맙소사! 바닥에는 시뻘건 고래 피가 흥건했다. 비닐 샌들을 신은 나는 고래 피 속에 발을 디뎌야 했다. 고래는 곳곳이 도륙되어 흰 살과 붉은 살을 드러냈다. 피비린내에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참이나 더 고래 구경을 하셨고 나는 내내 고래 피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했다. 이제 쉰 살이 넘었지만 아직 그때만큼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고래 지옥이었다.

   
영화 <프리 윌리> 포스터.

고래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 것은 30대 중반이 돼서 영화 <프리 윌리>를 본 다음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큰딸이 좋아하는 영화였다. 수족관에 팔려온 범고래 윌리를 소년이 풀어준다는 이야기다. 등지느러미가 휘어지고 옆구리에 흰 무늬가 있는 통통한 윌리가 제방을 뛰어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환호했다.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아마도 고래 자체보다는 ‘자유’라는 주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프리 윌리>는 1993년도 작품이다. 1995년과 1997년에 속편이 나왔다. 당연히 범고래 윌리는 자유로운 상태는 아니고 수족관에 잡혀서 쇼를 하던 고래였다. 그리고 본명(?)은 케이코. 사람들은 케이코에게 진짜 자유를 주기 원했다. 1998년 스물두 살의 케이코를 노르웨이 해안에서 방류했다. 인간에게 포획되어 오랫동안 인간의 포로로 살던 범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낸 최초의 시도였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자유를 찾던 윌리를 연기한 케이코는 정작 자유를 얻은 다음에도 자유를 만끽하지 않았다.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만 가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2003년 12월 12일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포로 고래에게 자유를 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7월 18일은 제돌이와 춘삼이를 바다로 돌려보낸 지 3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야기는 범죄로 시작한다. 2009년 5월 제주 성산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다섯 마리가 불법 포획되어 제주 퍼시픽랜드에 억류되었다. 퍼시픽랜드는 이 다섯 마리에게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가혹한 훈련을 시켰다. 복순이와 태산이는 끝내 길들여지는 걸 거부해서 더 작은 수조에 갇혔다. 감옥에서 규칙을 어겼다고 독방에 가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는 돌고래 쇼에 투입되었다. 그러다가 제돌이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져서 쇼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대공원을 방문한 과학자들이 제돌이를 알아봤다. 제돌이의 지느러미를 기억한 것이다. 지문으로 사람을 판별하듯이 과학자들은 지느러미를 보고 고래를 판별한다. 야생에서 살다보면 지느러미가 찢기고 상처가 나면서 모양이 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고래의 지느러미를 촬영해서 어떻게 변하는지 기록하고 기억한다. 제돌이는 JBD009였다.

돌고래를 작은 수조에 가두는 것을 반대하는 동물자유연대, 핫핑크돌핀스 같은 시민단체들이 제돌이 문제를 제기하였고, 박원순 시장은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과 함께 살던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감염 때문이다. 고래 한 마리를 살리려다 고래 100마리를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쇼에 참가한 지 2년이 지난 고래는 방류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과학자들은 반대했다. 물론 일리 있는 반대였다.

그런데도 박원순 시장은 제돌이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정치적인 쇼였을까? 그것은 분명히 아닌 것 같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최재천 교수를 책임자로 모시고 1년 2개월이라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적응훈련을 받던 삼팔이가 찢어진 그물 사이로 먼저 빠져나갔고, 제돌이와 춘삼이는 2013년 7월 18일 제주 김녕 앞바다에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작은 수조에 갇혀서 건강상태가 나빴던 태산이와 복순이도 2015년 7월 6일 제주 함덕 앞바다에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다섯 마리 모두 야생 돌고래 무리와 잘 어울려 살고 있다. 그리고 삼팔이는 새끼를 낳아 데리고 다닌다. 쇼를 하던 돌고래가 야생으로 돌아가 새끼를 낳은 세계 최초의 기록이다.

   
2015년 7월 제주 앞바다로 돌아가 유영하고 있는 제돌이. 출처=해양수산부
   
2015년 7월 제주에서 야생 돌고래들과 함께 유영하는 춘삼이. 지느러미에 숫자 2가 찍혀 있다. 출처=해양수산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돌고래를 풀어줬지만 모든 단계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따라다니면서 모니터링 한 예는 없다. 돌고래 방류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지금도 제돌이와 춘삼이는 각각 1과 2라는 숫자가 적힌 등지느러미를 자랑하며 제주 해안을 헤엄치고 있고, 장수진 연구원(이화여대에코과학부 박사과정)은 이들을 비롯한 제주의 돌고래를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쇼를 하고 있는 돌고래가 51마리나 된다. 고래에게 자유를 주자. 그리고 아이들과 마주앉아서 “고래가 그랬어.”라고 맘 편하게 이야기하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과학계의 소문난 입담꾼.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를 자처한다.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후 현재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공생 멸종 진화>,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과학하고 앉아 있네> 등 70여 권의 책을 쓰고, 감수하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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