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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왜 울고 넘었어요? '노래가 만든 전설' 제천 박달재

전설 속 박달과 금봉의 사랑, 조각공원에 형상화…목각공원 목굴암·오백나한전도 볼거리

2019.12.17(Tue) 10:11:00

[비즈한국] 보통은 전설이 노래를 만들지만, 가끔은 노래가 전설을 만들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길에 만난 노래와 전설은 살아 있는 스토리텔링이 된다. 예컨대 충북 제천과 충주를 잇는 박달재가 그렇다. 예부터 박달재는 교통의 요지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달재란 이름을 전 국민이 안 것은 1948년 발표된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 덕분이다. 

 

충북 제천과 충주를 잇는 박달재는 예부터 교통의 요지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달재란 이름을 전 국민이 안 것은 1948년 발표된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 덕분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1절)”로 시작해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2절)”로 끝나는 노래. 반야월이 노랫말을 짓고, 김교성이 곡을 쓰고, 박재홍이 부른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영화로, 악극으로 만들어져 박달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전국에 알렸다. 2005년에는 KBS 가요 프로그램 ‘가요무대’가 20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방송 횟수 1위곡’에 오르기도 했다. 

 

#박달과 금봉이의 사랑 이야기

 

노랫말에 담긴 사랑이야기는 조각으로 형상화되어 ‘박달재 조각공원’과 ‘박달재 목각공원’을 이루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금봉이와 박달의 모습을 형상화한 큰 조각상 아래에는 박달재의 유래를 새겨놓았다. 

 

때는 조선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다 박달재 아랫마을에 하룻밤 머물게 되었는데, 이곳에 살던 어여쁜 처녀 금봉이와 첫눈에 반했단다. 며칠간 머물며 사랑을 나누던 박달은 장원급제를 다짐하며 과거길에 올랐지만 감감 무소식. 절망한 금봉은 결국 숨을 거두고, 뒤늦게 달려온 박달은 금봉의 환영을 잡으려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고개를 박달재라 불렀다는 것이다.

 

박달재라는 이름에는 전설 속 박달과 금봉의 사랑 이야기가 담겼다. 금봉이와 박달의 조각상. 사진=구완회 제공

 

이야기를 읽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조각공원 곳곳의 작품들도 달리 보인다. 박달의 손을 잡은 금봉, 한양에서 금봉을 그리는 박달, 금봉의 환영을 좇는 박달 등이 그대로 한 편의 스토리텔링이다. 박달재의 사연을 새긴 조각상 옆에는 ‘울고 넘는 박달재’의 가사를 담은 박달재 노래비가 서 있다. 하지만 노래 첫머리에 등장하는 천등산은 박달재가 있는 산이 아니다. 박달재가 자리 잡은 산은 시랑산이고, 천등산은 제천과 이웃한 충주를 잇는 산으로 고개 이름은 다릿재다. 

 

사실 노랫말에 등장하는 금봉이도 전설 속 인물인지 확실치 않다. 오히려 노래가 전국적으로 히트하고 난 후, 가사에 나오는 금봉이를 주인공으로 새로운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19세기 처음 등장한 아리랑이 일제강점기 영화가 크게 히트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돼 여러 지방의 아리랑이 생겨났고, 다시 그 노랫말에 걸맞은 전설들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처럼 말이다(이것은 문화재청의 공식 설명이다). 

 

실제로 박달재란 이름은 이미 ‘고려사’에 보인다. 고려의 명장 김취려가 거란의 대군과 싸워 이긴 곳이 바로 박달재였다. 훗날 이곳에서 고려군이 몽골군을 격퇴하기도 했다. 

 

박달재는 거란군과 몽골군을 격퇴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가을 풍경. 사진=구완회 제공

 

#박달재의 또 다른 볼거리, 목굴암과 오백나한전

 

역사적 사실이야 어찌 되었건, 지금도 ‘울고 넘는 박달재’의 전설은 새로운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박달재 조각공원 길 건너의 박달재 목각공원은 불교 조각가인 성각 스님이 새롭게 해석한 금봉과 박달의 모습으로 꾸며졌다. 이곳에는 전설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각뿐 아니라 박달과 금봉의 가묘, 이들의 명복을 빌고 영원한 사랑을 소원하는 사당도 자리 잡았다.

 

박달재 목각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정자 모양의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선 박달재의 수려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이곳이라면 적은 숫자로 많은 수의 적군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제천과 충주를 잇는 박달재는 옛날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지금이야 제법 넓은 도로가 뚫렸지만 조선 시대까지도 산적들이 출몰하는 험한 고갯길이었다. 1217년 봄, 김취려는 이곳에서 3만 명의 거란군을 맞았다. 좁은 박달재 길목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다, 두 갈래로 나뉘어 올라오는 적군을 공격해 대승을 거뒀다.

 

박달재 조각공원 길 건너 박달재 목각공원은 불교 조각가 성각 스님이 조성한 목굴암과 오백나한전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박달재 목각공원은 성각 스님이 조성한 목굴암과 오백나한전으로 이어진다. 목굴암은 어른 다섯 명이 손을 맞잡아야 겨우 둘러쌀 수 있는 천 년 된 느티나무 안에 불상을 새겨 만든 법당이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 토굴이나 석굴 같은 느낌을 준다. 목굴암 옆에는 비슷한 크기의 느티나무에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오백의 나한과 삼존불을 새겨놓은 오백나한전이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목굴암과 오백나한전은 박달재의 또 다른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여행정보>


박달재 

△위치: 충북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705

△문의: 043-642-9398

△관람 시간: 24시간,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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