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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직급갈등② '꼰대' 직장상사가 실력을 인정받는 방법

오랜 경험과 전문성 바탕으로 자기 확신 가져야…공동의 목표 아래 공감대 형성이 중요

2024.03.22(Fri) 10:36:06

[비즈한국] 한국의 무속신앙과 풍수지리, 장례문화를 소재로 한 오컬트 영화 ‘파묘’​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아무리 좋다는 영화도 천만관객이 넘어가면 왜인지 보기 싫어지는 삐뚤어진 심사를 가진 터라 하루라도 빨리 보고 팀원들이 나누는 스몰토크에 한마디 말이라도 얹어 볼 요량이기도 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흥미로울 만한 스토리텔링도, 영화 곳곳에 숨겨 둔 이스터 에그를 찾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무엇보다 등장인물 4인방이 ‘다 했다’ 싶을 정도로 각자의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성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당 화림(김고은), 법사 봉길(이도현). 영화의 주요 인물 4명은 ‘묘벤져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꼬장꼬장하지만 이제는 한물간 ‘꼰대 세대’와 발랑 까진 개인주의자들이라고 멸칭되는 ‘젊은 세대’가 우당탕 부딪히기도 하면서 종국엔 힘을 합쳐 이 땅의 흙을 밟고 살아갈 ‘다음 세대(이를테면 상덕의 딸의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 험한 것을 물리치고 끝내 해피엔딩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흡사 마블의 오락 영화를 보는 듯한 통쾌함을 준다.

 

영화 ‘파묘’​의 한 장면. 사진=쇼박스 제공

 

그들이 묘벤져스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점, 각자 자신의 직업에 대한 직업정신과 윤리의식이 확고하다는 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서로 협동할 수밖에 없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혼령이나 음양오행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과거 경력이나 역량같이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들을 우리는 쉽게 신뢰하지 못한다. 어디에서 무슨 공부를 했고, 무슨 자격증을 갖고 있고, 어떤 엄청난 프로젝트를 수행했는지 등등 텍스트로 표현되는 것들이 그 사람의 진짜 실력이나 전문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직접 그 대상과 관계를 맺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오로지 ‘내 관점과 내 기준’으로 관찰하고 경험한 파편들을 끌어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만들어 내고 완성한 ‘그 사람의 모습’이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와 ‘나 다운게 뭔데’ 같은 클리셰 투성이의 대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두고 타인을 이해하고 사고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분야의 ‘믿을만한 전문가’라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나 또한 내 영역에 대해서,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 확고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희대의 사기꾼들에게 속아 5억 원을 주고 묫자리를 파내고 뒤통수를 맞는 허무맹랑한 사기극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가 강력한 서사와 함께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을 갖게 되는 부분이다. ‘나는 무당이다’, ‘나는 지관이다’라며 자신의 직업에 대해 해설하는 화림과 상덕의 내레이션에는 그런 자기 확신과 직업에 대한 자부심, 더 나아가 직업정신(혹은 직업윤리)이 담겨있다.

 

내가 맡은 일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 그런 사람이 중간관리자일 경우 - 상급자나 임원 혹은 주변의 말에 쉽게 휘둘릴 수 밖에 없으며, 팀원들에게는 갈팡질팡하는 디렉션을 주게 마련이고, 내가 내린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내가 직접 관여한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는 팀원들(사원-주임-대리급)은 관리자를 신뢰하지 않으며 블라인드나 메신저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회사의 꼰대들이 문제라며 씹어댄다.

 

하지만 가끔은 어떤 자리에 직접 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다. 일을 하면 할수록, 깨지고 실패하고 좌절할수록, 멋모르고 경주마처럼 나아가던 젊은 날과 달리 주변 환경과 여러 역학 관계를 살피며 더디게 가는 편이 낫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책임을 지는 것이 버겁고 어렵다는 것도, 일을 벌리고 멀쩡한 땅을 파헤치기 보단 있던 대로 묻어두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럴 때 우리를 다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두둑한 퇴직금이나 집안 경조사를 위한 목돈이 아니라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은 연민’, ‘어린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선한 마음’, ‘이 땅의 빼앗긴 정기를 되찾고 싶은 사명감’ 같은 것이다. 결국 사회 통념적으로 누구에게나 보편 타당하게 적용되는 공동의 목표가 여러 갈등 상황 속에서도 쪼그라들고 위축된 우리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이런 영화적 상상은 현실 세계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소설가 조지 엘리엇도 그랬다. 예술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깝다고. 그래서 예술은 우리가 각자 딛고 선 땅을 넘어 경험을 넓혀 주고, 다른 인간들과의 접촉을 확대함으로써 ‘공감 능력’을 심어 준다고 말이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인 존재라서 모든 것을 ‘나의 기준’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을지라도, 공감 능력이 제로(zero)인 채로 나이들어 가지 않으려면, 직장에서 팀원들이 기피하는 관리자가 되지 않으려면 되도록 다양하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읽으면서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떨지’를 계속해서 상상해 보는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잊지 말자.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으로 땅을 파고, 그 간의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이 때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TMI는 어쩔 수 없는 꼰대의 본능일지도) 공동의 적인 ‘오니(도깨비)’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상황을 종료시키는 것은 가장 나이 많고 배가 나온 인물, ‘상덕’이라는 점을 말이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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