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해외에선 한국을 ‘가상화폐 그라운드 제로(핵폭탄이 떨어진 지점)’라고 부른다.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한국만큼 투자 열기가 뜨거운 곳이 없다는 의미다. 추정되는 국내 투자자만 약 200만 명, 거래량은 이미 코스닥 시장을 넘어섰다. 가상화폐 전망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투자 광풍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가상화폐 거래 시장 속 투자자들을 만났다.
가상화폐 알트코인(Alternative Coin: 비트코인을 제외한 대안 화폐 통칭)에 투자하는 자영업자 조 아무개 씨(38)는 스마트폰을 세 개 사용한다. 하나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대표 폰, 나머지 두 개는 가상화폐 거래 전용 폰이다. 조 씨가 가상화폐 거래만을 위해 직접 ‘세팅’했다.
실제 조 씨는 거래전용 폰으로는 개방형 와이파이에 접속하거나 이메일을 열지 않는다. 애플리케이션도 가상화폐 거래소나 시세 확인, 입·출금을 위한 금융결제 앱 등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았다. 여러 거래소에 투자 중인 그는 시장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고 보안도 확실히 하기 위해 사용한다고 했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 중에도 조 씨의 손과 눈은 스마트폰을 향해 있었다. 그 사이 100만 원에서 많게는 500만 원상당의 돈이 그의 계좌를 오갔다.
이 아무개 씨(45)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상화폐 거래를 전업으로 삼았다. 오래 전부터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발도 딛기 힘든 부동산 시장 상황을 보면서 그 대안으로 가상화폐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집에 머물며 두 개의 컴퓨터와 세 개의 모니터를 통해 가상화폐 시장 상황은 물론, 관련 뉴스를 분석하고 가상화폐 개발팀의 비전과 SNS까지 확인하며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조 씨와 이 씨는 ‘비즈한국’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들의 투자 방식을 두고 “그리 특별할 것 없다”고 무심히 말했다. 주식 시장과 달리 거래가 24시간 이뤄지는 가상화폐 시장 특성상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가상화폐 시장을 두고 ‘가상화폐 시장의 하루는 주식시장에서의 한 달’이라는 말도 나온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다른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모습도 비슷했다. 가상화폐 투자를 전업으로 삼거나 스마트폰을 세 개 씩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에 쏟고 있었다. 올해 8월부터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했다는 직장인 A 씨는 “업무 중에도 틈틈이 거래소 앱을 통해 시장 상황을 확인한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다른 일보다 거래에 집중하고 있다. 밤을 새는 날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왜 가상화폐에 투자하나
투자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가상화폐 투자자는 크게 단기, 중기, 장기 투자자로 나뉜다. 투자한 가상화폐를 보유하는 기간에 따라 구분된다. 주식 투자자들과 비슷하다. 장기 투자자들은 투자한 가상화폐의 미래를 예측하고 관련 뉴스와 기타 정보를 수집한다. 단기·중기 투자자들은 이보다는 단기적 ‘호재’ 정보에 따라 투자에 나선다.
투자자들은 가상화폐가 최근 제도권 금융의 새로운 대안으로도 떠오른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 졌다는 점, 단순한 ‘사이버 머니’가 아닌 ‘혁신기술’이라는 점 등을 보고 가상화폐에 투자한다고 설명한다. 실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종이 화폐를 대체하는 일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 충분한 투자 가치도 높게 보고 있다.
증권사와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 대형 가상화폐 커뮤니티 운영자들은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특히 단기 투자에 몰려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단기 투자자들은 짧게는 하루, 길면 일주일 단위의 정보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치고 빠지는 방식’의 일명 ‘단타’를 주로 한다. 목적은 수익이다. 급격하게 가치가 오르내리는 가상화폐 시장이 단기 투자로 높은 수익을 올리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4개월 만에 100만 원으로 1억 원을 만들었다는 ‘영웅담’에 혹해 ‘묻지마 투자’를 하는 투자자도 상당하다”며 “왜 이 코인에 투자하느냐고 물어보면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상화폐 거래 시장이 ‘투기판’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투자가 폭넓게 알려지면서 가상화폐로만 가능한 새로운 투자방식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가상화폐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취지로 요식업 등 업체들이 가상화폐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물품 등의 대금을 현금이나 신용카드 대신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방식인데, 이 시스템을 이용해 비트코인 보유 개수를 늘리는 것이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가상화폐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목적을 이용 건수와 관계 없이 ‘가상화폐 투자’라고 밝힌 업주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상화폐 가격 변동성이 크거나 거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 등 불편한 점뿐만 아니라 자칫 범법 행위 등 부작용까지 우려된다는 점이다. 통상 가상화폐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업체는 거래소와 협력해 가맹점 형태로 서비스 중이다. 그러나 현재 가상화폐 투자 자체에 대한 세금도 부과되지 않고 있으며, 기존 결제시스템인 POS 단말기를 거치지 않아 거래 내역도 확인할 수 없다. 대금을 개인 간 거래로만 할 경우 탈세에도 악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해외 간 가상화폐 시세차익을 이용한 방식도 있다.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 시세와 한국 거래소 시세를 비교해보면, 한국 가상화폐 가격이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25% 높다. 투자자들인 이 차이를 일명 ‘코리안 프리미엄’ 또는 ‘김프(김치+프리미엄)’으로 부르고 있다. 이 프리미엄을 이용해 해외에서 낮은 가격에 코인을 산 뒤, 한국 전자지갑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 방식은 ‘가상화폐 환치기’로 분류돼 현재 적발대상으로 올라 있지만 “정부가 소액 거래까지 들여다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 인터넷과 SNS상에 퍼지면서 일부 투자자들이 이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 정부 규제 방침에도 투자 열풍 이어질 듯
정부는 지난 12월 13일 ‘가상통화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가상통화의 투기 과열과 이를 이용한 범죄행위를 막기 위한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일각에서 예상했던 ‘가상화폐 국내 거래 전면 금지’라는 초고강도 규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상화폐 투자수익에 대해 과세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동안 정부는 가상화폐를 화폐·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시세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 개별 거래에 거래세를 부과하게 되면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르면 오는 2018년 초 검토 결과가 나올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정부 방침에 대해 “시장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과세 대상에 올린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며 “정부 입장 발표가 애매한 만큼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높이는 것 같다. 당분간 투자 열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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