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숨은 환경오염산업', 제약업계 '친환경'이 쉽지 않은 까닭

까다로운 적합성 평가, 낮은 약가 등으로 포장재 변경 어려워…대부분 제약사 ESG 평가 등급 낮아

2024.04.05(Fri) 11:35:37

[비즈한국] 제약업계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대표적인 환경오염 업종으로 알려져 있는 식음료 업종과 맞먹는 수준이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제약업종은 연간 평균 1151톤의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이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은 물론 건강기능식품도 포장용기 대부분이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이나 폴리프로필렌(PP)으로 이루어져 있다. 약국에서 조제약을 줄 때조차 대부분 개별 비닐 포장한다. 제약업계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데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데, 그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약을 담는 용기나 포장재는 대부분 플라스틱이며 제약업계는 이를 친환경 포장재로 바꾸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한다. 사진=pixabay

 

#동네 약국도 플라스틱만 한 달 ‘8리터’

 

​“일주일에 플라스틱 재활용만 2리터 정도 나온다.” ​약사 A 씨는​ 한숨을 쉬었다. 약포지(낱개 포장지)부터 PTP(Press Through Package) 포장지, 알약 용기, 소분 용기, 재포장 비닐까지 모두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A 씨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는데 다시 종이박스에 개별 포장되는 약도 있다. 굳이 이중포장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과잉포장을 한 약들이 적지 않게 있다”며 “​재활용 분리배출을 할 때마다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A 씨는 “계속 같은 약을 받아가는 손님 중에 처음 드린 약통을 가져와 ‘여기에 담아달라’고 하는 분이 종종 있다. 그런 경우 변형이 있지 않은 한 그 통에 담아드린다. 손님 입장에서는 번거로울 수 있지만 그런 분들 덕분에 조금이라도 환경오염이 덜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약업계가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양은 적지 않다. 정부가 별도 집계한 자료는 없지만 환경부의 ‘환경성 평가체계 가이드라인’과 한국에너지공단의 ‘국가온실가스 배출량 종합정보 시스템’을 통해 어느 정도 그 양을 유추할 수 있다. ‘환경성 평가체계 가이드라인’ 자료에 따르면 제약업계의 3년간(2016~2019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4607톤이다. 연간 평균 1151톤의 대기오염물질이 배출된 것이다. 이는 전체 배출량의 0.38%를 차지하는 식음료 업종과 엇비슷한 수치다. 

 

폐기물 배출량은 더 심각하다. 같은 기간 제약업계의 폐기물 배출량은 192만 6541톤으로 전체 배출량의 0.80%에 달했다. 이는 전기·전자 또는 기계장비 업종과 거의 동일하다. 한국에너지공단의 ‘국가온실가스 배출량 종합정보 시스템’은 업종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집계한다. 통계를 살펴보면 2021년 기준 기초 의약물질 및 생물학적 제제 제조업과 의약품제조업의 합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39만 1200톤가량이다. 이는 제조업 부문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0.4%를 구성하는 높은 수준이다. 

 

#보존성, 비용 문제로 포장용기 바꾸기 쉽지 않아

 

제약업계가 플라스틱 용기를 바꾸거나 사용량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업계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까다로운 적합성 평가 △낮은 약가 △소량포장단위 공급 규정 △소비자의 영향력 등을 이유로 꼽았다. 관계자 B 씨는 “재질별로 견딜 수 있는 온도가 다르고, 또 차광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어떤 색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안전용기라고 해서 가정용 상비약 가운데 아이들이 쉽게 벗기지 못하도록 여러 조치가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포장을 바꿀 경우 이 같은 복잡한 시험을 거쳐서 약이 보존되는 데 문제가 없는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의 유통기한을 새로 확인해야 하는 부분도 부담이다. B 씨는​ “약을 보관하면서 중간중간 시험을 한다. 가령 유통기한을 3년으로 하려면 3년 동안 보관했던 것을 꺼내서 그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용기를 바꾸게 되면 그 기간을 다시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 나온 약을 보면 처음에는 유통기한이 되게 짧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늘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계속 시험을 해서 결과를 제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용기 및 포장 적합성 평가 가이드라인’의 일부. 사진=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용기 및 포장 적합성 평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심사 시 제형과 직접적으로 닿는 포장 부분인 ‘1차 포장 구성요소’와 제품과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 부분인 ‘2차 포장 구성 요소’에 대한 평가가 진행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성상(구성 성분에 대한 물리적 성상·처리법 및 준비공정에 관한 기술 등) △적합성(빛, 산소, 수분투과성 등으로부터의 보호성·모든 화학적 조성에 대한 안전성·상호작용 등 배합적합성·포장 시스템 등의 성능) 등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 한마디로 포장의 성상부터, 포장이 얼마나 의약품을 보관하는 데 적합한지 심사하는 것이다. 2차 포장 구성보다는 1차 포장 구성이 더 강조되는데, 용기를 바꾸는 경우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업계는 ‘단가’도 문제라고 지목한다. 한국은 약가가 낮은 편인 데다 의료보험공단에서 가격을 정하는 만큼 바꾼 포장 소재가 비쌀 경우 그 비용을 제약사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 C 씨는 “의약품은 회사에서 가격을 정하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정하기 때문에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단가가 올라가더라도 제품을 비싸게 팔 수가 없다. 다른 산업군은 소재가 바뀌면 가격이 오르기도 하지만 의약품은 그런 부분을 따져서 가격을 올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약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라서 소재가 비싸다면 일반적인 규모의 회사가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원가가 그렇게까지 여유가 없는 제품들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소량포장단위 공급 규정’도 언급했다. 이는 약국들에서 약을 대량으로 공급받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2008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의약품 제조·수입량의 10% 이상을 소량포장단위로 공급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로 인해 플라스틱 사용이 늘었다는 것. C 씨는​ “전문의약품의 경우 2차 포장지를 안 쓰는 경우도 있다. 보존에 크게 문제가 없는 것이라면 500개짜리가 용기 하나에 담긴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약사의 편의성을 고려해 꼭 소포장을 해야 하는데, 이 양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제약업계가 소비자의 영향을 받기 쉽지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 D 씨는 “보통 일반의약품보다 전문의약품의 매출이 더 높은 편이다. 그런데 전문의약품은 처방을 받아 구매하지 않나.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거의 없다. 다른 시장에서는 제품의 친환경적인 요소를 보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약품 시장은 그런 영향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주요 제약사 환경 부문 등급 ‘C~D’ 

 

이렇다 보니 제약업계의 ESG 평가는 대부분 좋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ESG기준원(KCGS)으로부터 통합 A+등급을 받은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케미칼뿐이다. A등급은 코스피에서 LG화학,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팜, 동아쏘시오홀딩스, 동아에스티, 유한양행, 일동홀딩스, 한독 등 8개사가, 코스닥에서 HK이노엔, 에스티팜 등 2개사 등 총 10개가 포함됐다. 다만 ‘환경’ 부문만 놓고 보면 상황은 다르다. 이 가운데 환경 부문에서 A 등급을 받은 곳은 3곳(한독, HK이노엔, 에스티팜)에 불과하다. 

 

주요 제약사의 ESG평가 등급. 환경 부문은 대부분 C~D등급이다. 사진=한국ESG기준원(KCGS) 홈페이지

 

전체 등급이 더 낮은 경우 환경 부문 등급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다. 지난해 광동제약, 대원제약, 환인제약, 동화약품, 제일약품, 현대약품 등은 C등급을 받았다. 셀트리온제약, 신풍제약, 유유제약, 삼성제약, 국제약품, 하나제약 등은 D등급이다. 

 

해외에서도 제약업계의 친환경 소재 활용 사례는 많지 않다. 일본 제약사 아스텔라스제약 정도다. 이 회사는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폴리에틸렌으로 제작한 바이오매스 플라스틱 용기로 의약품을 포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업계의 환경오염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난달 유럽연합(EU)은 도시 하수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제약 회사와 화장품 회사 등에게 부담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미세 오염물질 기준을 적용해 오염 물질 처리에 드는 추가 비용의 80%를 배출 기업에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업계가 바뀌기 위해서는 회사 한 군데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업계가 다 같이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ESG 리포트를 올리는 등 제약업계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정부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등 업계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변화가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플라스틱을 대체할 다른 포장재나 사례가 많지 않다. 이런 부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핫클릭]

· [단독] 미국 수출 노리는 '비궁', 미 텍스트론사 무인수상정 탑재 포착
· [단독] bhc치킨 박현종 전 회장도 국내 최고 분양가 '에테르노청담' 분양받았다
· 네이버, 한은·금감원 손잡고 금융 AI 선점…실익은 '글쎄'
·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 군인은 특정 분야 도서 열람 불가 왜?
· 흑자 전환 '당근', 알바 이어 중고거래도 '유료화' 만지작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