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는 7월 31일 미국과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는 대신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무역합의를 이룬 지 3개월이 다 돼가지만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펀드 성격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인하하기로 한 상호관세율과 자동차 관세율 등이 여전히 25%에 머물고 있다.
반면 미국 시장에서 최대 경쟁상대인 일본은 미국과 세부 내용에 합의하면서 지난달 4일 대미 자동차 관세가 27.5%(상호관세 25%+기본관세율 2.5%)에서 15%로 낮춰 상황이다. 문제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조사에서 우리나라의 미국 대외정책 변화에 대한 위험 노출도가 일본은 물론 중국, 대만, 인도 등 다른 주요 아시아 수출국에 비해 가장 높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까지 시행되기 시작하면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0월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상무부 청사를 찾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2시간 여 협상을 했지만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펀드와 관련한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김 실장은 회의 후 협상 성과를 묻는 취재진에게 “2시간 동안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답했다. 이어 진전 여부에 대한 질문에 “2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미가 17일에 협상을 속개할지 여부 등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미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것은 대미투자 방식을 놓고 미국은 3500억 달러 대부분이 현금 직접 투자라는 반면 한국은 투자 보증이라는 입장 차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3500억 달러 금액을 놓고도 한국은 분할 납부 방식과 통화 스와프 체결을 미국 측에 요구했지만 미국이 소극적이어서 이 문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워싱턴 DC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취재진에게 “3500억 달러 ‘업 프론트’(up front·선불)를 빨리 하라는 것이 미국의 이야기로 알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느냐 하는 부분은 진짜 불확실성이 있다”고 밝힌 점이 양국 간 입장차를 보여준다.
이처럼 협상이 공전하면서 상호관세 인하(25%→15%)와 자동차 관세 인하(25%→15%)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합의가 미뤄지면 향후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한국에 대해 최혜국대우를 해주기로 한 합의도 공염불이 된다. 이재명 정부가 국익을 내세운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한국 경제는 미국 정책 변화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다른 아시아 수출 경쟁국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셈이다.
UNCTAD가 최근 발간한 ‘세계 시장을 덮치는 무역 정책 불확실성’(Trade policy uncertainty looms over global markets)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미국 대외 정책 변화에 대한 위험 노출도는 44.8%로 아시아 주요국 중에서 가장 높았다. 한국과 반도체를 놓고 미국 시장에서 겨루는 대만의 경우 미국 대외 정책 변화 위험 노출도가 39.8%로 한국에 비해 5%포인트 낮았다. 자동차과 가전제품 시장 등에서 경쟁 중인 일본의 경우 미국 대외 정책 위험 노출도가 39.4%였다.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저가 공세로 미국 시장에 침투 중인 중국은 미국 대외 정책 위험 노출도가 아시아 주요국 중에서 가장 낮은 33.7%에 불과했다.
최근 중국을 대신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며 미국 시장에 침투 중인 인도도 미국 대외 정책 위험 노출도가 34.4%로 한국보다 낮았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 지수가 급등했다는 점에서 위험 노출도가 큰 한국 경제의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IMF 연구진이 만든 ‘미국 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올해 9월 기준 317로 조사됐다. 이는 1년 전(127)에 비해 190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느닷없이 발표하는 각종 관세 정책 등으로 미국 정책의 불확실성이 급등한 것이다.
한국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미국 정책 변화에 대한 위험 노출도가 큰 것은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동차 전체 수출 중 대미 수출 비중은 49.1%로 미국이 1위 시장이었고, 자동차 부품 수출 중 미국 비중은 36.5%로 역시 1위였다. 철강 수출에서도 미국은 가장 높은 13.1%를 차지했다. 알루미늄 수출도 비중도 20.4%로 중국(22.1)에 이어 2번째로 높았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고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품목들이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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