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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백여 년 전 서양식 교육의 '종'을 울린 배재학당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

2018.10.23(Tue) 16:23:59

[비즈한국]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이 문을 연 것은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빌린 집의 방 두 개를 터서 교실을 만든 다음 학생 두 명을 데리고 첫 수업을 시작한 것이 그해 8월이었다. 다음 해 고종이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란 뜻의 ‘배재학당(培材學堂)’이란 이름을 하사함으로써 드디어 배재학당은 배재학당이 되었다. 1909년에는 ‘배재고등학당’이 되었다가, 해방 이후 배재고등학교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서울 서소문 ‘배재공원’과 ‘배재빌딩’ 사이의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은 1984년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사 간 배재고등학교가 남겨 놓은 옛 배재학당 동관 건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인 배재학당. 현재는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 되었다. 1984년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사 간 배재고등학교가 남겨 놓은 옛 배재학당 동관 건물이다. 사진=비즈한국DB


여기서 잠깐. 배재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이란 점에 주의해야 한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883년 함경남도 원산에 세워진 ‘원산학사’이기 때문이다. 

 

원산학사는 강화도 조약 이후 최초의 개항지 중 하나였던 원산 지역 사람들이 개항 이후 들어온 근대 문물에 자극받아 자발적으로 설립한 민간 학교였다. 그리고 2년 뒤 서양 선교사에 의해 배재학당이, 다시 1년 뒤인 1886년에 조선 정부가 최초의 근대 국립학교인 육영공원을 세웠고, 같은 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이 문을 열었다.

 

# 근대 학교, 근대인을 만들다

 

기껏 몇 년 차이도 안 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학교가 원산학사면 어떻고, 배재학당이면 또 어떤가, 하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원산학사는 밀려오는 근대의 파도에 한반도 사람 스스로, 그것도 민간 차원에서 대응한 결과물이다. 이것이 외부 세력(선교사)에 의한 근대 학교나 정부가 주도한 것보다 먼저였다는 사실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근대가 식민지로 전락해버렸지만 말이다. 

 

이렇듯 한반도의 근대 학교는 크게 세 종류의 세력―민간과 서양 선교사와 국가―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원했던 것은 ‘근대인의 양성’이었다. 그것이 외세에 맞서 조선 인민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이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거듭난 종교인이든, 조선이 근대 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인재이든.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 학교는 근대인을 길러냈다. 

 

1920년쯤 찍힌 것으로 보이는 사진 속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은 모두가 똑같은 모자에 옷을 입고 집단 체조를 하고 있다.


우선 근대 학교는 학생들의 몸에 근대적인 시공간을 새겨 넣었다. 걸어서든 뛰어서든 아니면 콩나물 시루 같은 전차를 타고서든 ‘시간에 맞춰’ 교문을 통과해야 했으니까. 이건 해 뜨면 일어나 서당에 갔다가 배고프면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생활과는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이었다. 

 

1920년쯤 찍힌 것으로 보이는 사진 속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은 모두가 똑같은 모자에 옷을 입고 집단 체조를 하고 있다. 각반을 차고 있는 걸로 봐서는 군사훈련이라도 받는 듯한 모습이다. 이런 훈련은 반드시 전장에서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공장에서도 이러한 집단적인 움직임이 필요했다. 그 시절 학생들에게 수업 시작과 끝을 알렸던 ‘학교 종’은 지금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입구에 매달려 있다. 

 

백여 년 전, 학생들에게 수업 시작과 끝을 알렸던 ‘학교 종’은 지금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입구에 매달려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 이승만에서 김소월까지, 배재학당이 길러낸 인재들

 

학교 종을 지나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1930년대의 배재학당 교실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칠판 앞 교단, 2인용 나무 책상과 의자들은 30여 년 전 교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조선, 대한제국, 식민지의 학생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학업에 전념했다. 

 

그들 중에는 이승만과 주시경, 나도향과 김소월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도 있다. 과거 시험에 8번이나 낙방한 끝에 결국 갑오개혁으로 과거 시험 자체가 폐지되어 신학문의 길을 택한 이승만은 2년 후 배재학당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영어 연설을 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배재학당에 입학한 주시경은 여기서 공부한 영어 문법을 바탕으로 한글을 갈고닦는 데 일평생을 바쳤다. 

 

고종이 하사한 배재학당 현판.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란 뜻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교실 밖 전시실에는 이들이 공부했던 교과서들이 보인다. 100% 순한문으로 된 교과서에는 각종 과학실험도구 그림뿐 아니라 개기일식 사진 등이 총천연색으로 실려 있다. 그 곁에는 유길준이 썼다는 한반도 최초의 유럽 여행기인 ‘서유견문’, 고종이 내렸다는 ‘배재학당’ 현판, 럭비와 테니스를 비롯한 체육대회에서 받은 트로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부터 100년쯤 전인 1918년 졸업장과 졸업앨범도 그 시절 학교의 모습을 생생히 증언한다. 

 

아담한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나오면 건물 뒤쪽의 향나무도 빼먹지 말고 보는 것이 좋다. 올해로 수령 571년을 맞이하는 이 보호수야말로 배재학당의 백여 년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보았을 테니 말이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뒤쪽의 향나무. 올해로 수령 571년을 맞이했다. 사진=비즈한국DB

 

여행정보

▲위치: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11길 19

▲문의: (02)319-5578

▲관람 시간: 10:00~17:00, 매주 월요일 및 법정 공휴일, 개교기념일(6월 8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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