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아젠다

[사이언스] 별똥별 된 토성탐사선 "안녕, 카시니"

임무 다하고 우주에서 잠든 스피릿, 옥토끼, 필레를 함께 기억하며

2017.09.30(Sat) 10:49:01

[비즈한국] 7년을 함께했던 차를 폐차할 때의 일이다. 16살의 그 녀석을 보내면서 두 번째 주인인 나는 괜히 마음이 쓰였다. 금속이 대부분인 기계일 뿐이지만, 즐거웠던 순간이나 힘겹던 시간들을 함께했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덕을 오를 때 버거워하면 나는 운전석에서 차에게 힘내라고 응원의 말을 건넸다. 그랬던 차를 마지막으로 어루만지고 폐차장으로 보내던 그날 이후, 며칠을 우울해했던 기억이다.

 

자신이 애착을 갖고 사용하던 물건과 같은 무생물체에게 인격체로 대하는 듯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많은 사람이 겪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물건이 아니라도, 직접 보지는 못했던 대상에게도 그런 마음을 갖게 되고는 한다. 화성탐사 로버 ‘스피릿’을 주인공으로 한 다음의 만화를 보자(영문판 링크).

 

출처: http://egloos.zum.com/fryman/v/1999925


2004년 화성에 도착한 스피릿은 예상수명 90일(화성의 하루는 지구의 하루보다 40분쯤 길다)로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2010년까지 5년 넘는 시간을 고군분투하며 임무를 완수했다. 숱한 기기의 에러, 재부팅, 통신두절, 바퀴 고장 등을 이겨낸 스피릿은 마지막으로 바퀴가 모래에 빠진 뒤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멈춘 채로도 작동하던 스피릿은 태양전지판에 모래가 덮이는 바람에 결국은 시스템이 다운되고 통신이 두절되고 말았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던 나사의 스태프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이 함께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앞서 소개한 만화를 본 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하고 눈물 흘린 이면에는 자신의 소유물도 아니고 직접 보지도 못했더라도 이런 힘든 과정을 겪은 스피릿에게 공감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중국의 무인 달탐사 차량 ‘옥토끼(玉兎)’가 고장에서 깨어났다가 다시 완전히 멈추었을 때에도 사람들은 환호성과 눈물로 그 과정을 함께했다. 10년을 넘게 날아가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에 가까이 도착한 유럽우주국의 혜성탐사선 로제타(Rosetta)호로부터 출발한 착륙선 필레(Philae)가 2014년에 간신히 착륙했을 때에도, 착륙장소가 하필 그늘이어서 태양광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아 잠들었을 때에도, 그 다음해가 되어서야 간신히 태양광발전이 이루어져 신호를 다시 보내왔을 때에도, 그리고 결국은 영원히 잠들고 말았을 때에도 사람들의 심정은 다른 탐사선의 성공과 실패를 바라볼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시니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스태프들. 사진=NASA

 

지난 9월 15일, 유럽과 미국의 공동프로젝트였던 토성 탐사선 카시니(Cassini)호가 토성의 품에 안기며 산화했다. 1997년 발사된 카시니호는 2004년에 토성 궤도에 진입했다. 2005년에는 카시니호에서 분리된 하위헌스(Huygens)호가 토성의 위성(달) 중에서 가장 큰 타이탄에 착륙했고, 카시니호는 계속해서 토성과 그 위성들을 가까이서 탐사하며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왔다. 

 

스피릿이 예상수명을 넘어 훌륭히 임무를 수행했던 것처럼 카시니호도 2008년 임무를 종료할 예정이었지만 훨씬 더 오래 버텨주었다. 그동안 카시니호가 보내온 자료의 양만 635GB(기가바이트)이고 이를 토대로 나온 논문만 4000여 건에 달한다. 하위헌스호를 통해 타이탄에 액체 메탄, 에탄이 있음을 확인하며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알려주었고, 위성 엔셀라두스에서 물기둥의 분출을 확인했으며, 토성의 뒷편에 가려졌던 다른 위성들을 새로이 발견했다. 

 

13년가량을 토성의 주위를 돌며 많은 정보를 알려주며 이전의 과학책에 있던 많은 내용을 새로이 쓰게 만든 카시니호의 연료가 바닥나자 NASA는 토성 대기권으로 진입시켜 별똥별처럼 연소시키는 그랜드 피날레(Grand Finale) 계획을 실행시켰다. 제어가 되지 않는 상태로 토성 주위를 떠돌다가 토성의 위성에 충돌하여 혹시 지구에서 묻어간 미생물이나 핵연료로 인한 오염으로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생명체의 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카시니호의 그랜드 피날레. 눈물어린 댓글들이 많이 보인다.

 

그 마지막을 지켜보던 나사의 과학자/공학자들과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은 스피릿, 옥토끼, 필레 등을 바라볼 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짓고 말았다. 사람이라면, 돌멩이 하나에게도 애정과 사연을 느낀다면, 그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장애아동을 위한 학교가 동네에 들어서는 것이 못마땅하고, 아파트 경비초소에 에어컨이 설치되는 것이 화가 나고, 대학교 기숙사가 신축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테지만.

정인철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금감원이 '적폐' 자초했지만…감사원 감사 뒷말 나오는 까닭
· [김대영의 밀덕] 국내외 방산업체들의 '반전 있는' 문재인 정부 100일
· [응급실에서] '너무 사소해' 공권력이 외면한 응급실의 새벽은 위태롭다
· [사이언스] 종교의 자유와 과학
· [사이언스] 과속 단속카메라의 과학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