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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 않을 권리도 있다

‘소비를 그만두다’를 다시 읽다

2017.01.18(Wed) 10:32:15

48만 2120원. 일주일간 지출내역은 다음과 같다. 지인들과 세 번의 외식, 기초 화장품, 립스틱, 필라테스 수업을 듣기 위한 트레이닝복, 매달 나가는 통신비, 라이프스타일 잡지, 카페에서 자몽 차와 보리 커피, 피자 세 판, 아버지 생신 선물, 10일분 다이어트 식단, 스마트 폰 터치 장갑. 일주일 중 돈을 쓰지 않은 날은 이틀 뿐. 

 


주 5일을 일하고 주 5일 돈을 썼다. 말하자면 주 5일 소비제다. 지출항목을 훑으며 허튼 지출은 없었다고 위로해본다. 하지만 불편한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진짜 필요했나. 마음의 소리가 묻고 답한다. 실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 같아보였던 것이다. 다시 계산하니 그 ‘필요한 것 같아 보이는’ 항목이 20만 6250원​이었다. 20만 6250원​이라고? 내가 왜 그랬나. 비로소 후회가 밀려들었다.

 

후회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떠올렸다. 한때 열심히 읽고 감탄한 책이다. 일본 지역사회의 소상인상권 회복을 주장하는 행동파 지식인 히라카와 가쓰미가 쓴 ‘소비를 그만두다’. 1950년대 일본에서 태어난 저자는 이 책에서 자국의 자본주의 행태를 비판한다. 1980년대 한국에서 태어난 나와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책을 읽으며 이건 내 얘기다, 하며 120% 공감했다. 

 

의식 없이 진열품 앞을 서성이다 점원의 말 몇 마디에 카운터로 가서 카드를 내밀고 ‘돈을 쓰는 행위’로 존재를 증명한다. 이러한 소비행위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한다. 하지만 짐작은 힘이 없다. 튼튼한 근거 없이 짐작만으로 이루어진 일들은 허망하게 무너진다. 20만 6250원​. 계산기에 찍힌 숫자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짐작에 근거를 더하기 위하여 ‘소비를 그만두다’를 다시 펼쳤다.

 

과거에 남과 다르고 싶다는 욕망은 물건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채워졌다. 예를 들어 남과 다른 지식이나 재능을 가지는 것으로 욕망이 채워졌다. 말하자면 돈 이외의 차별화 지표가 존재했던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돈만이 남과의 차이를 낳는 도구가 되었다.(179쪽, 소비를 그만두다, 히라카와 가쓰미, 더숲)

 

저자에 따르면 개인의 소비욕망이야말로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근간을 이룬다. 기업 마케팅이란 이러한 소비욕망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기업이 광고에 톱스타를 기용하고 마케팅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까닭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전지현’을 치면 ‘전지현 패딩’이 연관검색어로 따라온다. 검색하면 금방 알겠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기업의 마케팅은 한 발 더 나아간다. 많은 돈을 지불하여 남들과 다른 자신을 증명하라. 전지현 패딩을 입는다고 전지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전지현 패딩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돈만이 남과 나를 차별하는 지표로 작용하게 된다. 더 많은 돈을 쓰기 위해 더 많은 돈벌이를 해야 하는 개인의 탄생, 그렇게 소비자로서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하는 현실에 갇히게 된다. 

 

돈을 쓰기만 하는 방식의 삶을 선택하면 우리는 이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이쯤에서 히로카와 가쓰미는 탈소비를 주장한다.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바잉 파워를 갖게 되는 위치에 서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소비행위에 앞서 소비자는 ‘사지 않을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후에 등장하는 저자의 해결책은 다소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대기업에 맞서 동네상권 중심의 소비를 하자는 해결은 단순하고 이상적이었다. 거리는 온통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게들뿐이며, 그가 말하는 소박한 동네상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다만 문제의 근원이 개인의 마인드가 소비 중심으로 흐르는 데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나는 개인의 문제로 돌아왔다. 어째서 돈 앞에서 이렇게 무력한가? 돈을 쓰지 않고도 충분할 수 있었는가? 적어도 20만 6250원은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소비함으로 존재하기보다 절제함으로 존재할 수도 있었다. 나에게는 무언가를 사고 싶은 반짝이는 욕망만큼 필요치 않은 것은 단호히 사지 않을 권리도 있었다. 

 

‘살 것인가, 사지 않을 것인가’. 이 말은 마치 ‘살 것인가, 살지 않을 것인가’처럼 들린다. 늘 선택의 문제다. 앞으로는 잊지 말자. 선택지는 한 가지가 아니다. 차분히 생각하면 더 현명한 선택, 더 좋은 삶이 있기 마련이다.​ 

 

필자 김나현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5년 제2회 에스콰이어몽블랑문학상 에세이 우수상을 받았다. 문장을 통해 소소한 일상을 반추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을 즐긴다.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형태로, 오래도록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더 느리고 더 깊고 더 정확하고 더 아름답게’가 올해의 모토. 

김나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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