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정동길, 그 한가운데 정동제일교회

[비즈한국] 덕수궁 돌담길이 끝나는 지점, 서울에서 가장 걷기 좋다는 정동길이 시작되는 곳에 정동제일교회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당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장로로 시무했고, 바로 옆 이화학당 유관순 학생이 다니던 교회다.

붉은 벽돌의 소박한 외관이 어릴 적 본 동네 교회처럼 친근하다. 명동성당처럼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첨탑도, 근처의 성공회대성당처럼 고풍스런 분위기도 없지만, 이곳 또한 어엿한 국가 지정 사적이다.

정동제일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당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장로로 시무했고, 3·1운동 당시 바로 옆 이화학당 유관순 학생이 다니던 교회다. 사진=이종현 기자

#주변과 어울리는 정동길의 터줏대감

1887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정동제일교회는 여러 개의 ‘대한민국 최초’ 타이틀을 보유한 곳이다. 1897년 완공된 예배당은 우리 역사 최초의 개신교회당이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19세기 교회 건물이다. 1918년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었고, ‘예배당 결혼식’이 최초로 치러졌으며, 1922년에는 최초의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늦가을 정동길을 걷는다면 정동제일교회에도 꼭 한 번 들러보시길. 신자가 아니어도 교회 안마당을 둘러볼 수 있다. 운이 좋다면 파이프오르간 연주회를 무료로 즐길 수도 있다. 소박한 옛 예배당 건물 옆에는 훨씬 규모가 큰 현대식 새 예배당 건물이 있다. 별을 닮은 지붕을 가진 새 예배당은 겸손하게 엎드린 모습이다. 옛 예배당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 덕분에 정동제일교회는 그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고, 정동길은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새로운 예배당 건물이 한국건축가협회로부터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교회 마당에는 정동제일교회를 세운 아펜젤러와 최초의 한국인 담임목사였던 최병헌의 흉상이 있다. 미국 감리교단의 선교사로 1885년에 한국땅을 밟은 아펜젤러는 그해에 우리 역사 최초의 서양식 근대 학교인 배재학당을 세웠다. 이때 그의 나이가 스물일곱. 푸른 눈의 미국인 청년은 마흔넷의 나이에 사고로 숨지기까지 우리 근대사에 작지 않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가 세운 붉은 색 예배당은 6·25전쟁으로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빛바랜 붉은 벽돌, 야트막한 지붕, 최소한의 장식으로 마무리한 창문. 3층 높이의 종탑도 뾰족하지 않은 평탑 형식이어서 위압적이지 않다. ‘빅토리아시대의 전원풍 고딕 양식’이라는 안내판의 설명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정동제일교회에서 시작되는 정동길이야말로 ‘도심 속 전원풍 산책로’라고 부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3·1운동 당시 태극기 몰래 만들던 곳

아름다운 정동제일교회는 아름답지 않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벌어졌을 때, 아펜젤러는 이곳에서 추모예배를 드렸다. 미국, 러시아, 독일 등 서양 열강의 공관이 줄지어 있는 정동길은 각종 사건과 음모가 판치는 공간이었다. 그 복판에 정동제일교회가 있었고, 여기에 나라의 독립을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 망명길에 올랐던 서재필은 귀국한 뒤 정동교회청년회를 중심으로 협성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는 독립협회의 모태가 되었다. 여기서 협성회와 독립협회 활동에 열심이었던 이승만은 정동교회의 장로였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3월 1일. 정동제일교회에도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렸다. 당시 이 교회 담임목사이던 이필주와 장로 박동완은 민족대표 33인에 이름을 올렸다. 정동제일교회 교인들은 교회의 지하실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정동제일교회의 신자이자 바로 옆 이화학당의 학생이었던 열아홉 살 유관순은 결국 일제의 서대문형무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정동제일교회는 나라의 독립을 소망하는 많은 이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정동제일교회는 이문세가 부른 ‘광화문 연가’에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라는 노랫말로도 등장한다. 교회 주변 정동길은 역사의 현장이자 서울에서 드물게 걷기 좋은 길이다. 사진=이종현 기자

서울에서 드물게 걷기 좋은 정동길,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정동제일교회를 거닐며 격동하는 역사, 숨 막히는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오래된 예배당의 붉은 벽돌 위로 떨어지는 늦가을 햇살이 따뜻하다. 이 햇살을 받으며 정동길을 걷는 발걸음이 한가롭다.

<여행정보>

정동제일교회

△위치: 서울시 중구 정동길 46

△문의: 02-753-0001~3

△관람 시간: 안마당과 외부 건물은 9시~18시 개방(사진 촬영 가능), 예배당 내부는 외부인 출입금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