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 세계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은 두 미국 회사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영체제를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드는 인텔이다. 물론 애플처럼 자체 운영체제를 가진 회사도 있고, AMD 같은 다른 선택지도 있다. 그럼에도 산업 전체를 이끌어가는 두 회사의 리더십은 경쟁사와의 비교를 불허한다.
사실 MS와 인텔은 라이벌이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최고의 파트너이자 동반자적 관계다. 오픈 아키텍처 기반의 PC 산업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표준을 두 회사가 상의해서 결정해왔다.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으로 PC산업의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내놓은 해법도 비슷하다. 바로 ‘클라우드(Cloud)’다.
고순동 한국MS 대표와 권명숙 인텔코리아 대표도 라이벌은 아니다. 오히려 평행이론처럼 비슷한 구석이 더 많다. 일단 연세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둘 다 외국계 IT기업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고 대표는 IBM에서, 권 대표는 인텔코리아에 근무했다. 이후 이직한 회사가 각각 삼성SDS와 삼성SDI로 삼성 계열사다. 고 대표는 삼성SDS 대표이사까지 올랐다가 한국MS 최고경영자(CEO)로 경영인생 2막을 열고 있다. 권 대표는 친정인 인텔코리아로 돌아와 대표를 맡았다.
# ‘경영인생 2막’ 고순동 한국MS 대표
MS를 대표하는 상품은 무엇일까. 대부분은 ‘윈도우’ 혹은 ‘오피스’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 MS는 ‘애저(Azure)’에 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저는 MS가 시작한 클라우드 기반 컴퓨팅 플랫폼이다.
클라우드 이전에 기업은 직접 서버를 구입해서 데이터센터에 두는 형태로 고객에게 웹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사내 인프라를 구축했다. 복잡한 연산이나 높은 컴퓨팅 파워가 필요한 작업에는 그만큼 비싼 고성능 컴퓨터를 구입해야 했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이 발생하는 것. 하지만 클라우드 서비스는 초기 투자비용 없이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그에 따른 사용료를 지불하면 된다. 이러한 클라우드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업은 아마존웹서비스(AWS)이며, 2등이 MS 애저다.
사실 1등과 2등의 격차는 상당하다. 하지만 MS 애저는 그냥 2등이 아니라 ‘확고한 2등’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3등 사업자의 위협을 걱정할 필요 없이 1등과 경쟁해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2등이다.
MS는 전 세계 약 50개 지역에 애저 조직을 운용하고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6년 2월 취임한 고 대표는 불과 1년 만인 지난 2017년 2월 국내 데이터센터 개소를 주도함과 동시에 고객 유치에 힘을 쏟았다. 지난 3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 대표는 국내 데이터센터 개소 1년 만에 매출이 320% 성장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고 대표가 국내 제일의 시스템 통합(SI) 기업인 삼성SDS 대표이사를 지냈다는 점 역시 한국MS가 애저 사업에서 실적을 내는 데 최고의 프리미엄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SDS에서 13년이나 근무하며 대표이사까지 지낸 고 대표가 자유분방한 근무 환경과 수평적 분위기의 외국계 기업 CEO를 맡는다고 했을 때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공식석상에서도 스스로를 순혈 ‘삼성맨’이라기보다는, IBM 출신의 정체성도 함께 가진 사람으로 소개하는 편이다.
고 대표는 평소 각종 외부 강연도 마다하지 않고 대중 및 고객사와 활발한 소통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한 실적 목표 달성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따른 큰 그림에 더 관심이 많다. 인공지능, 5G, 사물인터넷 등 급변하는 기술 동향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물론 외국계 기업 특성상 미국 본사에서 결정한 큰 틀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지만, 고 대표는 끊임없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구체화하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 ‘돌아온 카리스마’ 권명숙 인텔코리아 대표
인텔은 부동의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이다. 매출액으로만 보면 지난해 D램과 낸드플래시의 유례없는 호황으로 삼성전자에게 2위로 밀려났지만, 그럼에도 인텔이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라는 데 이견은 별로 없다.
당초 태블릿에 밀려 완전히 사양길로 접어들 것이라던 PC 역시 기대 이상으로 건재하다. 특히 게이밍 시장을 중심으로 수요가 꾸준하다. 분명 성장세는 꺾였지만 여전히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인텔 입장에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대세로 굳어지면서 인텔에게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수요처가 형성됐다. 바로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반도체는 PC보다 더욱 높은 연산 성능이 요구되며, 보안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더욱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인텔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분야다.
단순히 하드웨어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통합 시스템 구축에는 높은 수준의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텔을 하드웨어 기업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내부를 들여다보면 웬만한 소프트웨어 기업보다 더 많은 개발자를 보유하고 있다.
권명숙 대표가 인텔 코리아 CEO에 취임한 때도 정확히 이 시기와 맞물린다. 이전까지 인텔코리아는 최대 고객인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몇몇 중소 PC 제조사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외국계 지사의 특성상 실적이 국내 기업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대 고객사인 삼성전자가 수년 전부터 이익률이 낮은 PC사업을 축소하면서 인텔코리아 실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LG전자는 나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 시장을 벗어나진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 대표 취임 이후로 인텔코리아는 지난 3년간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성과를 거뒀다.
권 대표는 모든 업무에서 완벽을 목표로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잠시 삼성SDI에서 근무한 4년을 제외하면 줄곧 인텔에서만 근무한 까닭에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문제가 없다. 심지어 인텔코리아에는 대표 전용 방이 따로 없다. 과거 대표부터 이어진 일종의 전통이다. 다른 직원들처럼 업무를 보좌하는 비서와 나란히 앉아 일을 한다.
인텔의 주력사업이 바뀌면서 권 대표에게 주어진 미션 역시 험난하다. 과거에는 고객사와의 원활한 소통 및 협력을 통한 시장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제는 고객사 자체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업무 프로세스를 조정하고 조직도 끊임없이 정비해야 한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IT기업 리더라는 책임감도 막중하다. 권 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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